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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일기 한줄일기 내일기장
李하나
 가볍게.   치유일지
조회: 2916 , 2013-03-05 12:40


싫다, 정말.
이렇게 살고 있는 내가 정말 정말 싫다.
온갖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걸 하면 이게 싫고
저걸 하면 저게 싫다.
혼자 있으면 이런 생각밖에 안 든다.

사람들 속에 있어야만
잡념을 잊게 된다.
그래서 자꾸 사람들 속에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 나는 하나도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은 그저 그런 관계들.

그 사람들은 나를 좋아할 지 몰라도
나는 전혀 아무런 느낌도 없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을 숨기기게 급급할 뿐이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려 해도
나는 온갖 신경이 내가 입밖에 낼 수 없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어서
그 이야기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결국은 아무것도 할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그냥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이다.




.
.


나는 이게 싫다.
나도 사람들이랑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고
나 자신도 열어보이고 싶다.




.
.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기.
모든 것이 괜찮다.
EVERYTHING IS ALL RIGHT.
하나도 빠짐 없이 괜찮다.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이러고 있는 게 괜찮고
저러고 있으면 저러고 있는 게 괜찮다.

내가 이걸 하면 이게 괜찮은 거고
저걸 하면 저게 괜찮은 거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은 없다.

나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니까.



.
.


지금 이 정도로 해내는 것만 해도 나는 대단한 것이다.
무너지지 않고 
활기차게 지내고 있는 것만으로.

그런데 나는 자꾸만 이 활기참과 이 에너지가
거짓인 것만 같다.
내 진짜 모습을 속이고 있는 느낌.

내 안의 나는
우울하고 어둡고, 
지쳐 쓰러져 있는데
나 혼자서 신나서 밖을 쏘다니고 있는 그런 느낌.
그런 죄책감.


그럼 함께 가면 되지.
같이 가자.
더 이상 혼자 두지 말고.
그래, 같이 행복하러 가자.
이리 와.
내 손 잡아.
나 잘 할 수 있다? 
그거 아니? 

나 생각보다 괜찮아.
건강하고 강하고 똑똑해.
그래서 잘 이끌어줄 수 있어.
그러니까 믿어봐.

기댈 곳이 없으면
나한테 기대.



.
.



하나야 
- 응? 
힘들어? 
- 응.

뭐가 힘들어? 
- 그냥 힘들어.
어떤 게 힘들어? 
- '힘.들.어.'

아무거나, 이야기해봐.
- 외로워. 막 사람들 틈에 있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뭔가 낯설고 불편하다? 
그게 뭐 때문인 거 같아? 
- 성폭행 때문이지 뭐. 사람들한테 근본적인 이질감을 느끼니까.

주변을 한 번 둘러봐봐.
- 주변은 왜? 
하나 말고도 사람들하고 잘 지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럼 그 사람들도 다 성폭행 당했을까? 
관계를 어려워하는 게 전적으로 그런 탓일까? 
-

물론 하나의 경우에는 그 영향이 크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평균 이상
이라는 거야. 성폭행을 당하지 않은 사람보다도 훨씬 더 사람들을 잘 믿고, 잘 지내고 있잖아.
- 내가? 
그래. 생각해봐. OT 같은 거 가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런데 하나는 정말 잘 어울려.
잘 다가가고. 사람들한테 인기도 많고. 그런데 도대체 뭐가 못 지낸다는 거야? 
-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해야 만족스러운 거야? 모든 사람들하고 OPEN MIND 하는 거?
- 응. 나 자신을 100%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거.


하나야. 
- 응?
아무도 자기 자신을 100% 드러내지 않아.
그건 환상이야. 다들 그런다고. 하나만 그러는 게 아니야. 
-
잘 지내고 있어, 정말이야. 어제도 들었잖아.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정말 
하나에 대한 소문이 좋다고, 그 사람이 이야기했잖아. 그거 쉬운 거 아니야. 아무나 그런 소리 듣는 거
아니라구. 그런데 왜 자꾸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거야? 얼마나 더 올라가고 싶은 거야? 


100% 완벽한 일상을 원해? 그런 사람을 원해? 
- 응. 
그런 사람이 있는 것 같고 그런 사람이 부러워? 
- 응.



그런 사람은 없어. 다 똑같아, 사람은. 다들 관계 속에서 휘청거리고, 부족하고, 외롭고, 그렇다고.
하나만 그런 게 아니야. 
-
하나가 성폭행을 당해서 사람들하고 깊은 관계를 못 맺는 것도 일견 사실이지만, 그 사실에 잠식당할
필요까지는 없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들을 좋아해. 나는 누구와든지 친해질 수 있어. 
-


스스로의 삶을 부정하지 마. 나는 잘 살고 있어, 분명히.




.
.


내 경험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친해지고 싶지 않니? 
- 응. 
왜? 
- 그런 건 진짜 관계가 아니니까.
어쨰서 그런 건 진짜 관계가 아닌 거야? 
- 나 자신을 솔직하게 내보일 수 없잖아.


주변을 둘러봐.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100%, 모두에게 다 하고 사니? 
-
처음 만난 사람, 별로 안 친한 사람에게 자기 자신의 깊숙한 이야기를 다 까발리냐구.
아니야, 다들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만 이야기하고 살아. 그런 거야. 가벼운 일이 아니야. 교통사고처럼
완전히 가벼운 일은 아니라고. 물론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나의 깊숙한 이야기는, 그걸 나눌 수 있는 
사람하고만 나누면 되는 거야. A가 나한테 자기가 버림받았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걸 아무한테나 
이야기했어? 자기 집안일, 힘든 거, 친하니까 이야기하는 거잖아. 매일 이야기하지도 않잖아. 
그런 거야. 그렇게 맨날, 아무한테나, 가볍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돼. 그런 거에 슬퍼하지 않아도 돼.
모두가 그래. 모두가 가슴 속에 아픈 상처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 그런 걸 떠벌리고 살지도 않아. 
왜 떠벌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왜 그런 관계만이 진짜 관계라고 생각하는 거야? 
- 모르겠어. 그냥 그렇게 생각 돼.
가볍게. 나폴나폴. 그냥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좋은 시간 보낼 수 있는 인연들이라고 생각하면 돼.
비록 성폭행 경험에 대해서 나눌 수는 없더라도, 나한테는 그것 말고도 무수하게 많은 요소들이 있잖아.
'성폭행 당한 것'은 나의 전부가 아니야. 내가 그걸로만 가득 차 있는 사람이 아니라구. 그런데 그걸 못 
나눈다고, 아 이 사람이랑은 나를 나눌 수가 없으니 친구하지 말아야겠다, 하는 건, 나=성폭행 피해자
이런 등식에 나를 가두는 것밖에는 안 돼. 물론 나를 가장 크게 규정짓는 경험이긴 하지만, 
그것말고도 나에게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그런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거야.
-
나 할 이야기 많잖아. 나 그것 말고도 다른 일들 많이 있었잖아. 왜 인생을 전부 그걸 중심으로 생각해? 
내 인생 떠올려보라고 하면, 
'7살 때 처음 성폭행 당해서 20살까지 성폭행 당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주로 가해자가 내 방에 들어왔으며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낮에 집에 찾아와서 나를 성폭행했고, 중학생 때는 아침에 엄마가 출근하고 나서 나를 성폭행했다. 고등학생 때도 틈만 나면 가슴을 만지고 성기를 만지려 했고, 전화를 해서 나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엄마에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둘은 이혼하지 않았고 신고도 하지 않고 다시 원래대로 살았으며, 20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성폭행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게 다야? 나 7살 때는 이모랑 같이 살았어. 노오란 색으로 염색하려고 이모가 염색약을 발라줬는데, 이모가 삼십분만 놀다 들어오라고 했는데 내가 두 시간을 놀다 들어와서 머리가 샛노래졌었지.

1학 년 때는, 딱 차비만 받아서 학교를 다녔는데, 글쎄 버스를 타고 집에 다 와가는데 버스 정류장에 
리듬악기를 놓고 온 게 기억나지 뭐야. 엄마한테 혼날까봐 무서워서 학교까지 다시 걸어가서 리듬악기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이모랑 엄마를 만나서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기도 했지.

초등학생 때는 삼촌이 학원차를 운전하는 학원에서 미술도 배웠어. 맨날 삼촌한테 오백원만 달라그래서 군것질 하곤 했지. 1학년 때 전학을 왔는데, 교실에서 애들이랑 세일러문 노래를 부르면서 놀았던 기억이 나. 

공부도 곧잘 해서, 4학년 때는 반에서 1등을 했어. 그래서 가족들끼리 다 모여서 자장면을 먹으러갔었어.
그 때 참 기분이 좋았지. 미술도, 체육도, 공부도 잘해서 운동회에도 매일 대표 선수로 나가고, 과학 상상 그리기 대회도 상을 많이 탔지. 인기 투표하면 1등도 하고 그랬어. 여성스럽지는 않았는데, 남자애들이 나를 많이 좋아하더라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선머슴같이 놀았는데 말이야.

그런데 고학년이 되기 시작하니까,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가 생기기 시작하더라. 우리 엄마는 꾸미는 거라고는 조금도 못해서 나한테도 예쁜 옷을 사주지 않았어. 돈도 별로 주지 않았지. 주변 여자애들은 이제 막 꾸미기 시작하는데, 나는 못 그러고, 그래서 내가 별로 예쁘지 않은 것 같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

자신감도 점점 없어지고. 친했던 친구들한테 배신을 당하기도 했어. 그 쯤 돼서는 남자애들이랑도 많이 싸웠고. 남자친구도 있었는데. 

그래도 친구들이랑 잘 놀았어. 학원에서 장난도 많이 치면서. 그 때도 공부를 곧잘 했으니까. 공부 잘하기로 유명했지. 놀면서도 공부 잘 한다고. 정말 많이 놀았거든. 짖궂게. 여자애들 괴롭히고, 남자애들이 나더러 '부두목'이라고 불렀다니까? 두목은 따로 있었고.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었는데, 머리는 점점 곱슬머리에 안경까지 뿔테를 쓰다보니까 내가 정말 못 생긴 것 같은 거야. 친구들 사귀는 것도 걱정되고. 그래서 나는 점점 공부에 집중하게 되었지. 친구들한테도 마음을 닫아갔어. 친한 친구 몇 명만 있으면 된다, 뭐 이렇게 생각한 거 같아. 

그런데 이 쯤에서 내 성격이 왜 이렇게 확 바뀌었는 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소설을 쓰게 되면서 진지해졌던 걸까. 그 때 일기라도 조금 써놨으면 알 수 있었을 텐데.

어쨌든 중학생 때 지금 이 성격으로 변했어. 조용하고, 잘 안 나서고. 애들한테는 완벽하고 차분하고 
고상한 애로 비춰지는 거. 나한테는 포스가 있다느니, 아우라가 있다느니 하는 말을 이 때부터 듣기 시작했지. 근데 그게 참 재밌더라고. 범접할 수 없는 고결한 존재, 라는 이미지가.

지금도 그래. 애들은 내가 실수하면 깜짝 깜짝 놀란다? 심지어 중학생 땐가, 고등학생 땐가 내가 무슨 말을 들었냐면 말이야. 내가 어느 날 친구랑 이야기를 하면서 책상에 걸터 앉아서 두 팔로 몸을 지탱한 채로 뒤로 몸을 쭉 늘어뜨렸어. 약간 책상에 걸터서 누운 것 같은 자세? 그런 나를 보고 우리반 착한 여자애가 화들짝 놀라더니, '하나도 그런 자세를 할 줄 몰랐어' 이러는 거야. 나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그럼 나는 어떤 자세를 해야 하는데?'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아니 하나는 그런 거 안 하는 줄 알았어' 이러는 거야. 도대체 내가 어떻게 비춰지는 건지 참, 그 때 깜짝 놀랐다니까.

한 날은 수학 수업을 듣는데, 조끼리 앉았거든. 다른 반 애여서 잘 모르는 애였는데, 나는 정말 그 수업을 싫어했어. 수학은 못 하는데 다른 성적 때문에 고급반에 들어가고 말았거든. 숙제도 너무 어렵고 그래서 어느 날은 숙제를 안 해갔지. 나가서 한 문제씩 풀어야 하는데 나는 안 풀었으니 조마조마 할 밖에. 그렇게 애들이랑 '나 걸리지 마라'이러면서 막 조마조마하고, 웃고 장난도 치고 있는데 그런 나를 보면서 그 남자애가 하는 말이 '이런 애였어?' 라는 거야. 막 진지하게는 아니고, 약간 깼다는 듯이? 그래서 나는 또 생각했지. 나는 정말 이미지가 대박이구나.

OT 가서도 첫인상 쓰라그러면 '고상한', '차분한' 뭐 이런게 나와. 내 친구들이 들으면 웃길 노릇이지. 한 번 빵 터지면 웃음 소리에 귀가 아프고, 물건도 맨날 잃어버리는 허당인데 말이야. 도대체 왜 이런 이미지가 생긴 건지 모르겠어.

한 날은 내 동생이 내 친구한테 그랬대. 누나가 찐빵 삶는 법을 모른다고. 이건 내가 꿈꿔왔던 누나의 모습이 아니라는 거야. 도대체 네가 꿈꾸던 누나의 모습은 뭐닠ㅋㅋㅋㅋㅋㅋ




.
.


아무튼
나한테는 이렇게 이야기가 많은데 말이야,
그렇지? 



내 인생은 그것뿐만이 아닌데.
좋은 추억도 정말 많고.
그렇지? 





물론 중요한 사건이었어.
일생일대의 비극들이었지.
근데 어쩔 수 없다는 거야.
이미 일어나버렸는 걸.

그럼 이제 그 새끼한테 깔끔하게 죗값 치르게 해주고
나는 나대로 살면 되는 거야.
암, 그렇고 말고.




타래   13.03.05

저는 중학교때의 따돌림, 그 기억때문에 아직도 사람을 못믿어요. 억지로 밝은 척 하는것을 사람들은 제가 밝다고 하는데 웃기죠. 제나이가 20인데 동창만 있을뿐이지 진짜 친구는 없어요.... 거짓과 가식속에 있는 제가 싫어서 가면을 벗고싶어도 그러질 못하네요. 하나씨는 충분히 잘하고있어요.

李하나   13.03.18

거짓과 가식 속에 있는 제가 싫다, 라. 너무 공감이 되네요. 저도 항상 그 딜레마 속에 있거든요. 거짓과 사람이냐, 진실과 외로움이냐. 힘드네요. 타래님도 잘 하고 계시리라 믿어요. 제 친구 중에도 따돌림을 당한 친구가 있는데, 저는 그 친구를 아주 좋아해요. 그 친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이런 게 있거든요. '좆 되봐라' 들을 때마다 속이 시원해요. 댓글 감사드려요:)

  13.03.05

아무도 자기 자신을 100% 드러내지 않아.
그건 환상이야. 다들 그런다고. 하나만 그러는 게 아니야


좋은아침(?)이네요 ㅋㅋㅋ
봄날을 즐기세요 나폴나폴 가볍게~

李하나   13.03.18

좋은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