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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새로운 습관 만들기   trois.
조회: 2543 , 2013-08-29 23:40


내가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행동 중에
하고 싶지 않은 행동들이 있다.
예를 들어,
뒷정리를 잘 하지 않는다든지
밥을 잘 챙겨먹지 않는다든지
나갈 일이 없는 날에
바깥에 한 발짝도 안 나가고
틀어박혀 글만 쓰고 책만 읽는다든지.

먹지 않아도 되는데 자꾸 먹는다든지
물을 마시지 않는 거라든지, 
받기 싫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든지
해야 하거나, 하기 싫은 일을 자꾸 미룬다든지.




.
.


사실 둘 중 하나이다.
아예 마음 편하게 이런 행동들을 하든지
아니면 이런 행동들을 고치든지.

하지만 나는 왠지 고치고 싶다.
아니, 고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고치는 그 자체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사실 적어놓고 보면
뭘 이리 복잡하게 생각하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누구나 다 하는 행동이고 
그렇게 사는 건데
왜 자꾸 뜯어 고치려 하는 거냐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사실 이런 행동들을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지
머리 속에서 착착 풀이 과정이 세워진다.
비유하자면, 




스도쿠나 
로직 같은 것, 쯤이다.
굳이 머리를 싸매서 그 숫자들을 맞출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도쿠나 로직은 
해야 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재미로 하는 것 뿐이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의 행동과 사고 과정을 분석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나한테는 스도쿠의 풀이 과정만큼이나 재미있다.

그 과정을 고민하고
하나 하나 알아내며 맞춰져 가는 것에서 느껴지는 
어떤 희열이랄까.



.
.



이것도 하나의
습관,
이 되어버린 듯 하다.




아무튼
저것들은 모두 나의 기존 습관들이다.
새벽 늦게 잠들어서
아침에 한 10시 쯤에 일어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화장실에 가는 일.
물 한 모금 마신 뒤에
쇼파에 드러누워
어제 놓고 들어간 책을 집어든다.

아직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지만
그냥 읽고 있는다.
시원한 바람에 나를 내맞기며 그 바람을 쐬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의 바람에 나를 맞기는 것이다.


그러다가
누워서 이런 저런 생각 좀 하다가
뇌가 덜 깬 상태에서 
무언가를 먹고, 
또 무언가를 읽고 무언가를 쓰고.

외출할 일이 없으면 그렇게 지낸다.
그러다 동생과 엄마가 돌아오면 
뭔가 그 둘과 나 사이에 
얇은 막 같은 게 하나 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나는 그 느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외출했다가 돌아온 날에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데.
뭔가,
내가 덜 깬 느낌이다.



.
.

아침 30분이 하루를 결정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이다.
오늘은 나갈 일이 없었지만, 
나를 깨우기 위해 잠시 도서관으로 외출을 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역시 내가 한 일은 
책들 사이에 파묻힌 거라 
다 깨지는 못한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산을 보는데
산과 나 사이에 얇은 막이 있었다. 


나는 이 얇은 막을 걷고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뒷정리는 내가 가장 안 하는 것 중 하나다.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지도 않을 뿐더러 
샤워를 하고 나서 치우지도 않는다.

치우기 '싫어서'가 아니다.
무질서가 
'좋아서'이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물건들이 좋다.
방이 어질러져 있는 것이 좋다.
그래서 그 물건들을 밟으면서 돌아다니는 것이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

마치,
어렸을 때 
거실에 깔려 있는 이불을 막 밟으면서 돌아다니던 느낌.

그래서 나는 뒷정리를 잘 하지 않는다.
뭔가 딱딱 정리된 것엔
정감이 가질 않아서.



하지만 
내가 화장실과 내 방을 치우지 않음으로써
엄마와 할머니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건 그닥 좋지 않다.

할머니가 내 물건을 아무 곳에나 갖다 놓으셨을 때
아니면 내 공간에 할머니 물건을 갖다 놓으셨을 때
나 역시 순간적으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마찬가지로 
내가 방을 어질러 놓았을 때
할머니도 그런 스트레스를 받으실 것이다.

내가 정리를 한다면 
그런 스트레스를 안 받으실 수 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리를 하면
정리를 하는 시간 만큼 생각을 덜 할 수가 있다.


아마 내가 
생각을 조금만 덜 하고
잠을 더 잔다면
정신 건강에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생각은
해야 할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면 족하다.
생각이 하고 싶어서 다른 일을 뒷전으로 미루지 말자.
할 걸 끝내고 생각을 하자.

그럼 아마 더 살기가 편해질 거야.
내가 생각할 시간이 널널한 건
최소한의 것에만 시간을 쓰기 때문일지도 몰라.

정리 하자.
이불도 개고
쓴 물건은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화장실을 쓰고 나서는 물을 뿌려 청소를 하고.
안 그러면 긴 머리카락이 다 빠져 있다고 
엄마랑 할머니랑 질색을 하시니까.
방 청소도 하고.
청소기도 돌리고 걸레질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밥 때 되면 밥도 제대로 해 먹고.

일상을 제대로 하자.
응응.



먹지 않아도 되는데 뭘 자꾸 먹는 것 역시
습관이다.
먹고 싶다기 보다는
심심해서, 
먹는 것이다.

머리만 굴리고 있으니
다른 감각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안 들어서
자극을 주려고 뭔가를 자꾸 먹는 것이다.

책 읽다가 
아이스크림 하나 꺼내 먹고.
뭔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느끼고 나면 
다시 책을 읽고.
그리고 다시 심심해지면 
복숭아를 하나 꺼내 물고.
이건 나와 세상 사이의 얇은 막을 걷어고 나면
해결될 듯 하다.

얇은 막이 걷히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입과 식도 말고도 다양한 곳에서 느껴져 올 테니까.



.
.

해야하는 일을 미루는 건
아주 바쁘거나
아니면 아주 할 일이 없거나 할 때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 역시 얇은 막을 걷어내고 나면
될 것 같다.


.
.


그리고 마지막으로
받기 싫은 전화를 받지 않는 것.
음, 
일단 주군의 태양을 보고와서 다시 써야겠다.
지금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