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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썩을 일밖에 남지 않은 무르익은 참외  
조회: 3399 , 2014-03-04 13:19

출근길에 벙커1 특강으로 음악평론가 강헌씨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청년문화의 바람이 불다>를
듣는데 양희은씨을 언급한다.

7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였던  양희은, 한대수, 김민기의 앨범 자켓들이 
당시  가요계  주류였던  이미자, 남진, 나훈아의 그것과  어떻게 달랐는지,
그리고 당대에 얼마나 충격을 주었는지를 이야기 하면서다.

나도 양희은의 데뷔앨범 쟈켓을 참 좋아한다.

멀리 보이는 자켓의 배경은 남산에 있는 구 어린이회관 빌딩인데 
70년대 영화 <바보들의 행진>이 보여주는 서울의 황량함이 맨살로 드러난다.

자갈밭과 시멘트 바닥을 가르는 쇠줄 펜스에 서강대 사학과 1학년 양희은이 걸터 앉아있다.

생머리, 화장기없는 얼굴, 청바지..
그녀는 고개 숙여 땅을 바라보고 있지만, 
"무슨일 있니?"라고 묻고 싶을 만큼 우수와 불만에 찬 표정이다..
마치 울음이 터질것 같은 얼굴이다.

행복해 죽겠다는 사람에게 매력을 못느끼는 나란 인간은
양희은의 그 표정이  참 좋다.


그런데, 1995년에 발표한 중년 양희은의 앨범은 가수 이미자의 그것과  다를바 없다.
중년의 넉넉함과 푸근함일까?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서 선 누님이 된 것일까?

아니다.
그 것은 최승자 시인이 말한대로 "이제 썩을 일밖에 남지 않은 무르익은 참외"라는 뜻이다.



난 달관하지 않고, 
도통하지 않고
여전히 터무니없이 진지하고, 고통스럽게 한 세상을 살아내고 싶다.
그게 아름다움이라고 믿는다.


                모두가 바캉스를 떠난 파리에서
             나는 묘비처럼 외로웠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발이 푹푹 빠지는 나의
             습한 낮잠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사라졌다.
             시간이 똑똑 수돗물 새는 소리로
             내 잠 속에 떨어져내렸다.
             그러고서 흘러가지 않았다.

             엘튼 죤은 자신의 예술성이 한물갔음을 입증했고
             돈 맥글린은 아예 뽕짝으로 나섰다.
             송X식은 더욱 원숙해졌지만
             자칫하면 서XX처럼 될지도 몰랐고
             그건 이제 썩을 일밖에 남지 않은 무르익은 참외라는 뜻일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

                      - 최승자 詩, '올여름의 인생공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