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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일상 가꾸기   치유일지
조회: 3036 , 2014-03-14 14:52



감정도, 
하루도 가꾸기 나름이다.

나는 턱관절 질환이 있다.
중학생 때부터 턱에서 '틱'하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아주 심해져서,
나중에는 입을 벌릴 수도 없고
음식을 씹기도 너무 힘들게 되었다.

턱근육이 너무 아파서
웃을 수조차 없었다.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만 있어도
턱이 욱신거려서 힘들 정도였다.

병원에 가서,
일단 생활습관을 바꿔보고
지시하는 대로 해보라고 해서 
의사가 준 종이쪽지에 적힌 대로 해보았다.


그 중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자세 바르게 하기와 
앞니 사이에 혀 끼워놓기였다.

엎드리는 자세나 옆으로 눕는 자세를 하면 
턱이 굉장히 아프다.
그러지 않으면 훨씬 낫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턱을 아프게 했던 건, 
내가 입을 앙다물고 있었던 것이었다.

원래 윗어금니와 아래어금니가 맞붙어 있어야 정상인 줄 알고
계속 물고있었던 것이다.
그러지 말라고, 
정 안되면 앞니 사이에 혀를 끼워놓아서라도
떨어뜨리라고 했다.
그렇게 했더니 정말 턱이 한결 나아졌다.

지금은 잘 웃을 수도 있고,
물론 입을 크게 벌리면 아프고
조금이라도 자세가 안 좋으면 턱이 바로 아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옆으로 눕지 않도록 하고,
실수로라도 옆으로 누워버린 날에는
'아 오늘은 아픔에 시달리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딱딱한 걸 오래 씹지 않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귀를 파서는 안 된다.
적당히 한 번쯤은 괜찮지만 ,
귀를 무리하게 파면 
왠지는 모르겠지만 턱근육에 무리가 가나보다.


턱관절 질환은 완전히 치료가 가능하지는 않다고 한다, 아직은.
그래서 생활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과거에 성폭행을 당했던 것은, 
고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일어났던 과거의 일이기 때문이다.

어디로 통째로 들어낼 수도 없고,
타임 슬립을 해서 바꿔버릴 수도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그 경험과 함께 살아가는 일인데,
그렇다면 성폭력과 관련된 것도,
턱근육과 관절을 다루듯이 하면 될 것 같다.

턱에 안 좋은 걸 안 하고
턱에 좋은 걸 하면
나는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영원히 고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턱을 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턱이 아프지 않을 수 있도록
더 좋은 자세를 유지하고 턱에 나쁜 행동은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자세가 좋은 편이다.
허리도 굽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자연스럽게 성폭력과 관련된 비관적인 생각에 빠진다.
그 경험이 나를 전부 덮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기분이 나쁠 때는 그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해결해야 할 부분, 극복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직면해야겠지만,
내가 우울할 때는 적합한 시기가 아니다.

사람은 성폭력이 아닌 다른 이유로도 우울해진다.
아마 수천, 수만 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니라면 성폭행 당하지 않은 사람은 우울하지 않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다 우울함을 경험하기 때문이고
나도 다른 사람과 같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이유로도 얼마든지 우울해질 수 있고,
그렇다면 나는 내 감정을 유발한 원인을 바르게 알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을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그 감정의 원인을 완전히 오해해서는 안 된다.

성폭력이 모든 우울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현재에 머물면서
현재의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과거의 썰물에 현재가 덮여서는 안 된다.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현재를 해석해서도 안 된다.
나는 그저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자체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진짜 나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맥락은 중요하지만,
실체가 더 중요하다.




.
.


어제 공연을 하고 추운 바깥에서 오래 부스 활동을 해서
오늘은 좀 피곤하다.
다리에 알도 배겼고.
솔직히 나가기 귀찮아서 운동을 하루 쉬었다.

공연복을 빨고, 
미드 HOUSE를 좀 보았다.
누워서 보았더니 턱이 좀 아프긴 한데,
친구네 집에 내 책상이 없어서 그렇다.
자세를 좀 바로잡아야겠다.

오늘은 좀 나른하다.
기분이 완전히 상쾌하지도 않고.
하지만 나쁘지 않다.
그저 조금 피곤할 뿐이다.

내일은 꼭 운동을 하고 와야지.
집에도 좀 다녀와야겠다.
후배에게 책을 빌려주기로 해서 들고 나와야 한다.
지난 주에 들고나올 걸 그랬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일요일에는 풍물을 하는 다른 학교 친구들과 약속이 있고,
월요일에는 또 동아리 모임.
그리고 아마 그 다음에는 상담을 갈 것 같고,
그 다음에는 변호사님을 만날 것 같다.

그리고 한 달 뒤, 4월 에는 두 번째 재판이 열린다.







.
.





사실 나는 두려운 일이 많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렵고,
대학에 다시 돌아가는 것도 두렵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어지면 
내가 그것을 잘 다룰 자신이 없기 떄문이다.
하지만 점점 용기가 생기고 있다.

현재에 있을 수 있는 자신이 생기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나의 과거와 함께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도 배우고 있다.


조금씩 행복과 편안함도 느끼고 있다.
나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이것저것 하면서 몸을 바쁘게 만들지 않아도,
생각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혼자 있어도 주변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지금 이 정도라면 
아마 10년 쯤 후에는 훨씬 훨씬 더 행복할 것이다.
얼마나 더 행복할 지 기대된다.




빨리 왔으면 더 좋겠지만:)

쭈잉   14.03.15

과거에 너무 연연해하지말고~!
현재에 적응해서~ 지내세요*^^*
하나씨는 충분히 매력있는사람이니깐요~
긍정적인 생각으로*^^* 호ㅏ이팅!

열매   14.03.17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 이렇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용기있는 행동이에요~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