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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은 성공한 후에 포장되어 평범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   six/sept.
조회: 7447 , 2016-05-16 22:09


오늘 인터넷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문구를 하나 발견했다.

"성공한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후에 포장되어
평범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

몇 년 전부터 자기계발서나,
서구식 성공담, 영웅담들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느꼈던 한계나 깨림칙한 부분들이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되니 시원했다.


어렸을 때는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나 영웅담을 읽으면서
많은 귀감을 얻고는 했는데
성인이 된 후에는 그런 종류의 글들이 가지는 한계를 체감하곤 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거꾸로 내가 그런 질문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어떻게 그렇게 성폭력을 잘 극복할 수 있었어요?"
"하나씨처럼 잘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라는 질문을 같은 생존자분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들었다.

혹은 학교에서
"어떻게 하면 영어를 그렇게 잘 할 수 있어?"
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럴 때면 처음에는 최대한 정리해서 이야기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대답할 때마다 내용은 바뀌었고
나중에는 나 스스로도 이런 식의 정리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성폭력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
물론 부분적인 요인 몇 가지는 설명할 수 있겠지만
내가 설명을 시도한다고 해서 그게 정확한 지도 알 수 없고
무엇보다도 사람마다 상황이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이야기 할 수 없으니 내 주위 환경이나 요소들을
선별하는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삭제된 맥락은 청자의 상상력이 개입되는 공간이 되고,
그 상상력은 대개 '아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랬겠지'가 아니라
'아 역시 나랑은 다르구나'라는 박탈감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런 맥락이 생략된 영웅담의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자서전과 이야기는 맥락이 생략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에서
'나는 이러이러해서 성공했어'
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별로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라고 본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잘 극복하고 잘 지낼 수 있느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처음에는 '사건이 잘 해결돼서'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곧 이 대답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희망이나 해결책은 커녕 무력감과 부러움, 혹은 자책만 느끼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건이 잘 해결되는 것은 순전히 운이다.
그 과정에서 들어가는 나의 노력도 있으나,
절박한 생존자치고 그 과정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리라.

그래서 그 다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많이 도와줘서,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마찬가지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박탈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좀 더 나의 주체성을 부각시켜 설명을 해보면,
이건 더욱 더 큰 왜곡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어떻게 사람을 믿을 수 있어요?'라는 질문에

나는 심리학을 공부해서 나의 마음 구조를 파악하고,
인지행동 치료 중 노출기법의 근본 원리를 일상생활에 적용하여
단체 생활을 하거나,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속해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신을 소거해나가려고 노력한다.

라고 대답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금의 나를 잘 설명할 수는 없다.

나의 노력이나 심리학적 통찰도 분명 도움이 됐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양가 가족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오히려 더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안에서는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했지만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친척들이 나를 예뻐해줬었다.
집안 전체를 통틀어 내가 가장 예쁨 받고 사랑받는 존재였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런 식의 완충제들이
내가 아버지로부터 받는 정서적, 물리적 학대로부터 
나의 자아를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
.


어쨌든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지금부터 모두 자신의 성공한 인생이나 혹은 성공한 어떤 것에 대해서
설명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늘 어떤 맥락을 생략하고 이야기할 수 있음을 충분히 지각해야 하며
그 삭제된 맥락이 상대방에게 어떤 공간으로 재구성되는 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를 할 때 늘,
'내가 어떻게 설명해도 완벽한 설명이 될 수는 없다. 
그냥 나는 이런 식으로 설명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고
나 자신에 대한 내 설명이 맞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설명하는 내용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라는 생각을 갖고,
또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
'아, 저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나는 저렇게 못 할 거야' 혹은,
'아 나도 꼭 저렇게 살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기 전에
상대방의 성공담에는 늘 자신과 다른 상황과 경우가 존재하며
그 삭제된 맥락이 '환상'이나 '박탈감'으로 가득차지 않도록
늘 유의하며 들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가 성공하게 된 것은 한 곳에 집중하는 그의 놀라운 헌신과 
창의력 덕분이다'
뭐 이런 식의 설명이 있다고 치면,
이건 거의 50% 정도의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곳에 집중하는 그의 능력이
그를 성공으로 이끌어준 크나큰 원동력이었음은 맞지만
그의 삶에는 훨씬 더 많은 변수들과 맥락이 있다.

이를 선별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의 몫이며,
이 맥락을 '나에게는 불가능한 어떤 특별함'이라고 생각해서
박탈감을 느끼며 자신의 인생을 깍아내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성공한 자신의 인생, 혹은 누군가의 인생을 미화시키고
사람들로부터 선망을 얻을 요량으로
'포장'하는 행위는 정말 안 좋다고 생각한다.

이는 정말 작은 행동들로부터도 시작된다.
예를 들어, 연예인들은 방송에 나와서 
'저 진짜 많이 먹어요. 돼지에요'
'좋은 피부를 가꾸기 위해서 일단 잠을 많이 자구요, 물을 많이 마시고-'
등의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이는 대단히 일부만 드러내는 것이다.

연예인들이 기본적으로 
날씬한 몸과 좋은 피부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관리 덕분이기도 하지만
'자본'의 영향이 더 크다.

소속사나 개인 자신이 자금을 들여 전문적인 트레이닝과 시술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은 보지 못하고,

'아, 나는 게을러서 좋은 피부도 가지지 못하고-
잠도 많이 자고 물도 많이 먹어야 하는데 나는 왜 안 될까'
라며 자기 자신을 깎아 내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유명인을 비롯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
타인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이해하고 좀 더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 의미 있는 행동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할리우드 여성 배우들이 자신의 맨얼굴을 공개한 것이다.
화장 뒤의 자신 역시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물론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정도의 퀄리티,
이 경우 '자본'이 투입되어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의 이미지가
그들 본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캐치해낼 수 있는 것이다.

.
.


말이 장황했는데
어쨌든 성공한 사람이든, 아니면 그 스토리를 전하는 사람이든,
듣는 사람이든,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지나치게 '포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분석하고 배우는 것과 '포장'은 다르다.
맥락과 생략된 공간을 인지하며 한 사람의 인생을 마주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크다.


행복할래   16.05.23

평소에 생각하던건데 이렇게 쉽게 정리가 되다니...

많은 노력과 연습이 있었겠지만 생각을 이렇게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