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2040 , 2019-01-04 11:49 |
얼마 전,
어렸을 때 작가로 활동하던 인터넷 소설 카페를 오랜만에 다시 들어가보았다.
온갖 오글거리는 소설들과 대화 내용들(주로 나의 말투가 오글거린다...하)을 훑다가
우연히 이 글을 보았다.
내가 16살 때 처음으로 장편 소설을 하나 완결내고 쓴 후기였다.
읽고 나서 조금 허탈해지기도 했다.
내가 지금 가장 고민하던 문제를
16살의 나는 이렇게 명료하게 알고 있었다니.
-
후기 (2008.1)
사실, 처음에 이 소설은 '완결이라도 한 번 내보자'
하는 심산으로 시작한 소설이었습니다.
부끄럽기 그지 없지만 자리를 떠나면 그만으로
자리에 앉을 때에만 스토리를 생각하면서 써내려가는 막무가내식 소설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이 소설은 '습작' 에서 '최초의 완결 소설' 로 한 단계 의미가 상승했습니다.
끝까지 여러분께 자랑스러운 소설은 아니예요.
나중에 가서는 시간에 쪼들려, 의욕 부족에 쫓겨 억지로 써내려간 적도 많았어요.
내가 왜 이 소설을 시작했을까- 이렇게 후회한 적도 있었죠.
하지만 그때마다 '완결' 이라는 두 단어, 그 목표만을 바라보고 달려왔습니다.
인간의 의지란 대단한 것 같아요.
이렇게 지구상의 아주 사소한 일, 즉 '소설을 완결 내는 일' 하나까지도
목표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잖아요.
'연재' 를 목표로 썼던 소설은 절대로 완결 낼 수가 없던 저였어요.
그런데 '완결' 을 목표로 소설을 쓰니까 완결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달라진 건 '목표'가 바뀌었다는 것 뿐이잖아요.
물론 그 과정에서 내용을 조금 소홀히하긴 했어요.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만족합니다.
하고 싶은 것이 무지하게 많다면 우선 순위를 정해 보세요.
무게를 아주 정밀하게 달아서 조금이라도 더 중요한 것을 1순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목표로 삼고 끝없이 달려간다면 언젠가는.
언젠가는 지구의 한 점일지라도, 그 중에서도 빛나는 점이 되어 있을 거예요.
여러분들 모두 빛나는 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소설 제목'은 이제 여러분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가겠습니다.
-
그 과정에서 내용을 조금 소홀히하긴 했어요.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만족합니다.
특히 이 대목.
내용이 조금 아쉽더라도 일단 시작하고 끝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10년 전의 나.
결국 그곳에서 작가로 활동하던 기간 동안
작품성에 올인하며 연재했던 소설은 모두 완결을 내지 못했고,
유일하게 '완결 장편소설'로 남은 건 이 소설 한 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작품성에 신경을 못 쓴 소설인데도 말이다.
나는 이 간단한 걸 몰라 작년 한 해를 내내 헤매었다.
완벽하게 하지 못할 것이 두려워
시작을 하기도 어려웠고
내용의 아쉬움을 견디기 어려워
시작한 일을 매번 뒤엎곤 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허탈해서
웃음이 나지만
그래도 그냥 하던 대로만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한다.
신영복 교수의 말씀으로 글을 끝내본다.
.
.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 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습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습니다.
만약 그 바늘 끝이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쇠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