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1217 , 2021-08-07 21:17 |
제주도.
지금 제주도에 와있다.
오전에 올레길을 걷고 숙소로 와서 저녁 먹은 뒤 테라스에 앉아 쉬고 있다.
좋은 노래 들으면서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와인도 한잔하고.
제주도는 풍경이 참 좋다.
내륙과는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뭔가 다른 느낌이다.
한라산이 완만해서, 서울이나 부산에서는 볼 수 없는 지평선이 보이고,
유달리 쨍쨍한 햇살 때문에 모든 것이 한 단계 더 선명해 보인다.
색깔들도 훨씬 다채롭고 맑게 느껴진다.
검은 현무암이 하얀 모래나 녹색 빛 도는 바닷물과 함께 있을 때의 그 대조가 너무 이쁘다.
풍력발전기가 바다나 초원 위에 있을 때 느껴지는 그 거대함이 너무 멋있다.
난 풍력발전기가 그렇게 크다는 걸 제주도에 와서 처음 알았다.
작년 이맘때쯤에도 제주도에 왔었다.
취업이 확정되고 시간이 조금 비어 평소에 좋아하던 걷기를 본격적으로 하려고 올레길을 왔었다.
마냥 좋았기만 했었던 거 같은데, 오늘 다시 올레길을 걸어보고
아, 좋았던 게 아니라 좋은 기억만 남았던 거구나 했다. ㅋㅋ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언제부턴가 걷는 게 참 좋아졌다.
언제부터였는지 생각을 해보면, 으음
학부 3학년 때 교수님 회사에서 일했었다.
어느 날 교수님 회사에서 퇴근하고 우연히 조금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고향이 부산이고, 마침 교수님 회사가 광안리 근처였는데, 지하철역까지 걷기에 적당한 거리의 해변 도로가 있어서 걸어봤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걸었는데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고,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지는 것이다.
놀러 온 사람들 구경하고, 해변 따라 지어진 멋진 빌딩들도 보고,
해변에 밀려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파도들도 보고,
바로 앞에서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뭐 때문에 저렇게 걸어가는 걸까
어디까지 가나 궁금해지기도 하고,
괜히 동지애 비슷한 게 들기도 하고 ㅋㅋ..
생각이 많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나에게
걷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현재를 느끼게 된다.
그때 정말 좋았었어, 그때 이후로 조금씩 걸어 다녔던 것 같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참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오늘 했다.
취업하기 이렇게 힘들 때에, 취업해서 휴가를 내서 자신이 원하는 곳에 놀러 가서,
좋은 숙소를 잡아서 좋은 노래를 들으며 술 한잔 하며 푹 쉴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니,
간만에 내가 대견했다.
저번 글에서 회사에 대해서 너무 안 좋은 말들을 많이 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좋은 회사다.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
팀장님은 저렇게 착하신 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착하신 분이다.
말씀도 나긋나긋하시고, 잘 챙겨주신다.
업무에 대해서도 정확하시고 철저하시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정확한 지침을 주시고 현실적인 방법을 찾으신다.
최근에 갑작스럽게 선배 두 분이 나가셔서
갑자기 팀을 이끄셔야 하는 상황이라 힘드실 텐데,
내색하지 않으시고 나부터 걱정해주시는 분이다.
우리 팀 신입사원분도 참 좋은 분이다.
디자인 에이전시 일이라는 게 쉽지 않은 분야인데
열심히 하려고 하시고, 항상 밝으시다.
팀장님과 나에게 지금 걸려있는 일이 바빠서 한동안 일이 없으신데, 소외감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신입사원 때는 일이 없을 때 느끼는 불안감이 큰 법이니까.
나도 처음에 일이 한동안 없을 때, 나를 믿지 못하는 건가.
내가 일을 잘 못 하나 싶어서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신입분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저번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크게 개의치 않아 하시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관두지 마시고 오래만 다녀주세요!
짧긴 했지만 그래도 간만에 제대로 푹 쉴 수 있는 휴일이었다.
다음 주에도 쉬는 날이 있으니 다시 열심히 해야지.
이만 줄인다.
Magdalene
21.08.09
제주도의 푸른 하늘이랑, 맑은 바다가 정말 보기 좋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