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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아빠의 출소   neuf.
조회: 507 , 2024-02-03 18:58


지난 1월 말에 아빠가 출소했다
벌써 시간이 10년이나 지났다
아빠가 출소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별로 불안하진 않았다
그냥 혹시 모르니 나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최소한의 대비는 해두어야겠다 생각했다.

폰번호, 주민번호 등을 변경해두고 
등본과 가족관계등록부를 열람하지 못하게 조치를 취해두어야겠다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게을러서 아직 하지 않았다ㅎㅎㅎ
너무 대책이 없는 건지 아님 마음이 단단해진건지~

사실 그가 당장 찾아와서 해코지를 할 깜냥이 아니라는 자신감이 있다.
집에서나 군림했지 밖에 나가서 큰소리 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제 앞가림이나 열심히 할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여러모로 준비는 해두려 한다.
어제는 오랜만에 친척 동생을 만났다.
지금 내가 대략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지 잘 아는 친구라,
혹시라도 큰아빠 큰엄마에게 이야기하지 말아달라 당부도 할겸.
사실 이 아이가 어디까지 사건을 알고 있는지 몰라서,
그동안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동생도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보다 동생은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의 작은 아빠가 언니를 성폭행해서 감옥에 갔다왔다는 걸.
그리고 내가 왜 자기를 만나자고 했는지도
어렴풋이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언제 이렇게 컸지, 싶은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저녁으로 고기를 사주고,
카페에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주변에 사람이 하도 많아서 아무래도 얘기하긴 힘들겠다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동생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님에게는 어디서 만나는 지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걱정말라고.
내가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하니 
그냥 집에 가버릴까봐 말을 꺼낸 모양이다ㅎㅎ
동생이 나보다 낫다.
덕분에 이야기의 물꼬가 터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동안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고 연락이 끊겨 미안하다는 마음도 전하고,
왜 집안 어른들과 연락하지 않고 지내는지도 알려주었다.
동생은 다 이해한다고 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이야기하는데 동생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을 흘렸다.
왜 우냐 했더니,
언니가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서 눈물이 난다 했다.
그래도 잘 지내보여서 다행이라고.

누군가 나를 위해 울어준 것이 오랜만이라 나도 위로를 받았다.
어른보다 동생이 낫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위로한다는 것은
언제 꺼내들어도 맞는 말이다.
아니 오직 사람만이 '제대로' 위로해줄 수 있다.

오랜만에 가족들 안부도 듣고
아빠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들었다.
친가의 가족들이 거처를 마련해주고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자체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와서 발붙이고 살 곳이 있고
스스로 밥벌이가 가능해야 엄하게 나와 내 동생을 찾아올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거두는 가족들이 있으니 더 비뚤어지지는 않겠지.

동생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나니
큰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고
스스로도 뿌듯했다.
나 또 많이 컸구나.
잘 해나가고 있구나.

조만간 큰아빠와도 통화를 한 번 해야겠다.
아빠 단도리 제대로 하고
우리 가족한테 찾아오지 못하게 관리 제대로 하라고.
끝까지 책임지라고.

그리고 반성하고 뉘우치게 하는 게
가족들 책임이라고.
그 새끼가 개과천선하지 않는 이상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과할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만,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하는 일이 그거라고.
그리고 가족으로써 형으로써
가장 하게끔 해야 하는 게 사과라는 걸
늘 기억하고 책임감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신들은 그 때 나를 찾아와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할 게 아니라
아빠를 끌고 와서 나한테 무릎 꿇리고 용서를 빌게 했어야했다고.
내가 받아야 할 것은 합의금이 아니라
진심어린 사과와 합당한 보상이라고.
난 그 무엇도 아직 받지 못했고,
아빠와 가족들은 나에게 그것을 빚졌다는 점을
늘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
.

마음이 한층 단단해진 것이 느껴진다.
앞으로도 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살아가야지.
내 삶을 온전히 끌어안고
힘차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