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3132 , 2010-07-14 10:40 |
어느 신문기사에 났다는데 퍼왔습니다.
저도 이때 400억 로또 기억나는데 말이죠 ㅎㅎ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제19회 로또복권 추첨에서 407억원(실수령액 317억원)에 당첨된 강원지방경찰청 소속 박모 경사 형제를 3개월간의 끈질긴 노력끝에 밀착 인터뷰했다.
■ 당첨 뒤 아이들 서울 전학가자 "너희 로또지?"
week& 취재진은 일주일여의 추적과 설득 끝에 1등 당첨자인 박모씨의 친동생 박운재(가명.37) 경사부터 만났다. 강원지방경찰청 소속 현직 경찰관인 박경사를 만나는 일도 첩보작전을 연상케 할 만큼 어려웠다. 인터뷰는 로또 당첨자인 형 박운성(40.가명)씨의 허락을 받아 이뤄졌다. 형제 경찰관이던 이들은 우애가 남달라 보였다. 서울(국민은행 본점)에 당첨금을 받으러 갈 때도 동행했다.
형 박씨는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처음 취재를 시도하자 "언론에 노출되고 싶지 않다"며 부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버렸을 정도였다. 부부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달 30일. 그날 저녁 취재진은 그와 어렵사리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짧은 통화에서 박씨는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자신의 향후 계획 등을 밝혔다.
동생 박경사를 만난 곳은 그가 사는 강원도 A시의 한 카페. "오늘은 쉬는 날"이라며 사복 차림으로 나온 박경사는 사진기자까지 동행한 취재진을 무척 부담스러워했다. "큰 말썽 없이 주변의 이목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라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러나 몇마디가 오가면서 그도 서서히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취재진은 이 때부터 박경사와 두차례 만났고, 10여회 통화하며 '대박 가족'의 꿈과 고민을 들었다.
"그날 일요일(4월 13일)에, 새벽 같이 전화벨이 울렸죠. 형한테서 온 전화였어요. 딱 한마디 하셨죠.'빨리 집에 왔으면 좋겠다'라고요. 저는'생일 잔치가 있어 가기 힘들 것 같다'고 했죠. 그래도 형이 무조건 오라고 채근하더라고요." 그 길로 형 집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형제들은 물론 고향인 강원도 홍천에서 혼자 사는 어머니(62)까지 이미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제 앞으로 형은 1등 번호가 적힌 로또 복권을 내미셨죠. 그런데 이상하죠. 그냥 덤덤하기만 하더라고요. 다른 식구들도 그런 표정이었어요. '우리에게 정말 엄청난 일이 생겼구나'라고 실감이 난 건 몇시간이 지나서부터였지요. 그날 모인 식구들은 모두 뜬눈으로 밤을 새웠어요."
다음날인 14일. 가족들은 당첨 소식이 퍼지면 크게 시달릴 것이라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형 박씨와 박경사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정상적으로 직장에 출근해 일을 봤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수요일 형님과 함께 로또 상금을 찾으러 가는 차 안에서도 아무 말도 못했죠. '아, 뭔가 착각하셨군요'라는 말과 함께 당첨금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짓눌린 거죠."
그런 형제가'기적'을 실감한 것은 당첨금이 입력된 통장을 건네받을 때였다고 한다.
"통장 맨 윗줄에 3백17이라는 숫자와 동그라미 8개가 선명하게 찍혀 있더라고요. 세금을 뗀 당첨금이었죠. 그제서야 긴장이 탁 풀렸죠. 형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번진 것도 그때였어요."
(박씨 형제는 당첨금을 관리하는 국민은행 측에 당초 17일(목)에 돈을 찾아가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을 바꿔 하루 전날인 16일, 아무 연락 없이 은행 영업이 끝날 무렵인 오후 4시30분 당첨금을 조용히 찾아갔다.)
형은 당첨금을 받은 직후 사표를 냈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박경사는 다소 긴장이 풀렸는지 묻지도 않은 로또 당첨 뒷얘기도 풀어놓았다.
"형이 경찰서의 의경을 심부름 보내 로또를 산 것은 맞아요. 그 때문에 그 친구에게 사례금조로 몇억원을 챙겨줬다는 소문도 났지요.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아마 형이 따로 고마움을 표시할 생각은 하시고 있는 것 같아요."
관심을 끈 것은 형이 태어난 집에서 로또 2등 당첨자도 출생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집은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에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에요. 형보다 앞서 2등 당첨금을 탄 사람도 이전에 저와 형이 태어났던 집에서 출생해 자랐지요(그 2등 당첨자는 지금 박경사 모친의 집 뒷집에 살고 있다).
"덕분에 전국 각지에서 풍수학자와 지관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죠. 그 집의 지세가 복조리 같은 모양이라고 하더군요. 돈이나 복을 가득 담을 그런 형세라나 뭐라나요."
1등 당첨을 예고하는 징조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한다.
박경사는 "형은 물론 식구들 누구도 복권 당첨을 연상할 수 있는 꿈을 꾼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이쯤에서 정말 묻고 싶던 질문을 했다.
"로또에 당첨된 뒤 가족들이 돈을 얼마나 펑펑 써 보셨나요?"
"어머니와 우리 형제 등 가족들이 모두 모여 일식집에 간 적이 있어요. 여덟명이 먹었는데 30만원쯤 나왔나. 가족끼리 그렇게 비싸게 먹어본 건 처음이죠."(답변이 조금 실망스럽다).
"한턱 내라는 주변 사람들 성화에 한번 술을 샀어요. 생각보다 비싼 곳에 가더라고요. 술값만 한 50만~60만원 나왔어요. 하루 건너 야근하며 챙기는 월급이 기껏 2백만원 정도인데…."
■ 두려웠던 석달..모친 강도 당할까 파출소 대피
당첨금을 받은 며칠 뒤 형 박씨와 형수, 그리고 두 조카는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예고없이 들이닥친 엄청난 행운, 그리고 갑자기 몰려드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웠던 거다. 그들은 20여일 동안을 그 곳에 머물렀다. 가족들은 물론 '4백억원의 사나이' 박씨에게도 해외 나들이는 처음이었다. 쫓기듯 나간 여행이었기 때문에 생각만큼 즐기지 못한 것 같다고 박경사는 말했다.
"국제전화로 넘어오는 형의 목소리가 그리 밝지 않았어요.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 그쪽은 좀 잠잠해졌냐'라는 말만 계속 하더라고요."
생각보다 길어진 외유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전의 삶을 찾기엔 이미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조카들이 흔들렸다. 혹시나 하는 걱정 때문에 보름 이상 학교를 가지 못하면서다. 며칠 간의 고민 끝에 형 박씨는 끝내 20여년간 정을 붙여온 A시를 등졌다.
그리고 서울의 한 최고급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형은 저와 친지들이 있는 이 도시에 머물고 싶어했어요. 그러나 그 다짐도 며칠 만에 무너졌지요. 이사간 곳은 외부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형이 며칠 전에도 약간 술 취한 목소리로 하소연하더라고 했다. 이젠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형은 친구들이랑 어울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걸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 재미를 못느끼죠. 외로움을 참다 못한 형이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 전화했는데, 돈 얘기부터 꺼내는 사람들도 있고. 형이 그런 거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의 말대로 로또는 그의 가족들에게 엄청난 부(富)를 선물했지만 대신 평범한 삶과 조촐한 행복, 그리고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을 대가로 빼앗아간 듯했다.
■ 근황, 그리고 사연들..피신 외유 → 서울 고급아파트 '피난'
취재진은 이틀 뒤 다시 A시로 달려가 동생 박경사와 또 만났다. 이번엔 소줏집이었다. 술잔을 연거푸 돌린 뒤 그에게 물었다. 로또 당첨 이후로 형과 가족들이 행복해졌냐고.
"사실 가족 전체로 보면, 잘 된 일이죠…. 어머니가 고생 안하셔도 되고요."
그런 그의 목소리에 왠지 힘이 없었다.
"누구나 이런 행운이 오기를 한번쯤은 기다리는데…. 한데 가끔은'그 많은 사람 중에 하필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까지 성실하게 보람을 느끼면서 잘 살아왔는데, 왜 이런 일 때문에 불편해져야 하나 싶죠."
'불편해진다…?'왜 그런 말을 할까.
수백억원의 행운을 잡은 형을 둔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 말. 그냥 '행복한 엄살'처럼 들리기도 했다.
잠시 당혹해하는 취재진에게 그는 "기적은 기쁘지만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예전엔 가족들끼리 농담으로 '3억원 정도의 복권에만 당첨되면 당장 일을 때려치운다'고 말하곤 했죠. 그런데 막상 현실이 돼버리니까 '그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친구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 마시고 싶다"
그는 또 "예상치 못한 건 아니었지만 마치 끓는 물처럼 주변이 부산해졌다"고 했다. "이런저런 단체니 하며 손을 내미는 사람들은 그래도 이해될 만 하더라"고 그는 말했다. 길게는 몇십년 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불쑥 나타나 '돈을 못주겠으면 보증이라도 서 달라'며 달려드는 주변 사람들에겐 미운 감정마저 생겼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솔직히 실망했죠. 사람 관계라는 게 이런 건가 하고요. 이런 일이 생긴 뒤에는 사람을 잘 못믿겠어요."
아무튼 형은 물론 박경사 부부 등 모든 가족이 하루에만 수백여통씩 쏟아지는 전화 공세에 시달리다 끝내 집 전화와 휴대전화 번호를 모두 바꿔야만 했다. 박경사도 가까운 친구나 친지 등 80명의 전화번호만 휴대전화에 입력해 놓고 모르는 전화번호가 찍히면 아예 받지 않는다고 했다. 곤욕을 치른 것은 그들 형제만이 아니다. 홍천 집으로 되돌아갔던 그의 어머니는 파출소로 피신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형님이 복권에 당첨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 채 2, 3일도 안됐을 거예요. 새벽부터 어머니 집 근처에 험상궂고 낯선 사람들이 어슬렁거린다는 이야기가 돌았나봐요. 그러자 신변보호 차원에서 동네 파출소 직원들이 아예 어머니를 데리고 간 거죠."
그 길로 그들은 어머니를 형제들이 살고 있는 A시로 모셔왔다. 그는 "그 덕에 어머니가 살던 집은 흉가처럼 비어버렸지만 내려가보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상 생활을 '중심잡고' 해나가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동네에선 이제 박경사 가족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웃들이 지나갈 때마다 일부러 한마디씩 던지죠. '형님으로부터 돈도 챙기셨을 텐데''언제 이사갈 건가요''차도 이제 바꾸셔야죠'…."
대꾸하고 싶지만 또 다른 말꼬리라도 잡힐까봐 애써 모른 척한다. "엊그제만 해도 가족처럼 터놓고 지내던 이웃들과도 서먹서먹해진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로또 당첨금으로 생긴 번민과 부담감이 당사자인 형 박씨와 가족들만큼 할까. 박경사가 전한 형의 근황은 그래서 다소 우울하기까지 했다.
그는 "형의 가족들은 정든 A시를 떠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조국마저 등져야만 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유는 역시 어린 자녀들 때문이었다.
전학간 서울시내 모 초등학교의 아이들이 박씨의 자녀들에게 "너희들 로또지"라며 수군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사실이 알려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그 일로 가뜩이나 혼란스러워하던 아이들은 씻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박경사는 전했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형은 마침내 아이들과 형수를 데리고 조만간 한국을 뜨기로 결정했어요. 조카들이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기가 힘들다는 판단을 내린 거죠. 한동안 아이들을 그곳에 남겨둘 생각을 하시나봐요. 물론 형은 자리가 잡히는 대로 금방 돌아오겠다고 하시지만…."
그는 형수 이야기도 꺼냈다. 형수는 로또 당첨 직전까지 간호사로 일했다고 한다.
"로또 당첨 이후 지금까지 형수의 몸무게가 5㎏나 빠졌어요. 형수가 '차라리 도련님이 당첨됐으면 좋았겠다'는 말까지 하시더라고요. 자신들이 당첨되는 것보다, 옆에서 조금 얻어다 쓰는 게 차라리 맘 편할 거라고요."
지난달 30일 전화 연결이 된 형 박씨는 "그곳에 남아서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동생 가족과 어머니에겐 미안할 따름"이라며 우울해했다. 박경사 자신도 최근에야 겨우 로또 당첨의 충격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명색이 경찰관인 남편을 둔 집사람이 지난주까지도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녀석의 등하교 시간에 꼬박 붙어다녔어요."
그래도 낙은 있단다. 그 중 하나가 친구들에게 로또를 대신 사주는 심부름(?)을 해주는 일이다.
"심지어 내가 낸 돈으로(복권)을 사야 한다고 해서 사주기도 했지요. 물론 아직까지 당첨된 사람은 없지만요."
■ 어려운 이웃 돕고 싶어 …
동생 박경사는 "(가족들은)이제 솔직히 돈 걱정은 없어졌다. 그런 점에선 행복하다면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으로 얼마씩을 나눠 갖기로 했는지에 대해선 끝내 답을 피했다. 어찌 됐든 형 박씨와 그의 형제.가족들은 돈과 관련된 속박에서는 분명히 벗어났다.
박씨는 아이들과 함께 해외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사업이나 새로운 일을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것 같다고 동생은 전했다. 형 박씨는 취재진과의 전화 통화에서 향후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조금 내비쳤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나설 생각입니다. 다만 나한테 직접 전화를 걸거나 요청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내가 직접 어려운 사정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나서 도움을 줄 계획이에요." 박씨는 이미 불우이웃돕기로 20억원, 자신의 딸.아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에 장학금 2억원 등 총 32억원을 사회에 돌려줬다.
박경사는 "형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 생각도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 그럼 박경사는 어떻게 살 계획일까.
"저요? 지금처럼 열심히 일해야죠. 정년 퇴임할 때까지 다니고 싶어요. 순경으로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경위를 다는 게 꿈입니다. 형님도 승진 시험준비를 다 해놓았었는데, 경위 승진 시험을 못보고 그만두어서 참 아쉬워했어요."
세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취재진과 헤어지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등심보다 삼겹살이 좋아요. 돈은 있으면 편하지만 대신 골치 아프죠."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근데 저 요즘도 가끔 로또 사요."
(마지막 취재가 이뤄진 지난달 30일 朴경사는 "사정이 생겨 다시 휴대전화의 번호를 바꿨다"고 알려왔다. 취재진은 굳이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400억 로또에 당첨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