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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빨간
 널린 책, 책 담는 사람   2010
조회: 2824 , 2010-11-16 23:24
오랫만에 시간을 내어 서점에 갔다.
여전히 많은 책.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람에 의해 선택되어지기를 바라는 책들이 저마다의 얼굴을 뽐내며 기다린다.
책들 속으로 들어간다.
양쪽에 쌓인 책들은 가을산 산책로에 우뚝선 나무처럼 위풍당당하다.
내가 찾는 건 소설.
쑥 빠져들어 밤을 반쯤 세워줄 그런 책을 찾아 뒤졌다.
한동안 나도 직장인이 되어 일에 힘겨워지고 사람들의 관계가 버거울 때 자기계발 책을 찾았었고
자취가 시작되어 요리며 건강에 대한 책을 찾을 때도 있었다.
문득 소설의 섹션에 서서 이 원을 둘러싼 바깥 섹션을 보니 참 힘들다.....싶다.
사람들. 옛날에도 그랬겠지
끊임없이 사람에 힘들고 사람에 기대어 소주 한잔을 기울이게 되고 밤늦게까지 불을 켜놓았었겠지
이제 그 불을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들었다.
손에 자격증, 어학, 자기계발서를 들고 불을 밝혔다.
그 책들이 없었을 때에는 언니, 오빠들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지금 그런 언니, 오빠, 형들은 없다.
대신 멘토가 등장했지만 이 이름은 마치 '이것은 악어가죽입니다. 00의 악어를 잡아서 벗겨낸 최고급 가죽으로 만든 상품이죠. 잘 빠졌잖습니까? 믿고 가져가십시요. A/S는 3년 이내 가능하십니다.'라고 하는 점원의 잘 포장된 말투가 권하는 물건같다.

책 속을 거닐며 내가 지금까지 지내왔던 시간을 되짚어보았다.
이 책들 속에 나의 시간이 담겨있다.
7년이라는 낯선 길에서의 시간이 어디로 갔을까
공허했고 쓸쓸했고 앞이 보이지 않아 붙잡았던 것이 책이었고 그마저 깨달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졌었지만 오히려 편안히 내려놓음으로 내가 걸어왔던 길이 보인다.
살짝 떨었었고 두리번거리고 무언가를 붙잡고 싶어하는 내가 있었구나

사람이 책을 만든다
그 책을 사람이 담는다
내가 보아왔던 책 중에는 마음에 담은 책도 있었고 그냥 거두어두었던 책들도 있었다
앞으로도 많은 책을 사겠지만 이렇게 사람이 그리울 때는 책을 마음에 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재미있는 사람도 되고 싶고 멋진 사람도 되고 싶었지만
늘 그래왔듯이 감동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지켜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