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나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지나치게
착하게만 살아왔다.
그래서 내 속은 아마 지금쯤 썩어문드러져 있을 것이다.
내가 계속해서 착한 사람이려 하는 이상
나는 절대로 타인과 분리될 수 없다.
어느 정도의 이기심이 나를 타인과 분리해줄 것이다.
감정의 경계없이 타인과 이어져 있는 것은
나로 하여금 배려를 넘어 타인의 감정마저 내 감정으로 끌어들이게끔 한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사람들은 다 저마다 알아서 자신의 앞가림을 하고들 살아가는데도.
나는 무슨 세상의 어머니라도 된마냥
모든 사람을 걱정해주고
모든 사람을 배려하고
모든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살았던 것이다.
고결한 희생이 아닌
쓸데없고 자학적인 희생.
이제는 나빠야지.
나빠도 돼.
그지?
난 좀 나빠도 될 것 같아.
이제 좀 나빠져야겠다.
.
.
그래도 괜찮음을
그래도 나는 존재 가치가 있음을
그래도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음을
사람들은 별로 나를 싫어하지 않을 것임을.
본래의 내 모습을 찾자.
초등학생 때 그 짖궂었던 하나로 돌아가자.
그게 진짜 나다.
어느 순간부터 빨래가 뒤집히듯
자신 속으로 말려들어가 버렸지만
이제는 다시 똑바로 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갖고 싶은 것은 다 욕심내고
욕심 냈는데 못 가지면 화도 내고
친구랑 싸우기도 하고
욕도 하고
치고박고 때리기도 하고
짖궂은 장난도 쳐보고
놀리고 도망간 남자애를 잡으러
운동장 한 바퀴를 달려도 보고
결국에는 목덜미를 잡아서
호되게 두들겨 패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좋아한다고 고백도 해보고
매일 아침 음료수를 사다가 남자친구 책상서랍에 넣어줄 정도로
열성적으로 연애도 해보고
그러다가 싫증나면 차보기도 하고
차이고 나서 울어보기도 하고
이래도 보고
저래도 보고
학원가기 싫으면 엄마 몰래 땡땡이도 치고
만화책도 잔뜩 빌려다가 읽고
친구집에 놀러도 가고
남자 애들이랑 어울려서 아지트 만든다고
점심 시간마다 학교 철망 넘어가다가
바지도 찢어먹어 보고
남자애랑 장난치다가 남자 화장실 쫓아들어가다가
잠바도 찢어먹어보고
먹기 싫은 반찬은 니가 싫든 말든
앞자리에 앉은 남자애한테 죄다 먹이고
내 동생 놀린 남자애는 쫓아가서 때려주고
그러다가도 여자애들이랑 같이 인형가지고 놀고
친구가 100일 선물로 장미 접는다는 거
밤 새워서 손이 빨개지도록 같이 접어주고
학교 끝나면 삼삼 오오 모여서
텀블링 타러 시내도 나가고
집에 돌아오면 어디 놀 사람 없나
이 친구 저 친구 연락하고
친구집 가서 게임하고
놀이터 가서 높은 곳에 올라가 놀고
그러다가 동네 꼬마애를 때려서 할머니랑 추격전도 펼쳐보고
그러다가도 또 그 꼬마애네 집 가서 블럭 가지고 놀고
씨름장에 구덩이를 파놓고 친구를 빠뜨리기도 하고
물놀이 가서 배꼽 빠지게 웃어도 보고
친구 생일 선물이라면서 과자집도 만들어서 주고
고기 뷔페 가서 숨도 못 쉴 정도로 먹어보고
친구가 왜 자꾸 놀리냐고 하면
나만 놀렸냐고 쟤도 놀렸다고 승질도 내고
남자 짝꿍한테 지지 않겠다며 맞서다가 맞아도 보고
뒷담 쪽지 주고받다가 당사자한테 걸려놓고도
얼굴에 철판 깔고 말대답도 해보고
나 말발 세기로 진짜 유명했었는데ㅋㅋㅋㅋ
말싸움으로 나 이길 수 있었던 사람 없었어, 맞아.
재밌다, 히히.
친구들이랑 말로 싸우면 다 내가 이겼는데.
힘으로 싸워도 여자애들은 내가 다 이겼지.
남자애들은 나랑 싸우면 내가 자주 하는 '뭐, 뭐'를 따라하곤 했지.
대찼는데 말이야, 그 때는.
남자애들 사이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그 땐 나빴어.
짖궂었지.
여자애들이 나를 싫어했다니까, 놀린다고?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이런 부류였어.
여자애들이랑 같이 고무줄을 하고 놀다가도
남자애들이 끊으러 오면 그거 도와주고 같이 도망가는ㅋㅋㅋ
그래서 나를 싫어하는 여자애들도 꽤 됐지만
그래도 나는 적어도 행복했고
(물론 내가 괴롭힌 여자애들에게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나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만큼 많았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싶은 말대로 다 하고
욕은 욕대로 다 하고 때릴 건 때릴 대로 다 때리고.
그런 나는 반에서도 참 인기가 많았고
친구들은 무언가를 결정할 때면 언제나 나의 의견을 물었었다.
하나한테 물어보고 결정하자고.
성격이 대찼었기 때문에 반에서도 항상 영향력이 있었는데.
그렇게
나쁜 아이였는데.
지나치게 착하게 살아왔다.
뒤집어진 빨래처럼.
.
.
이제 다시 초등학생이 되려 한다.
초딩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