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서   치유일지
  hit : 2612 , 2013-02-17 13:01 (일)



진술서를 쓸 준비를 시작하려 한다.





무섭다.
하기 싫다.

무엇이 떠오를까.
어떤 느낌이 들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있을까.

오랜만의 복학인데
친구들하고 웃고 떠들고도 싶고
공부도 잘 하고 싶고
학교 생활도 잘 하고 싶은데
이런 일만 없으면 나 정말 잘 할 수 있는데.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고
성적도 잘 나오고
학과 활동 같은 것도 적극적으로 잘 할 수 있는데.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너무 슬프고 억울하다.



.
.


하지만 말이야
학교 생활은 언제든지 또 할 수 있어.
내년에 해도 되는 거고
내년이 안 되면 내후년에 해도 되는 거고.


내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중요하고
절대로 지나쳐서는 안 되는
그런 중요한 일을 나는 해야 되는 거야.

그러니까 다른 것들이 하고 싶어도
조금만 참자.
못 해도 상관 없어.
언제나 잘 해야 할 이유는 없잖아.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모습만을 보여야 하는 건 아니야.
누가 나에게 그렇게 요구하니? 



결국 그런 모습을 바라는 건 나 자신이야.
다른 사람들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 
사실 자신의 모습밖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

처음엔 변한 모습에 깜짝, 
하고 놀라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그저 그런 거야.
다시 자신의 삶 속으로 침잠되어 가지.


나는 그저 나의 인생을 살면 되는 거야.



.
.


겉모습에 조금 신경을 못 쓰고
조금 우울하고
사람들과 조금 잘 지내지 못 하고
수업을 충실히 듣지 못하고
학교 생활을 잘 하지 못할 수도 있어.

그래서 친구를 많이 만들지 못할 수도 있고
그다지 중요하고 소중하고 멋진 경험을 
많이 못할 수도 있어.
그렇게 조용하고 가라 앉은 학교 생활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말이야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느라고 그런 거야.

학교 생활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훨씬 더 나에게 소중한, 
그리고 해야만 하는 그런 일.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고
멋지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거야.
나는 특히 전 남자친구에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사실 그러지 않아도 상관 없어.
전 남자친구 눈에 잘 비치려고
다른 사람 눈에 비치려고
내 인생을 조종하지는 말자.


나는 그저
나의 발걸음에 충실하면 되는 거야.



.
.



심호흡 깊게 하고.
떠올리자.
기억 뿐만 아니라
상황과 감각,
그 때의 감정까지 모두 다.

생생하게.
그리고 분출하고 괴로워하고
해소하자.


그래야 해.
그래야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어.



.
.


글로도 해보고
글로 다 안 되면 
작은 말하기 같은 데서 말 해보고
거기서도 다 안 되면
상담사 선생님한테도 이야기하고
친구들한테도 이야기하고.

들어줄 수 있는 모든 사람들한테 가서
내 이야기를 하는 거야.




.
.



내가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너무너무 힘든 마음에
온갖 사람들한테 징징거렸던 것처럼
그렇게 사람들한테 징징대면 되는 거야.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넓은 마음으로 나를 받아줄 거야.




.
.




후아 
하나씩.
천천히.

많잖아
셀 수도 없으니까.

좀 오래 걸릴 거야, 통과하기까지는.
하나도 대충 넘어가지말고
제대로 짚고 넘어가기.





.
.


7살, 
그 날부터
8살, 9살, 10살, 11살, 12살, 13살, 
14살의 그 1년
15살, 16살
17살의 극적인 탈출 
18살, 19살, 
20살 이혼까지, 


13년을.
정리하는 거야. 
그리고 벗어나는 거야.


22년 동안의 
끔찍한 징역살이에서
탈출하는 거야.
오로지 나를 위해.
나만을 위해.




.
.


13년을 정리하는 데는
그만한 시간이 들 거야.
똑같이 들지는 않겠지만
짧지는 않을 거야.


각오 단단히 하고.
준비도 단단히 하고.
잘해보자.
살아남자.




약속해.
힘들어도
자신을 해치는 행동은 하지 않기.
꼭.
내 잘못이 아니야.
나를 미워하진 말아.

그를 미워해.
그의 형상을 해쳐. 
상상 속에서 그에게 분노를 표출해.
몇 번이고 죽여도 좋아.

내 몸에 그러지는 말자.
나 자신을 죽이지는 말자.
나를 혐오하지 마.

가장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이 나를 하찮게 여겼다는 이유만으로
나까지 그래서는 안 돼.

나는 나를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지.
나 자신에게 가장 착한 사람이 되어야지.



.
.



나 자신에게 관대하기.
나를 용서하기.
나를 사랑하기.

나 자신을 죽이지 않기.
절대로.

이 시간은 지나가.
반드시 지나갈 거야.
죽지 않고 통과 했을 때
나를 마중나와 
기다리고 있을 행복을 생각해. 


반드시,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어.
다 통과할 수 있고
다 지나갈 거야.

기억해.
살자.

꽃과시인  13.02.17 이글의 답글달기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 보셔요...
어제를 그제를 작년을 재작년을 5년 전을 10년 전을 사시지 마시고...
아직 남아 있는 오늘을....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살아보셔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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