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trois.
  hit : 3399 , 2013-08-24 00:24 (토)


내가 가장 흥미로워하는 일을 발견했다.
Case Study.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부는 
나 자신에 대한 공부이다.
나 자신을 아는 것에 도움이 되는 공부도 함께.


이번 생에는
나에 대한
Case study를 진행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나랑 똑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비슷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참고가 될 수 있도록.

나도 인간인지라
많은 부분에서 다른 사람들하고 비슷할 테니
그 비슷한 면에 대한 통찰은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성폭행 피해를 입었던지라
특히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하나의 참고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
.


재미있는 일이다.

sam  13.08.25 이글의 답글달기

하나님의 글은 inspiring 합니다. 전 하나님이 용감하고 멋진 사람이라고 느껴져요. 그리고 굉장한 intelligence의 소유자로 보입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고요. 성폭행의 경험자는 아니지만, 성폭행 피해자의 자녀로 살고있어서 느끼는게 많고요. 한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것은 가해자가 왜 버젓이 햇빛을 보고 걸어다니는지에요. 그건 분명 잘못된 것이고 고쳐져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criminal justice system의 커다란 문제라고 보고, 반드시 고쳐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사는 곳이라면 몇백년의 형량을 받고 교도소에 있어야 마땅하거든요.

李하나  13.08.28 이글의 답글달기

안녕하세요, sam님.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그게 정말 이해가 되질 않아요. 이해가 되지 않아 혼란스럽기도 하지요. 너무도 당연한 일이 이뤄지지 않고, 절대 당연할 수 없는 일이 당연한 환경. 그것이 저를 더 혼란스럽게 하는 지도 몰라요.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추스르는 문제 외에 그런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심적 스트레스와 혼란까지 감당해야 하는 건, 확실히 문제이지요. 적어도 외적인 요소들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법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손상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법과 사회가 가해자를 단죄하지 못하니, 그단죄까지 피해자들이 고스란히 떠맡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피해자들의 단죄란 원망과 증오뿐이라서, 가해자를 처벌하기는 커녕 스스로를 찌를 뿐인게 참 슬퍼요. '몇 백년의 형량을 받고 교도소에 있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이 바라봅니다.

티아레  13.08.28 이글의 답글달기

하나양, 이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네요.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소하지 않는데, 다시 말해 그 잘못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데 법이 어떻게 작동될까요. 법과 사회가 어떻게 가해자를
단죄하지요? 법은 그런 식으로 작동돨 수 없지요. 당사자인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는 한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는 건지 아닌지 제삼자인 사회는 알 수도 없을 뿐더러 나설 입장도 못되지요. 피해자의 뜻과 의지가 가장 중요하고 그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하니까요. 법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이 저절로 작동되고 사회가 그를 단죄해주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 아닌가요. 하나양이 진심으로 가해자의 처벌을 원한다면 그러한 법적인 의사표명을 하는게 순서겠지요. sam님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은 이 점이 더 의아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얘기 비난으로 듣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혼란스러운 심경은 충분히 이해해요. 가해자가 남도 아닌 친부고 엄마나 가족들 누구도 도움이 되는 상황도 아니고. 하지만 피해자가 조용히 입을 다문 상태에서 가해자에 대한 단죄의 책임을 법과 사회에게 떠넘기는 태도는 하나양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李하나  13.09.07 이글의 답글달기

'법이 저절로 작동되고 사회가 그를 단죄해주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었어요ㅎㅎ이 댓글을 읽은 지는 오래되었는데, 머릿 속에 '?' 하고 물음표가 날아다녀서 금방 답글을 달지 못했어요. 내가 이런 말을 했었나? 내 댓글이 그런 뜻인가?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하고 고민고민 했거든요. 음, 하지만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법은 저를 찾아오지 않지요. 사회란 저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구요ㅎㅎ 왜 법이 아버지를 잡아가질 않는 거야, 왜 세상 사람들이 아버지한테 돌을 안 던지는 거야, 왜 그 사람의 죄를 모르는 거야! 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법이 제대로 돌아갔으면 좋겠고, 사회적 분위기가 그것을 받쳐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제가 제 이야기를 했을 때, 그리고 제가 법적인 조처를 취했을 때, 가감 없이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었어요. 물론 그런 시선들이 두려워 감추고 사는 사람들도 그런 시선들에 굴복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성폭행과 관련된 복합적이고 정의 내리기 어려운 이중적이고 묘한 시선들이란, 꽤나 부담스럽거든요. 제가 말한 외적 부담감의 해소란, 이렇듯 법적 의사를 밝힘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데 있어서 겪는 혼란과 부담감을 덜 수 있다면, 훨씬 더 살기가 수월해질텐데, 하는 아쉬움이었어요. 아버지라서 고소하기가 힘든 시기는 지났어요. 증거가 부족하거나 엄마가 증언을 해줄 지 몰라서 고소하기가 힘든 시기도 지났지요. 그런 뒤에 이제 제 앞에 있는 것은, 내가 고소를 해서 얻는 것과, 그 수사 과정에서 공무 수행자들의 태도로부터 입을 상처를 바꿀만한 것인가, 하는 고민. 그리고 과연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불확신, 등이예요. 물론 이런 저런 것들이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일상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런 부담감들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지요. 고소해서 더 큰 상처만 입고 말 것이라면, 그것은 어쨌든 저어되는 일임에는 틀림없어요. 그렇지만 마음 속에서는 계속 해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메세지를 보내오고, 고민되는 일상의 연속이지요. 지금이야, 유두리 있게 이것도 언젠가 답이 나올 것이라며 넘기지만, 더 어렸을 때는 이런 사실들이 저를 무겁게 짓눌렀답니다. '내가 떳떳하게 고소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정말로 나한테도 잘못이 있는 걸까? 내가 도망치지 못해서였을까. 사람들에게 알리면 나는 이제 남자친구도 못 사귀고 결혼도 못 하게 되지 않을까? 성폭행범의 가족이라고 엄마나 동생의 인생도 망치는 게 아닐까?' 어린 친구에게 이것이 얼마나 큰 중압감인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 아이가 주저없이 고소할 수 있는 환경, 그것이 있기를, 바란다는.

티아레  13.09.07 이글의 답글달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친부를 고소했을 때 법적처벌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그 여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나는 그에겐 거의 관심도 없어요.

하나양 자신에게, 상처입은 그 어린 친구에게 지금 어른이된 하나양이 스스로 떳떳한가의 문제...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핵심을 피해가지 않고 말해볼께요.

일부 타인들의 이중적이고 묘한 시선에 대한 부담감, 사회적 편견에 대한 두려움, 처벌 가능성에 대한 불확신, 수사과정에서 다시 입을 상처...
이런 모든 불리한 조건이나 환경은 분명히 큰 중압감으로 다가올 거예요.
그리고 하나양의 엄마가 하나양을 구해내지 않고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한 이유..
이런 것들과 많이 다르지 않을 거예요.

그 상황에서, 자신의 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런 저런 불리한 주변 환경을 더 크게 생각했다는 거요.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딸을 구출하는 게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과감히 행동에 옮기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받을 피해와 불편, 경제적 타격, 감수해야할 타인의 시선과 편견,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때 남편을 잃을 뿐 아니라 다시 남자친구도 못 사귀고 인생 망치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으로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외면과 수수방관만 했다는 거요.

하나양은 이제 그 어린 아이의 엄마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나이가 되었고, 지금 하나양의 정신적 고통은 그 아이가 하나양의 엄마로부터 받지 못했던 바로 그것을 지금의 하나양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시 얘기하지만 친부을 고소하고 안하고의 문제, 혹은 처벌이 가능한지의 여부, 이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하나양의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정당한 권리, 억울함을 호소하고 풀고 싶어하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어줄 것인가 하는 거겠죠. 현실적인 어려움, 일상에 미치는 부담감.. 이런 이유들을 이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어린 하나양은 당시 엄마의 우유부단과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그때 엄마가 하나양을 외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대화를 시도하고,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물어봐주고, 치료를 도와주고,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함께 방법을 찾고 서로 용기를 주며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더라면, 하고 바라지 않았나요.

아마도 진심만이 이 아이를 납득시킬 수 있을 거에요. 최소한 타인의 시선이나 현실적 일상적 여건보다는 자신이 더 가치있고 중요한 존재로 여겨지기를 바라지 않을까요.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눠보시길..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답은 그 대화에서 찾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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