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정리.  
  hit : 789 , 2014-01-16 19:33 (목)
  내일 상담을 받으러 가는데, 일하느라 선생님이 일러두신 걸 깜빡했다가 이제야 생각이 났다. 내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거니까 미리 정리를 해두라셨던 거..

  참으로 막막하다. 내 어린 시절, 기억도 잘 안 나고. 뿌연 안개로 뒤덮힌 것 같은데.
  친 아빠를 가장 원망하게 하는 기억은, 날 놀이동산에 데려가 자기 회사 동료라는 여자를 소개시켜준 뒤 사라진 것이다. 대체 날 왜, 아니 나에게 왜 그 여자를 보여준 건지. 아빠를 만난 지금에야 물어봤는데 처음에는 기억을 전혀 못 하더라. 아, 또 화나네..
  어릴 때는 엄마가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기억에 남은 건 어둠 속 뻘건 포장마차 하나. 그 뒤로는 술집을 하셨는데 나는 술 집 안의 룸에 칸막이 같은 걸 쳐서 살았다. 블라인드 따위 하나를 둔 채로.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어떤 남자가 내가 자는 곳에 들어와 날 성희롱했던 것만 생각난다. 엄마랑 이모가 그걸 보고 그 사람을 끌고 나갔었는데.
  그리고 또. 술집 안에서 안 살았을 때는 단칸방에 나 혼자 남아 새벽까지 울며서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 가게로 전화해도 새벽에는 좀처럼 받지를 않아서, 울면서 하느님께 기도를 참 많이 했다.
철길 옆에 살았을 때는, 엄마가 안 오나 나가서 기다리기도 했지만. 엄마가 아는 아저씨가 술집에 나를 데려가서 소주를 먹고는 술잔을 던져서 나는 우리 집으로 도망을 갔는데. 문고리를 잠궜지만 헐거워 그 아저씨가 들어와버렸고. 나는 울었고 그 아저씨는 '엄마가 다른 남자랑 있는 게 좋냐'며 내 뺨을 때렸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뺨 맞은 기억이다.
  그리고 또.... 엄마와 내가 동거했던 남자가 엄마랑 싸우고는, 엄마가 일 나갔을 때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밖에서 소리가 나서 방 불을 껐지만, 창 밖의 그 남자를 그걸 봤는지 '왜 없는 척 하냐'며 소리를 지르곤 우리집 유리문을 깨고 들어왔다. 나는 무서워서 자는 척해버렸고 그 남자는 침대 위에서 잤다.
이후 엄마는 '왜 자고 있었느냐'고 나를 나무랐다. 엄마가 이해가 안 갔다. 이 남자랑 싸웠는데도 또 다시 만났고 집으로 데려왔다. 이불을 사줬기 때문이랬나... 웃겼다.
  또.. 어떤 남자랑 동거.. 아 이건 앞의 남자 전이다. 이 남자에겐 나랑 성씨가 같은 딸도 있었다. 그 아이에게 친 엄마와 친 언니를 찾았다며 모두 거짓말을 했었는데.. 그리고 그 남자는 자기 딸이 클 때까지 진실을 얘기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어린 나에게.. 나는 죽을 때까지 얘기하지 않겠노라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하나... 얼마 안 가 다들 사라졌는데.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부질없다는 걸 진작에 깨달았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왕따를 당했다. 맨 처음 만났을 땐 내 초록색 필통을 주워준 남자애가 날 왕따시켰고.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같은 조 여자애가 날 따돌렸다. 그리고 반 남자애들은 때려 아침부터 피를 쏟기도 했고 티비에서처럼 교실 밖에 나와져있는 책상을 옮겨야 하기도 했다. 난 왜 그렇게 강했을까. 맞으면 아프다고 소리질러도 되고 힘들면 눈물 한 번 흘려도 됐었는데.. 초등학교 다닐 때는 정말 죽고 싶었다. 그런데 뛰어내릴 용기는 안 나고. 식칼로 목을 썰려고 했다. 그게 썰리나? 여튼 그만큼 죽고 싶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새아버지를 만난 엄마는 술집을 청산하고. 아이를 가졌다. 나는 칼을 엄마 배에 꽂아서 둘 다 죽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를 죽이는 상상을 너무 많이 했다. 그래서 엄마가 이제야 죽을만치 힘든가보다.
  엄마의 알콜의존증은 당연한 거였나보다. 씁쓸하네.

  예전에 어떤 커뮤니티에 내가 살아온 길을 간략히 적어 올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초등학생 때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고 그냥 좀 큼직한 얘기한 했었는데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응원했다. 좀 얼떨떨하면서도 '그렇게 응원받아 마땅한 인생인가' 싶어서 씁쓸하기도 했다. 내 삶 속에 들어오면 정말 별 거 없다. 남의 인생살이보다 조금 더 쉽게 지칠 뿐이다.
  이야기를 더 하면 더 지긋지긋하다. 중고등학생 때의 나는 우울의 끝판왕이었으니.

  요즘도 때로는 서럽고 때로는 죽고 싶다. 그런데 딱 하루, 오늘은 살만 하다. 어제는 죽고 싶고 다 때려치고 싶다가도 오늘은 살만 하다. 그리고 오늘이 죽을 듯이 힘들다면 내일은 살만 할 거다. 하루 걸러 하루 힘들면 하루만 참으면 된다. 하루만 안 죽고 참으면 내일은 살만 한 날이 되니까, 내일 살면 된다. 이러다 이틀은 살만 한 날이 될 거고, 사흘, 나흘, 계속 살고 싶은 날이 오면 좋겠다.
루비  14.01.16 이글의 답글달기

힘내세요 얼마나귀한생인데요 아무리힘들어도죽는거만큼은아니지요

프러시안블루  14.01.16 이글의 답글달기

토닥토닥

없음  14.01.17 이글의 답글달기

고생이 많았네요... 안쓰럽고... 죽고싶다는 생각이 드는건 괜히 그런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님 말대로 살만한 순간이 찾아오기에 버텨나갈 수 있는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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