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예민 - 자기비난 필터 청소   cinq.
  hit : 2501 , 2015-06-23 20:40 (화)


지금 나의 감정 상태는,
아마 '짜증'이라는 게 좀 맞는 것 같다.
오늘은 짜증나는 일들이 조금 있었다.


#1.

오늘 새벽,
학교에서 친구랑 밤을 새며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험 범위가 책 한 권이었는데,
나는 책을 전부 다 정독하면서 워드로 정리를 해가며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이렇게 해서 언제 다 해?'라고 물었다.
나는, '빨리 하고 기출 문제 보려고.'라고 대답했다.
친구가 웃으면서, 
'그걸 할 수 있겠어? 언제 해'
라고 말했다.
나는 짜증이 나서 
'하면 되지 왜 못 해'라고 대답했다.


#2.

밤을 새고 1교시에 시험을 보고 난 뒤 
친구들과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저녁 때까지 여러 동영상들을 보면서 쉬고 놀았다.
목요일까지 레포트가 있는 터라 
마냥 쉴 수는 없었다.
그런데 저녁 때가 되니 역시 밤을 샌 후유증인지
몸도 좀 피곤했고 정신도 몽롱했다.

잠을 자야 하나, 싶었는데
지금 자면 영락 없이 푹 자고는 새벽에 눈을 뜨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러면 나는 레포트 쓸 시간도 놓치고
밤과 낮이 바뀌게 되어서 좋지 않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이 카톡방에 이 말을 했다.
잠을 자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이라고.
한 친구가, 
지금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되지 뭐가 고민이냐고 물었다.
나는 잠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12시간을 잘 수는 없다.
아마 저녁 6시 쯤 잠이 들면 새벽 2,3시에 깰 것이다.
일어나서 뭔가 활동을 할 정도로 깬다기보다는
잠에서 깬 상태이지만 뭔가 활동을 하기에는 피곤하여
이불 속에서 사투를 하는 상태가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자면 새벽에 깬다고 했더니,
1,2시간만 자고 일어나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고
나약하다고, 친구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짜증났다.

그래서 
그건 네 경우고 
나는 지금 자면 새벽에 깬다고,
무슨 나약하냐고 대답했다.
물론 'ㅋㅋㅋㅋㅋ'를 많이 겻들여서.



.
.


요즘은 이런 식의 '짜증'이 쌓인다.
특히 룸메 언니와의 사이에 이게 많다.


#3.

룸메 언니가 장을 잔뜩 봐서 집에 들어온다.
나는 문을 열고 왔느냐고 인사를 한다.
언니는 '어'라고 대답한다.
뭐를 잔뜩 사와서 요리를 하길래
'뭐 만들게?'라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다시 '저녁 만들게?'라고 물어도 별다른 대답이 없다.

그러다가
'하나야 너 밥솥 잠금으로 돌려놓는 거 까먹더라'
라고 말했다.
나는 짜증이 났다.

'어'라고 대답했다.
언니는 '그럼 밥 맛 없어 질걸~?'이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어차피 코드 다 뽑아놓으니까 똑같아.'
라고 대답했다.


#4. 

나는 학기 동안 헬스 정기권을 끊었는데
약 한 달 전쯤부터 가지 않고 있다.
처음 두 달은 열심히 갔는데,
과제가 너무 많았던 어느 시기에 일주일 동안 못 간 적이 있었다.
처음 시작은 과제가 너무 많아서 못 간 거였는데,
과제를 다 끝낸 다음에도 잘 안 가게 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물론 귀찮아서기도 했고
두 번째 이유는 운동을 하는 게 썩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동 자체는 재밌지만, 
헬스장에는 뭔가 살을 빼려고 가는 것 같아서 별로였다.

트레이너도 나를 볼 때 첫 인사가 살과 관련된 거고
대화도 다 살과 관련된 거다.
그렇게 나는 헬스장에 가면 지금의 몸에서 
더 '예쁜' 몸이 되기 위해 두 시간 동안 이것저것 운동기구를 옮겨다니는 사람이 된다.

그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냥 학기 끝나면 태권도나 검도 같은 운동을 해보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룸메 언니가 운동을 안 가냐고 물었다.
나는 안 간다고 대답했다.
왜 안 가냐길래
그냥 과제 때문에 바쁘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언니가 '에- 아닌 것 같은데?'라고 했다.
나는 맞다고 했다.
언니는
하루에 30분이라도 가. 그래도 효과 있대.
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무슨 효과?
살?

그리고 살짝 짜증이 났다.



.
.

각각의 일들이 짜증이 날 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특정 상황과 말에 대해서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하는 일에 터치하거나,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짜증이 나거나
신경질을 낸다.

'네가 뭔데 참견이야'라는 생각이 작동하는 것 같다.
저런 문장이 짜증과 함께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냥 그 때 그 때, 
'나는 다 할 수 있어서 이렇게 공부하는 건데 왜 네가 못 한다고 난리야?'
이런 생각이 들지만,

그 저변에는
'닥쳐,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가 깔려있다.


.
.

흠, 
근데 이게 원래는 좀 큰일 - 진학, 휴학, 외국 출국, 취직- 에만 있던
자존심이었는데,
요즘은 작은 일에도 퍼져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너무 예민해지기도 하고,
사람들에게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돼서-
좀 고치고 싶다.

일단 생리할 때가 되어서 그런 걸 지도 모르니
일주일 정도 지켜봐보고
계속 그러면 잘 성찰해봐야지.




.
.


어쨌든 지금 잠시 성찰해보면, 
나는 누가 나에게 '그거 아닌 것 같은데', '못 할 것 같은데' 등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 하고자 하는 일에 피드백을 주면 
그게 이렇게 들린다.

'멍청아, 그게 어떻게 되냐? 넌 그것도 모르냐?'

약간의 필터가 있는 것이다.
조금 더 비아냥거리고 나를 낮추는 말투로.

그리고 내가 라면을 먹을 때마다 부스러기를 흘려서 그게 싱크대 밑에 쌓여있었다고
룸메언니가 내게 말해주었다. 그러면 내게는 그게 이렇게 들린다.

'아, 진짜 라면을 먹었으면 치워야지, 이게 뭐야 짜증나게.'


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비난'이라는 필터를 한 번 더 통과해서 들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나에게 조금만 지적을 해도,
굉장히 날카로운 공격을 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방어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아직 내면화된 자기 비난이 살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 이제 완전히 내 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그게 아니라,
그냥 내 편이 된 자아가 하나 더 있어서
내 편이 아닌 자아와 싸우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좋은 과도기다.
예전엔 내 편인 자아도 없었으니까.
어쨌든 아직 이 둘 사이의 통합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꼭 기억해두자.
기억해 놓는다면 이제 통합시키려고 노력을 하면 되는 거니까.



.
.


"나는 문제 없는데 너 나한테 왜 그래?"라는 말을 
포스트잇에 써서 책상 앞에 붙여놓았다.
그래서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하거나,
내가 그렇게 생각할 때면 저렇게 말하기로 했던 것이다.

'나는 문제 없어. 너 나한테 왜 그래?'
무조건적으로 나를 비난하지 않기 위한 내적 메세지 변경 과정이었다.
지금은 그 과도기인 듯 하다.

이제 비난이나 비판을 들으면,
'나한테는 문제 없어. 너한테 문제가 있을 수도 있어'라고 유치한 자기 방어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 구석에는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 남아 있어서
그 외부로부터의 비난이나 비판이 
실제보다 부풀려지는 경향이 있다.
이제는 그 필터를 한 번 청소해보고자 한다.

어떻게 하면 청소할 수 있을 지는 기말고사 끝나면 생각해야지.
레포트나 쓰러 가야겠다.
기쁘미  15.06.25 이글의 답글달기

짜증났던에피들.. 제가봐도 짜증나요..하나씨가이상한거아님- 앞으로 더싸가지없읍시다!! (..)

李하나  15.07.01 이글의 답글달기

헿 감사해요 기쁘미님! 그래도 되겠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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