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공장   cinq.
  hit : 2795 , 2015-10-29 17:13 (목)


사흘 째 공장에서 야간 일을 하고 있다.
생각보다 밤에 일한다는 이유로 더 피곤하지는 않다.
낮에 일해도 이 정도는 피곤했으니까.
같이 간 언니도 있어서 적응하기는 어렵지 않은데-

문제는 작업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된다.
왜 자꾸 소리를 지르는 지 모르겠다.
뭐가 좀 안 되면 그냥 말로 하면 안 되나?

컨베이어 벨트에 앉아서 일을 하는데
작업 속도가 느리면 와서는, 꼭 시비조로 말 하거나 소리를 지른다.

얌전한게,
"뭐해? 자? 빨리 안 해?"
이거고
더 심한 사람이 오면
"집에 가고 싶어?! 일 하기 싫어?!"

막 이러면서 소리를 지른다.
와우.
내가 노동자가 아니라 무슨 노예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정말 울컥울컥하는데 겨우 참는다.
이름도 안 부른다.
그냥 무조건 야.
자기들보다 나이가 많은 근로자들도 있는데
그냥 소리를 지른다.

뭘 또 못 하면
"너네 몇 살이야!? 이것도 못 해?!"
이러기도 하고,
불량이 나오면
"이게 하나에 얼만 줄 알아?! 불량 또 내면 너네 월급에서 깔 거야!!"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이런 분위기에서는 난생 처음 일 해본다.
인격이란 게 없다.

원래 공장은 이런 건가?
관리자가 뭐라고 한다고 하길래
그냥 잘못하면 심하게 혼내거나 꼬장을 부리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심하다.

이건 그냥 1:1로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뒷통수에다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니-
진짜 기분이 나쁘다.



.
.

내 유일한 낙은 잘생긴 남직원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내가 사흘 동안 배운 두 가지 일은
맨 끝에서 완성품을 받아서 통에 집어넣는 것과
맨 처음에서 검수를 해서 내려보내는 것인데,
둘 다 남직원들이 물건을 날라다주고
다시 가져가기 때문에
계속 내 옆을 들락날락한다.

그 덕분에 남직원들의 얼굴을 계속 보는데
그 낙으로 일을 하고 있다.
안 그럼 새벽 4시쯤 되면 영혼이 나가면서
'나는 여기서 왜 이걸 하고 있는가.
이 무시를 당하면서'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인간성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곳에서 왜 사람들이 오랫동안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같이 간 언니도 같은 생각이라서
앞으로의 거취를 의논해보기로 했다.

무슨 최소 5일은 일해야 돈을 준다고 하는데
그딴 게 어딨나, 노동청에 신고하면 받아주는데.
어쨌든 일단 돈을 벌어야 하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 지 정해지기 전에는 계속 일을 하고 있어야겠다.

하루에 8만원 정도 버니까
일단 한 달만 하고 다른 데로 가볼까, 생각 중이다.
그동안 일을 너무 안 해서 
지금 가진 돈이 없고
갚을 돈도 많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봐야지.

secret  15.10.29 이글의 답글달기

열심히 사는 모습 좋네요. 토닥토닥. 힘내세요

李하나  15.10.30 이글의 답글달기

감사합니다, secret님:)

向月  15.10.29 이글의 답글달기

라인작업관리자가 싸가지가 없나보네요-_- 신입이고 처음이다싶으면 더 독하게 굴어요 그냥 무시하는게 답이에요. 그래봤자 걔도 관리자라기보다 같은 주야돌며 생산직하는 근로자일뿐...
힘내요 하나양.

李하나  15.10.30 이글의 답글달기

넹 향월님ㅠㅠ다들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고 하는데 누가 이렇게 소리 지르고 그러는 걸 듣는 게 처음이어서 계속 울컥울컥 하네용ㅠㅠ

질주[疾走]  15.10.29 이글의 답글달기

하나님 고생이시군요.ㅎㅎㅋ 저도 공장알바를 한 4개월정도 길게 해봤었는데 그곳 환경자체가 그런 분위기인 것같더라구요. 책임자는 시간안에 위에서 내려온 주문을 소화해야해서 그런지 아랫사람에게 무례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어쩌면 이해도 가더라구요. 다른 파트책임자들도 서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책임자들끼리 다투는 모습을 자주 봤거든요. 그런 기민한 상태에서 온화함을 유지할수있는사람들은 정말 없어요.. 그리고 힘든 일이다보니 하루하고 도망가는 사람들도 넘쳐나죠. 그러다보니 알바형식으로 짧게짧게 일하고 도망가는 사람들을 자주 보다보니 상사의 그런 꾸지람은 어쩌면 진짜 당연할 걸수도있어요.저녀석도 며칠하다가 도망가겠찌하는 그런 은연중의 생각같은거요. 하지만 끈기를 가지시고 매달리시다보면 책임자도 하나님에게 정도 붙이고 인정해줄겁니다.. 제가 일해보니까 그렇더라구요. 힘내세요~

李하나  15.10.30 이글의 답글달기

ㅠㅠ저도 그 사람들의 원래 인성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서 관리자 개개인에게 감정이 생기지는 않아요, 근데 공장이라는 환경 자체가 정말 잘못 됐다고 느껴지더라구요ㅠㅠ생산량 달성을 위해서 사람을 그렇게 막 대하다니- 분명 오더가 그렇게 내려오고, 아마 관리자들의 암묵적인 지침이, 생산 속도가 느려지면 그렇게 잡도리를 하라는 거겠죠ㅠㅠ 응원 말씀 감사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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