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못하는 사람   huit.
  hit : 2754 , 2018-08-07 20:49 (화)

자신이 잘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을 잘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뭐든지 빨리 습득하는 편이고
몸으로 하는 것을 잘 한다.
계획성이 있고 추진력이 있다.

그러나 융통성이 없고
상황 판단력이 떨어지고
고집이 세다.

.
.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 하고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성실함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타인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인 것이다.

평소에 항상 무언가를 '잘한다'는 칭찬만 들어왔어서
나는 내가 일을 잘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을 하며 실수를 하게 되면 그 원인을 밖에서 찾았다.
저 사람이 이상한 거야,
뭐가 뭐가 문제여서 내가 못 한 거야-
내가 문제일 리가 없어.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일을 못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직장에서는 답답한 직원이었다.
대충 해도 될 것을 대충하지 않고 시간을 끌고
정작 중요한 것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 중요하다는 기준에 공감이 가지 않거나 동의하지 않아서)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서비스직으로 돌아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점장이나 사장이 나를 답답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나는 실제로 느리다.
대단히 게으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득달같이 빠른 것도 아니다.
헐레벌떡 음식을 만들고 음료를 만드는 동료들을 보면
뒤꿈치에 불이 붙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생각나기도 한다.
우리에 갇혀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이상 행동을 보이는 쥐같기도 하고-
사람이 저렇게 빨리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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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이 오가든
결과적으로 나는 일을 못 하는 사람이며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첫째로, 스트레스
둘째는 몸값이다.
첫째는 나는 지금껏 어딜 가든 '잘 하는' 쪽에 속했기 때문에
못하는 쪽에 속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학교 다닐 때도 아르바이트는 했지만 그 때는 학교 생활이 주였고
아르바이트는 서브였기에- 알바에서 욕 좀 먹어도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학교와 관련된 일에서 얻는 성취감이 아주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내 인생에서 학교는 끝이 났고-
(대학원이 남았지만 대학원은 열심히 한다고 우쮸쮸 해주는 곳이 아니므로)
일을 할 일만 남았는데
문득 현실을 돌아보니 내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일을 못하면 
나는 계속 적은 돈을 받으며 일을 해야 한다.
거기다가 스트레스는 또 스트레스대로 받고.

.
.


사실 알바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일을 잘 하는 축에 속했는데
점점 의욕이 떨어져갔다.
왜냐하면 내가 악착같이 하면 할 수록 동료들을 밀어내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내가 동료들이 1시간 걸릴 일을 30분에 하면
한 명은 잘려나갔다.
왜냐면 나한테 하나 더 시키면 되니까.

내가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면
나와 비교당하지 않기 위해서 동료들도 무언가를 만지작 거리거나,
혹은 정당히 쉬고 있음에도 왠지 열정적이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동료들의 실수를 지적할 수록
나는 일 잘 하는 사람이 되어갔고
나의 값어치는 점점 더 높아졌다.

그렇다고 동료들과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문득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서서히 동료들의 곁에 서기 시작했던 것 같다.
원래는 고용주의 마인드에서 생각했었는데-
그게 내가 일 못하는 사람이 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죽어도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돌아가지 않으면서 일을 잘 하고 내 값어치를 올리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동료를 짓밟지 않고
내가 내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내 동료의 권리까지 침해하지 않도록.
너무나 어려운 길이지만
나는 언제나 어려운 것을 택해왔으니까.

화이팅 :)

프러시안블루  18.08.07 이글의 답글달기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있어요

볼빨간  18.08.11 이글의 답글달기

자신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니까 타인도 아우를 수 있을 거에요. 사람들 틈에서 방법을 찾으려는 하나씨. 그 멋진 용기를 칭찬합니다. 저도 한 수 배워야겠어요. ^^

masterkey  18.08.15 이글의 답글달기

잘 읽고 갑니다. 오늘도 힘내세요!

타니파타  18.08.17 이글의 답글달기

여러가지를 고려하며 한 가지 일을 해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않은 것 같아요. 그러기에 위인들조차도 사람들 각각에게 다양한 평가를 받는거겠죠? 근데 결국 그럴거라면 나는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는게 어떤가 싶어요ㅎㅎ!!!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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