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휴식을 찾은 날   일기장
 구름 조금 hit : 797 , 2019-12-20 00:48 (금)
사람 일은 모른다. 다시금 일반인으로 돌아오니 많은 생각이 내 머리속을 지나간다. 행복했다. 남들과 다르지 않는 일상을 보낸다는게 행복했다. 인간이라는 개체에 실망하고 세상에 절망한 지난날들을 그냥 흘러보냈다.
그렇게 새로운 아침이 시작됬다. 간단하게 씻고 이부자리를 적당히 정리해 준 뒤 텔을 나와 로데오 거리로 들어섰다.
상쾌하게 시원한 공기가 나의 코를 스쳐지나갔다. 하늘은 높았고 내 앞길을 막는 것도 없었다. 지금껏 웃어본 적 없던 내가 나지막하게 웃는다.
22년이 지난 지금 부모님도 모르는 것이라면 난 흡연자다.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해 도피처를 찾다가 시작하게 됬다.
로데오 거리의 한 골목에서 담배 몇대를 태우고 있었더니 한 납품업자가 가게로 납품하는걸 보게됬다. 마땅히 다른 볼 것도 없고 내 시선을 끌 만한 요소도 없었기에 자연스레 그 쪽으로 눈이 갔다. 열심히 사는 사람의 일상, 그에게도 분명 마음 한 구석엔 그만의 고뇌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를 보고 생각에 잠길 때 즈음 그가 물건을 엎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별 생각 없이 담배를 피던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물건 정리를 도와줬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나는 어떻게 스쳐가는 인연을 하나 더 만든 것이다.
그는 감사인사를 하며 일을 시작했고 이내 곧 일을 끝냈다.
거의 30분동안 스모킹 타임을 가지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커플이 보였다. 나도 얼마전까진 손을 잡을 그녀가 있었지...
펀칭머신으로 내기를 하는 젊은 청년들이 보인다.
어릴적에 많이 했었지..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하는 중년의 남성이 보인다.
여유있는 얼굴로 일을 하는게 보인다. 아무래도 행복하게 사시는 걸거야.
거리는 평화로웠다. 하지만 내 옆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이게 내 업보라면 짊어지고 갈 것이다.
누군가 나보고 다시 사람들과 만날 생각이 없냐 물었을때 아니라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나도 사람이라 사람에게 미련이 많다. 정도 많이 간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다가와주는 사람은 없다. 내가 진 죄는 그렇게 큰 걸까? 필사적으로 살기위해 했던 일이고 남을 돕기위해 했던 일이고..결과적으론 실수로 인해 모든게 무너졌지만..
공허함과 고독함을 씹으며 모던바로 올라간다.
아직 오픈은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점장과 만나 서비스로 나만은 많이 일찍 들어가게 되었다.
여유를 즐기며 럼인 론디아즈를 부탁한다.
점장과 함께 담배를 피며 술을 한잔 나눈다.
나와 나이차이는 많이 나지만 좋은 말동무가 되어준다.
그와 함께 말을 나누며 술을 마시니 어느새 3시간이 지나있었고 점장은 만족한 듯 그날의 술값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현재 내 사정을 아는 듯한 배려였다.
난 감사를 표하고 가게를 나왔다. 가게 앞에서 담배를 태우며 고독을 씹던 중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업무 전화였다. 만만한게 나였다. 예전에 본업을 뛸 때부터 용돈 벌이 삼아 간간히 일을 받던 사무실의 전화였다. 하지만 나에겐 돈은 제일 적게 주면서 난이도가 높은 일거리가 들어왔다. 시간은 1시부터 8시까지..
최저임금에서 식대와 장비대여료를 받는다고 더 떼어낸다.
사실상 밥은 먹지 않고 연장 또한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미 과거에 돈을 많이 모아놔 돈 걱정은 크게 없지만 이런식의 전화를 받으면 괜시리 기분이 더러워진다.
담배를 하나 꼬나물고 나는 일 하는 곳으로 걸어간다.
일터에 도착해 일을 시작했다. 큰 일은 아니고 목공소에서 잡부를 하는 것이였다. 참 아쉬웠다. 일을 받을땐 옷이 더러워 질 일이 없다고 들었는데 막상보니 먼지날리는 작업장이였다.
정장을 입고 온 난 자켓과 셔츠를 벗어 걸어놓고 일을 했다.
그곳의 사장은 나에게 정말 잘해주었다. 어린 나이에 50년은 산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자주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23살로 나보다 한살 많은 사람이였다.
그는 나에게도 나를 좀 가꾸라고 장난삼아 말하며 내가 일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해주었다.
나를 가꾼다라..옆에서 코칭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고는 싶지만 한명이 있다면 포기하진 않을거 같다.
아무튼 일을 하며 느낀건데 과거에 비해 몸 쓰는게 확실히 굳었다. 틈틈히 운동을 해야겠다고 뼈 저리게 느꼈다.
일이 끝나고 나의 계좌를 적어두고 그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눈 뒤 텔로 돌아왔다.
오늘의 디너는 볶음밥과 중식을 위주로 만든 듯했다.
출출함을 달래고 난 내 방으로 돌아와 다시금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불안정하게 사는게 맞는걸까...
아는 사람이 나에게 은혜를 갚는다며 이 호텔의 장기 숙박을 끊어 주었다.
무려 두달치를 끊어 주었는데 이제는 한달이나 지났다.
가족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이제는 여자친구도 친구도 남지 않았다. 다들 떠나고 나 혼자서 살아남아야하니..너무나도 우울했다.룸서비스로 8만원짜리 와인을 한병 시킨다. 양주에 대해선 잘 알아도 와인에 대해선 무지한 나는 메뉴에 적힌 제일 비싼 와인을 시켰었고 특이하게도 딸기의 향이 마음에 들어 이 와인을 자주 시키게 되었다.
와인과 함께 오는 치즈 몇 조각으로 심심한 입을 달래며 인천의 야경을 본다.
우울한 기분이 쓸려내려간다.
그렇게 하루가 끝이 났다.
아침이 되면 간만에 부모님을 뵈러 갈 생각이다. 엉켜버린 가족관계도 이제는 풀때가 된거같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진 나도 나를 가꾸고 싶고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군대에 다녀오면 PMC같은 기업으로 진로를 두고 싶다.
이렇게 의미 없이 사는 날도 곧 끝났으면 좋겠다.
좋은 인연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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