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사정이 있다. 2억 투자자.   합니다.
  hit : 1424 , 2020-11-16 01:20 (월)
지난 주 내내 투자자들을 만났다.
죄송하지만 회사가 너무 힘들어져서 과거 조건으로 더이상 계약을 지속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이자만 월 2천만 원이 나가는데 지금 그렇게 현금이 나가면 회사를 살릴수가 없기때문이다.
일단 6개월 정도만 유예하고 다시 논의하자고 말씀드렸다. 어려운 이야기지만 해야만 하는 이야기다.

모두가 입을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회사가 주던 수익금이 끊기면 생계가 힘들다고 한다.
투자자 중에는 투자 당시에 건실한 직장을 갖고 있었으나 최근에 실직하신 분들도 계셨고, 가족이 큰 병에 걸린 분도 계셨다. 답답한 상황에 놓이신 분들께 더 큰 짐을 드리는 입장이었다.

투자자들의 사정을 듣다보면 내가 대역죄인이 되어 마음이 무척 힘들었다.
코로나 요인이 결정적이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 탓만 해서는 못난놈밖에 안된다, 
어쨌든 대표로서 위기에 대비하지 못한 것은 내 귀책이기 때문이다.
버는 족족 재투자할 게 아니라 차근차근 현금을 모아놨어야했다.
(그래서 IMF 때 살아남은 기업들이 그렇게 사내유보금을 쌓아두는가보다.)

그러나 투자자들 상황에 공감하고 신세한탄을 같이 하기엔 시간이 없다. 
나도 나약해져서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약속만 하고 돈 버는 일에 집중해야한다.
내가 해야할 일은 명확했다. 모든 지출을 줄이고 새로운 수익구조를 최대한 빠르게 만들어내는 것.
생각을 정리하기까지 두어달 마음고생을 했는데, 정리되고나니 추진하면 되는 상황이다.

사과, 설명, 설득, 비전제시,, 하루종일 전화 통화와 미팅을 지속하고 저녁엔 사무실 정리하며 지난주를 보냈다.
(지사의 직원이 나가서 텅 빈 지사 사무실을 정리하고 본사로 사무실을 합치는 작업도 진행중이다.)
다행이도 대부분 투자자는 우리 회사가 망하면 본인들 투자 원금이 날아갈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서 상황을 받아들였다.

*


그런데 어제 A투자자를 만난 후에 생각이 조금 많아졌다.

대부분 투자자가 만기일시 상환으로 계약이 되어있어서 수익률만 받다가 만기에 원금을 받는 구조다.
그러나 A투자자에게는 원리금균등상환으로 투자를 받았었다.
회사를 빠르게 키우고싶다는 욕심에 이곳저곳 투자를 해야해서 현금이 급했다.
지금 보면 너무나 고리의 사채를 쓴 것인데, 당시엔 사업 수익률이 좋았어서 부담 없는 조건이었다. 
(경쟁이 이렇게까지나 빨리 과열되어 수익률이 떨어질지 몰랐다. 자신감이 넘쳤고 경험이 부족했다.)

어찌되었건 투자자 모두에게 그동안 단 한 번의 연체도 없이 수익을 제공했다.
A투자자도 꼬박꼬박 수익금을 받았고, 받은 금액은 누적으로 보면 약 2억이다.
A투자자 입장에서는 2억 넣어서 5년 동안 3억 4천 받는 구조였는데 원금은 일단 회수한 것이다.
계약대로라면 앞으로도 1억 4천 정도를 더 받아야한다.

다른 투자자들에게 했던 설명을 똑같이 했다. 
상황이 많이 어려워졌기때문에 이자 지급을 일시정지하고 이자율도 좀 낮추는 양해를 구해달라고...

그러나 그는 양보할 마음이 없었다.
원금을 하나도 돌려받지 못하고 이자만 받던 분들은 원금이 날아갈 수 있다는 두려움에 오히려 협조를 해줬던 것 같고, 이 분은 어차피 원금은 받았고 앞으로 받는 건 모두 추가이익이니까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현금이 어렵다면 가게를 달라고 하시길래 영업권리와 보증금 합 1억 2천~5천 정도 하는 물건을 제시했다.
가게를 받으실지 수익 받던 것을 일시정지하고 다시 현금으로 받을지는 고민해보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문자가 왔다. 
"그거 하나로는 부족한 것 같으니 좀 더 달라"고...

*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다.
5년동안 3억4천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면서 2억을 넣었다.
그동안 2억 받았으니 이제 1억 4천을 더 받아야한다.
그런데 코로나로 회사가 어려워져서 현금이 부담스럽다고 하니까 현물로 받는게 낫다.
그리고 기왕 받을거 1억4천 어치를 가득 채워서 받거나, 가능하다면 더 받는게 낫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야박하게 느껴진다.
고위험 고수익 투자를 했는데, 위험이 왔을 때 본인은 오히려 더 이익을 내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힘든 상황을 알고 본인이 더 공감해서 힘들어하시는 투자자들께는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쓰게 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본인 이익만 내세우는 A투자자같은 분을 만나면 그냥 엎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만 너무 이기적이라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니, 다들 실직하고, 회사들 문닫는 상황에 연20% 이상의 수익률을 그대로 다 받고, 심지어 더 달라니.. 정말 법인을 부도라도 내길 바라는것인가?)

아직 갈 길이 멀다.
내공수양을 더 해야하나보다.

이래서 사업만큼 사람공부하기 좋은 게 없다는 말이 있나보다. 재미있다.
내 감정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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