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를 향한 물음   미정
 너무나 맑고 푸른 하늘.. 오래도록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것은 말 그대로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hit : 130 , 2002-03-28 00:00 (목)

오늘.. 나는 스스로와 대화를 시도해 볼까 한다.


몇 년 전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사회와 도덕 시간에 '자아 정체성'에 대해서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의 중요성을 간파하지 못했고, 그나마 기울였던 작은

시도 마저도 곧 불이 꺼지고 말았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나는 오랜 시간동안 나를 제어하고 움직이게 하며 발상을 가능케 하는

내 영혼의 존재에 대해 그리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살아있는 모든 자들이 지닌 개개의

영혼.. 많은 사람들이 영혼을 가꾸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나 하나쯤이야

그 수많은 영혼의 set 중의 하나가 되든 말든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지장을 준다든가 하는

그런 문제나 오류를 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많은 지식을 함양해 왔다고 자부해 온 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너무 나돌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수치스럽기도 하다. 부끄럽다. 창피하다. 쥐구멍을 찾아 숨기는 커녕,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하고 드러누워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내 몸을 내맡기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 때도 있다.

그리고..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

필명에서도 가늠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의 두뇌가 언제든 뛰어나게 일을 처리해 주는 탓에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바로 우물 안 개구리의 함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바보 같은 생각이 든다. 나에게 아직도 솔직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닌 큰 문제와 거기에서 분기되어 나오는 고민들.. 그것을 스스로에게 깨끗이 털어 놓고

해결하려는 자세를 아직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뜻인가..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서두를 꺼내고 싶다.

현재 나의 고민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시작이나 결말을 짓기가 힘들다.

추진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항상 어떤 일을 제 시간이 끝내지 못했을 때 자신을 자책하곤 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 마음이 이미 수많은 채찍질에 갈라지고 멍들어

있다고 느낀다. 이제는.. 그것을 치유함과 동시에 자기 개선을 시작하고 싶다.


두번째는.. 이것은 오늘 서점에서 읽은 프로이트의 이론과도 관계가 있는 것인데, 마음 깊은

속에서 몸부림치는 뜨거운 욕망과 충동, 그 본능의 실체를 파헤치고 싶다는 욕구이다.

요즘 나는 많은 꿈을 꾼다. 그리고 두렵다는 느낌을 지니기도 한다. 그와 함께 수치스럽다는

단어도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의 한 일색으로 생각된다. 수치심.. 난, 뭐라고 수식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자신을 수식하는 그 많은 단어 중에 저 바알갛고 검은 단어가 포함될 날은 내

사전에 절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솔직히 얘기하자면, 나는 내가 예전의 위치에서

많이 추락했다는 것을 느낀다. 날개가 부러진 천사라고나 할까.. 가끔 스치는 그리 달갑지

않은 삶의 순간에서, 나는 슬퍼하고, 또 다시 힘을 낸다. 아직은 새로운 문화, 그리고 내가 이제껏

배워 왔던 모든 것을 다른 '언어'라는 매개체로 모국어만큼 완벽하게 소화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위치에 서 있지만, 나의 잠재된 능력 -- 언제 세상에 그 형체를 완연히 드러낼지는 나도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 과 그 능력에 빛을 더해줄 구체화된 매개체가 만나는 날, 나는 많은 이들

앞에서 누구보다 행복해 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 자신감, 가끔 그 모습을 우울과 상실이라는

어두운 이름 아래 숨기곤 하는 나의 큰 자산을 나는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곤 하지만, 그것이 또한

성실한 삶을 향한 길의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한 얘기는 우선 접어두도록 하자. 세번째로, 나는 집이 그립다. 내가 현재 몸담고

하루를 끝내고 또 맞이하는 이 이층집은 나의 집이 아니다.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나의

친 혈육이 아니라는 사실과, 나처럼 유학생의 신분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보지도 못한 저 멀리 있는 어떠한 곳에 가기를 내심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그렇다. 말로는 아래층의 그들을 부모님이라

지칭할 때도 있지만, 그리고 어떨 때는 그들이 나의 친부모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 한국을

향한 갈망의 동기가 되는 것은 바로 나의 진짜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가고 싶다는 것이다. 집이

그립다는 말은 엄마와 전화할 때마다 듣는, 저 멀리 오륙도와 동백섬이 보이고 새로 수선과

단장을 한 새로운 집이 그립다는 말이고, 그곳에서 나와 다른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가족들이

그립다는 말이며, 더 나아가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나의 조국 한국의 변화된 모습을 만나보고

싶다는 말이다. 새 집.. 해운대로 이사를 온 이후로, 그 곳에서 예전 동네에서부터 간직해 왔던

아름다운 기억들과 이어지는 행복한 나날의 영위가 힘들었기 때문인지, 새로운 우리의

보금자리가 예전 집보다 훨씬 좋은 점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포근했던 내 방의 회색 책상과 그 위에 놓인 책과 맛난 간식 위에 내렸던 저녁 어둠의

모습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집을 떠나, (내 자신이 먼저 이곳으로 왔고 또 모든 가족들이

새 집으로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내가 쓰던 물건들이 새로 자리한 그 곳..

말로만 들어도 너무나 황홀한, 그 곳에 한 번 가 보고 싶다. 혹시나 거기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고 싶은 마음이 들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이만 쓰기로 하자. 나는 내 일기가 자발적인 want가 아닌, '꼭 해야 한다'는 억지에

의해 퇴색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오랫동안 벼루어 오다가 결국 머뭇머뭇 손을 내밀어 시작해

본 ('시도'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꼭 단 한번으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생각

이 든다. 나는 이제 그러한 것에 지쳤다..) 사이버 일기마저 그렇게 단념하고 싶지 않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 어차피 많아 봤자 12시 까지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 게임을 하다가,

(굶주림에 지친 누군가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환상의 과실같이 다가왔다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후회감으로 나를 짓이기는 걸로 끝을 내고 마는 이 게임) 숙제를 해야 한다. 더 이상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다. 그건.. 자식의 도리를 완전히 깨트려 버리는 짓일 것이다.



-  자아를 향한 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