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카테고리가뭐야
  hit : 1729 , 2001-08-23 00:00 (목)
# 물 #

자연에서 난 본능은 집이 그리운 것처럼 자연이 그리워진다.
자연이 그리울때면 자연스럽게 물이 그립다.
물은 이상하게 사람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어서 몇날 몇일 물이 그리워지는 마음이 쌓이면 가까운 한강에라도 가서 나앉는다.

난 서울에 강이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그게 다 오염된 똥물인지 또는 그 밑바닥에 쓰레기와 시체 수백구가 썩어간다 하더라도 일단 한강도 강이다.

가까운데 마음만 먹으면 금방 찾을 수 있는 도심속의 물줄기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한강에 앉으면 혼자서 아무것도 안하는데 시간 되게 잘간다.
바람따라 달라지는 물의 모양을 한참 보다보면 최면에 걸린 것처럼 정신이 멍해지면서 아찔해 지는 순간이 있다.
그 느낌도 나쁘지 않다.
왜 충동적으로 사람들이 물에 빠지는지 알 것 같다.
한강 북쪽에서 남편을 바라보면 기분에 되게 가까워 보여서 금방 헤엄치면 건널 수 있을거 같다.
왜 충동적으로 한강건너기 시합하다 빠져죽는지 알 것 같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시시각각 변하는 물결이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한강변에 사는 사람들이 왜 우울증에 잘 걸리는지 알겠다.

밤에 운전하면서 강가를 지나가면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다.
일부러 강가쪽으로 붙어서 느리게 운전한다.
다리마다 불빛이 비추고 달리는 자동차도 불빛을 내고 빛은 한강을 외국의 낯선 도시풍경처럼 만들어 준다.
이뻐서 몸서리가 쳐진다.

게다가 밤에 보는 물의 매력은 참 신비롭다.
그 많은 물들이 마치 뭐든 걸리면 빨아 먹는 커다란 젤리처럼 느껴진다.
일렁이는 검은 젤리.
덩치크고 배고픈 검은 젤리.
싸늘하고 섬짓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신비감이 있다.
몹시 외롭고 서늘한 싸함을 느끼게 하는데 그런 안정된 공포감도 즐겁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난 바다에 갈 일이 별루 없다.
하지만 물은 계곡의 시내나 너무 큰 바다나 다 너무나 매력적이다.

하다 못해 아침에 세수할려고 받아둔 물에서도 어쩌다 물장난을 하고 있다.
세숫물에 손을 담그고 넣다 뺐다 하는 감촉을 즐기거나 물속에서 손의 색과 모양이 달라지는 모습을 손을 조금씩 움직여가며 관찰하다 보면 괜히 혼자 기분이 좋다.

카다로그나 달력에 나온 남태평양 바다사진을 보면 색이 너무 이쁜 옥색이다.
보고만 있어도 가보고 싶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투명하고 연한 초록색 물
난 그 많은 물이 다 짜다는게 신기하다.
바다의 유일한 거부감은 그 맑고 투명한 물이 실은 혀 끝에 닿기도 전에 짠 소금물이란걸 생각하면 좀 물이라는 순수성에 침해당한 느낌이다.
난 천국가면 안짠 바닷물에서 놀구 싶다.

물은 소리도 이쁘다.
물은 씨끄럽게 굴어도 같은 레벨의 씨끄러운 다른 소리에 비해 듣기 좋은 소릴를 낸다.
찰랑찰랑,쏴아쏴아,졸졸졸,콸콸...또 뭐있지?

물론 지나치게 씨끄러운 파도나 폭포같은 것 도 있겠지만 난 아직 그런건 못들어 봐서 잘 모르겠다.
화분에 물줄때도 그 물소리가 듣기 좋아서 그때도 괜히 장난 쳐보는데 한꺼번에 왈칵 붓거나 쫄쫄쫄 붓거나 낮은데서 붓거나 높은데서 붓거나 계속 다르게 부어 보면서 소리의 변화를 즐긴다.
아주 이쁜 소리를 흐믓하게 내고 있다.

물은 촉감도 이쁘다.
온몸을 담그고 있으면 기분좋은 찰랑거림이 몸을 애무하면서 느껴지는 아늑한 포근함이 좋다.
온도도 가지가지로 조절할 수 있고 부력을 가지고 있어서 물위에 가벼운걸 띄워 보면 물결따라 움직여서 같이 이뻐진다.

몸에 닿는 느낌 역시 신비롭다.
만지는것도 아닌데 만지는 것 같고 만지지 않는데 만져지고 만지면 쥐어지지 않고 그러면서 온몸을 빈틈없이 감싸주는 편안함...사랑스럽다.

하나님은 어떻게 물이란걸 다 만드셨을까.
물은 촉촉하고 부드럽고 자유롭고 관능적이다.
물은 목마름을 돕고 메마름을 녹이고 거친 것을 부드럽게 한다.
물은 씻어주고 감싸주고 치유한다.
물은 힘도 세고 강하면서 섬세하게 위로해준다.
참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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