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서 살기   카테고리가뭐야
  hit : 2404 , 2004-01-02 23:26 (금)


사는건 즐거운 만큼 우울하다.
그래도 다행이다.
즐거운 만큼만 우울해서...
초등학생때부터 사는게 우울했다.

사회라는 단체에 입문하면서 부터 줄곧 섞이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면서 멀리가지도 다가가지도 못한 삶의 연속이었다.
한번도 단체와 융화되어 화목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릴땐 내가 외계인이라고 믿었다.
지금은 신분을 숨기고 살지만 나중엔 다른 세계에서 좀 더 다른 신분으로 드러나게 될꺼야...

약간 신나기도 했지만 사실은 많이 두려워 했다.
왜냐면 어느날 낯선 인종들이 몰려와 나를 외계로 납치해 갈꺼 같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융화되지 못했지만 외계로 가면서 살던 곳과 모든 이별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은 외로움을 이기는 것이었다.
외로웠지만 삶의 패턴을 송두리째 바꾸는건 대단한 용기였다.
이 곳에선 가족도 있고 살던 동네도 있고 갖고 놀던 인형도 있지만 너무나 멀리 떨어진 그 어느 곳엔 전혀 생각지 못한게 날 더 외롭게 할거 같았다.

떨어져 나간다는건 큰 공포심이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낯선 사람과 검은 승용차같은 걸 무척 경계했다.
차에서 지구인으로 변장한 사람들이 나를 납치해 갈꺼 같았다.
그렇지만 이제 어느정도 지구인으로 토착해서 지구인인걸 별로 의심하지 않는거 같다.

근데도 여전히 난 아무하고도 잘 화목하지 못한다.
그럼 또 내가 외계인인가 하는 의심이 망각의 바다에서 올라온다.
왜 이렇게 불편한걸까.

누구는 나보고 자기주장이 세고 고집스럽고 양보하는 법이 없어서 살아가는데 힘들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고집이 센가.
음...그렇면이 없는건 아니지만...
어느 쪽이냐면... 눈치 못채게 고집이 센 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 앞에선 무척 배려하고 생각해주고 이타적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도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옳다라는 주장은 너무나 강렬하다.
내가 한발 물러서고 양보해도 그건 나의 잘못을 인정해서 물러 서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양보해주지 뭐..이런 심상이 뒤에 깔려 있다.
그건 고집을 버린게 아니라 잠깐 편하고자 고집부리지 않는 척 하는거다.
속으로는 내 생각이 옳다는 생각 절대 버리지 않고 있다.

세상엔 나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 얼마든지 많다는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 세계에서 그렇다.
내 세계에선 아직 나만큼 똑똑하고 나만큼 융통성 있는 사람을 못봤다.
왜냐면 나의 세계에 관한한 난 누구보다도 경험이 많은 경력자인걸.
누구도 '나'로 하루도 살아본 적이 없잖아.
난 매일을 나로 살아가는걸.
어떻게 내 세계에서 제일 똑똑하지 않을 수 있겠어.
바로 내가 난데..

그래서 난 타인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배타적이다.
그렇지만 타인 역시 마찬가지다.
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배타적이다.
특이한 애이기도 하고 재밌는 애이기도 해서 호기심이나 희한한 매력을 느낄지는 몰라도 그 사람 마저도 단체의 한 일원으로서 나를 만나게 되면 나를 이상히 여기고 멀리 할거다.
난 그만큼 단체와 융합되지 못한다.

어쩜 진짜 태생이 근본적으로 틀린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별다른 유년시절을 보낸것도 색다른 문화를 겪은것도 아닌데 이 세상이 안맞는 옷처럼 불편하다.

그러나 겉으론 아주 재밌게 잘 살고 있다.
난 재미를 느끼는데 남들보다 재능이 있는 편이다.
내가 재밌어 하는거에 빠져서 그 안에서 잠시 마약처럼 즐거움에 최면시킬 수 있다.
게다가 그 작업을 조금 지속적으로 깊이 할 수 있다.
현실이 어떻든 난 순간을 즐길 수 있다.
내 방식대로.
하지만 그것이 내 근본의 외로움을 해소시킨건 아니다.
그저 잠깐의 눈가림과 유익을 위한 의도적인 순간 기억상실능력이다.

지구인이 되고 싶은데 잘 안된다.
왜냐면 지구인이 실제로 되고 싶은게 아니라 지구인인척 완벽하게 연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되나..

난 시시때때로 탈락의 공포를 맛보는걸.
탈락이라니..
지구인 결격 사유.
그런 것들을 매번 느껴야 하는건 조금 많이 힘들다.
나를 지구인으로 소속시켜줄 든든한 한 사람이 있었음 좋겠다.

난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많은 사람들을 미워한다.
내 좁은 속으로 그 두 감정을 다 느끼려면 많이 부대끼고 힘들다.
가뜩이나 지구의 기후에도 맞추기 힘든데 지구의 감정까지 두 배로 느끼려니 정말 힘들다.

그러니 내 맘을 쉬게 해줄 한 사람만 있다면 그래도 지구인으로 살아보겠다.
혈통이 틀려도 울 나라에 시집와서 울 나라 국적 취득하는 외국인 있잖아.
나두 피가 근본적으로 틀리더라도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소속되서 지구인 자격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지구인들이라 역시나 내게 맞지 않다.
내게 벅찬 사랑과 힘든 미움을 느끼게 해서 싫다.

조금 차갑고 냉정하게 사랑하고 미워했음 좋겠다.
지구에서 얻은 각종 풍토병이 날 많이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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