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밤 /나희덕   울림
  hit : 2889 , 2009-03-26 17:25 (목)
푸른밤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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