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비   공개
  hit : 3374 , 2009-10-13 14:58 (화)

좋든 싫든 주기적 혹은 비주기적으로 반복해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예고를 하건 안하건, 어쨋든 잊지도 않고 날 찾아주는 그들을 맞기 위해선
나도 궁색하나마 채비라는 걸 좀 해야만 한다.

두통 혹은 편두통

타이레놀은 나의 오랜 벗이며, 여행가방이나 핸드백, 백팩의 
속주머지 어디쯤에 이걸 챙겨넣는 것으로 나의 가방 꾸리기는 시작된다.
오기전에 다량으로 구입해야 했을때도, 약국에서는 묻지도 않고 ER처방(650mg)을
내놓길래 500mg 일반 투약량으로 달라고 했다.
이런 무분별한 과잉처방 관행이라니.
나같은 경우 복용기간도 오래됐을 뿐더러  앞으로도 아마 몇십년은 더 상용해야할지
모르는데, 이렇게 생각없이 일회 투약량을 늘였다가는 나중엔 몇알씩을 먹어도
소용이 없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월경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격대비 품질 만족스러운 면생리대를 찾아내 몇년동안 쓰기에 
충분할 만큼 넉넉히 구입해서 사용해온지가 1년이 넘었다. 
손빨래하느라  손이 좀 가기는 하지만 환경을 생각하면 마음이
흡족스러워 힘들게 여겨지지가 않는다.
사실 엄마가 생각나곤 한다.
일회용이 널리 쓰이고 난 훨씬 이후에도 늘 면만 고집하시던.

무엇보다 착용감이 일회용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좋아서 예전으로 되돌아가는 건
이제 상상도 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모양이 같은 예쁜 플라스틱통 세개를 사다가 사이즈별로 담아놓았다.

사춘기때, 가뜩이나 부끄러움을 많이 탔을때
지금처럼 큰 마트들은 없고 동네에 드문 드문 고만고만한 가게들만 있던 시절,
급하게 생리대 사러갔다가 계산대에 아주머니나 그 집 딸이 없고 아저씨나 총각 같은 이가
가게를 지키고 있을 때의 그 낭패감이라니.
동네 가게들을 다 찾아 헤매다녔던 그런 식겁했던 기억도 있다.
번번이 생리대사러 다녀야하는 번거로움과는 이젠 안녕이다.

공용세탁실 

매번 세탁기 사용시 동전(25센트짜리 쿼터)이 많이 필요하다. 6~10개쯤.
워셔와 드라이어가 따로 늘어서 있고, 물론 둘다 따로 돈을 달라고 입을 벌린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주는 동전교환기쯤은 세탁실 주변에 기본으로 설치를
해놓았으련만. 

차타고 가야하는 거리에나 은행이 있기 때문에 번거로워서 한꺼번에 20~30달러쯤 
잔돈을 바꿔 유리병에 담아놓고, 세탁실갈때 마다  세제와 동전, 세탁실 열쇠를 함께 챙겨간다.
근데, 묘한 건 처음엔 이런 절차가 불편하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유리병에서 동전을 꺼낼때 마다 생활에 규모가 생기는 것 같달까
그런 흐믓한 기분이 들곤 한다는 거다.

옛날에 엄마들이 부엌 시렁위나 선반위에 조그만 항아리를 올려두고 평상시에 아껴가며
한닢 두닢 비상금을 모아두었다가, 아이들이 뭔가 꼭 필요로 할때 모아둔 돈을 소중히 꺼내쓰던 
그런 시절이 떠오른다고나 할까 뭐 그런 기분.

우울감

반기기는 커녕 먼 발치에서 기미만 보여도 도리질부터 한다는 걸 모르지 않을텐데
그런 내 심사 쯤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어느때고 기별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
넉놓고 있다가 못보일 꼴 다 보이고 그러고도 언제쯤 떠나줄라나 푸념이나 하며
대책없이 당하고만 있을게 아니라 이제는 나도 대비라는 걸 좀 해두기로 했다.

내 집에 불쑥 들어와 아랫목에 자리 깔고 누워 내 심기를 있는대로 건드리건 말건,
그러다 어떤 때는 숫제 뒤집어 놓건 말건,
난 이제 더이상 마주하여 상대해주지 않기로 한다.

난 휙 뒤돌아 앉아 이렇게 키보드만 냅다 두드리며 내 말만 늘어놓는다든지,
시간날때 보기로 마음에 작정해놓은 영화들을 볼 것이다.
아니면 리스트를 만들어 놓은 책들을 빌려다 보겠다.
지금은 날마다  2 마일정도 달리고 2 마일정도는 걷고 있는데,
할 수 있으면 3마일 정도도 달려보겠다.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내 약한 심장이 쿵쿵 북소리를 내며 울때까지.

그리하여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처럼 너의 이름을 지어줄테다.
그이는 네가 찾아오면 그림을 그리곤 했다지.
그렇게 너를 살살 잘 달래서 보냈다지.
그림도 못그리는 나는 이렇게 귀를 막고 자판이라도 연신 두드릴밖에. 지금으로서는.

 

judyohy  09.10.13 이글의 답글달기

저도 영화한편 보고싶네요. 상황이 안돼지만요. 훙 ㅠㅠ

티아레  09.10.14 이글의 답글달기

아.. 한 달만 꾹 참으세요^^
마무리 잘 하시고 컨디션 잘 유지하셔서 바라는 꿈 꼭 이루시길~^^

억지웃음  09.10.14 이글의 답글달기

면생리대 사랑합니다 진짜루...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흠흠,, 그건 개인적으로
쪽지할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내일 세탁합니다~
500원짜리 동전 4개 드럼세탁기에 세탁2개 건조 2개
일주일에 한번씩 , , , , , 이것도 돈이네요 ㅠㅠ

티아레  09.10.14 이글의 답글달기

웃음님 쪽지에 답글보냈는데
깨진 한글로 뭐라는지 모를 경고 같은게 뜬 것 같아요.
제대로 갔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윈도우 비스타 쓰고 있는데
가끔 한글 지원이 안될 때가 있어서요.
해결방법도 모르고 해서 그냥지냥 쓰고있거든요.
시험 끝나고 월미도 잘 다녀오세요~^^

바른생활  09.10.14 이글의 답글달기

글을 참 맛있게 잘 쓰네요... ^^ 맛있게 잘 먹고 가요.... 마침 배는 고픈데, 먹을 것이 없었는데, 잘 먹고 가요... ^^ 이제 조금 눈을 감고, 쉬어야 겠네요... 조금뒤 있을 일들을 잘 하기위한 채비라고 할까요....

티아레  09.10.14 이글의 답글달기

끼니 거르지 마세요^^
저는 저녁은 늦어도 꼭 찾아먹지 않으면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드라구요.

"지금의 시간이 이후에 올 시간들의 보이지 않은 밑그림이 될 수도 있다"는 말...
마음에 사무치도록 공감하고 있답니다..

프러시안블루  09.10.15 이글의 답글달기

누군가는 "우울감"이란 손님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 주셨나요?

티아레  09.10.15 이글의 답글달기

윈스턴 처칠... my black dog.

"Never, never, never give up."
이 명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그도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네요.

   아보카도를 자르며 [4] 09/11/09
   "Do what you love. Love what you do." [3] 09/10/27
   메켄지의 고백을 듣고. [3] 09/10/17
-  채비
   산책길 [6] 09/09/14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양창순 09/09/03
   예쁜 향주머니 [4] 09/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