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생각.   un.
  hit : 2118 , 2011-04-20 12:18 (수)

한동안 드라마를 보지 않다가 요즘 짝패가 눈에 들어왔다.
주말에 재방송하는 채널에 우연히 눈이 멎어 보게 되었는데, 꽤나 재미있었다.
물론 시선이 멎은 계기는 천정명이었지만 내용이 흥미 있었기 때문에 보게 되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나눔을 행하는 아래적.
그리고 그 아래적을 잡아들이려는 포도청.
지금 우리는 세상이 옛날보다 많이 각박해졌다, 현대사회만큼 불평등이 심한 시대는 없었다
라며 불평불만을 하기에 자칫하면 옛날에는 더 살기가 좋았다고 생각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어느 사회든 부조리는 존재하고 그것을 개혁하려는 사람이 존재한다.
세상은 항상 그렇게 굴러가는 것이다.

어제는 시험공부를 하다가 TV에서 미인도가 하길래 또 봤다.
미인도에서의 신윤복은 세상과 생각을 달리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추하고 천하다고 생각하는 천민의 세계, 즉, 사랑하고 몸을 섞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신윤복의 생각.
영화를 보고 나서 '시대와 생각을 달리한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윤복이라든지, 박지원이라든지, 황진이라든지.
세상을 앞서나갔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시간이 나면 알아보고 싶다.

민속촌에서 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옛날이 좋다. 복잡한 역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옛날 분위기가 좋다.
전통문화랄까. 민속촌에서 그런 걸 체험하고, 또 그런 문화를 보존하는 일을 해보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을 좀 많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사심도 약간 섞여
있지만. 아무튼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민속촌으로 오세요'하는 광고 카피를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지하철에서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모두 적어서 '나의 지하철 life'라는 책을 써서 내도 될만큼.
2시간이나 타고 있어야 하는 데다가 앉을 자리도 없어서 뭔가를 할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에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일단 스마트폰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가지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뉴스를 보든 DMB를 보든
게임을 하든 카톡을 하든, 그리고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누르고만 있든.
뭘 하기나 하면 좀 다행인데, 손만 대면 화면이 휙휙 변하니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들여다보기만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걸 보면 조금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인간이 이렇게 시각과 감각에 종속적인
동물이구나, 하고. 그리고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누군가와 소통을 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옆사람과는 소통을 하지 않는다.
라는 말씀. 맞는 말이다.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어딘가에 있는 다른 사람과 열심히 소통을 하면서
정작 옆사람 얼굴 한 번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다.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세상과 차단된 채 열심히
단말기 속 네트워크 세계로 빠져드는 것이다.
나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느낀 후부터는 되도록 용건 없이는 핸드폰을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도 인간인지라 만지고 키면 갖고 놀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열심히
만지작거리고 나면 남는 것은 없다. 할 게 없으면 차라리 생각을 하는 게 낫다. 지하철에서 뭔가를
읽는 것도 눈에 나빠서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열심히 사람들을 관찰한다.

내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참 많이 느끼는 것은 세대 차이다.
조금 나이드신 어르신과 젊은 세대의 차이. 가장 큰 차이는 질서의식이다.
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드신 분들이 질서의식이 약하다.
이것을 '나쁘다'거나 '무개념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세대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중교통이 발달하기 전 시대를 사신 분들, 그러니까 줄 서는 것이 일상이 아니었던 시대를 사신 분들과
태어날 때부터 줄 서는 것이 일상인 세대의 의식 차이.
가끔은 물론 짜증도 난다. 열심히 뛰어와서 줄을 서 있었더니,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앞으로
휙 끼어들어버리신다. 그러면 처음에는 울컥 짜증이 치밀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는다. 대들어봤자
사람들한테 개념 없는 여자애라는 소리 듣기 십상이고, 또 어르신이 양심이 없어서 그런다기보다는
앞서 말했듯이 세대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문화양식이 생겨났
다면, 나 또한 잘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건 요즘 새로 생겨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언제부턴가 지하철 선반위에 놓여진 신문을 수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분명히 거기에 올려놓지 말라고, 휴지통에 버리라고 안내문이 붙어있음
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거기에 신문을 얹어놓는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와서 그 신문들을
다 가져간다. 요즘 노동에 대해서 배운 터라, 그것을 본 직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은 왜 변변한
유니폼도 없을까. 단기 알바겠지. 그런데, 방송으로는 언제나 고객을 편안하게 모시는 코○일이니 서울메○로니가 되겠다고 하면서, 객실 내에 자신들이 고용한 사람들이 허름하고 남루한 차림새로 돌아다니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신문 치우는 일따위는 단기 알바를 고용해요. 저 사람들은 쓰다 말 사람들이니 유니폼은 필요 없어요. 라는 뜻일까. 왜 사람들은 신문 치우는 일을 하찮게 생각하는 것일까. 하지만 반대로 내 입장이라도, 선뜻 저런 일을 하려고 할까. 훨씬 더 편하고 훨씬 더 대우가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아무런 편견 없이 저런 일을 한다고 나설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 또한 꺼려진다. 왜 인간은 하찮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별하는 사고를 가지게 되었을까. 도대체 그 기준이 뭘까. 왜 청소는 아랫사람을 시키는 걸까. 청소와 사무직이 다른 점이 뭘까. 왜 '힘들어서 안한다'가 아니라 '하찮으니 안한다'라는 사고방식이 존재하는 걸까.

요즘은 사회과학도로서 여러가지 현상에 대한 생각이 많다. 물론 대부분이 비판적인 생각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럴 수록 피곤하다. 나는 그렇게
신경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중고등학교 때 세상이 너무 더럽다고 생각해서, 부조리들로 인한 불만과
괴로움이 나를 너무 괴롭혀서 아예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버렸다. 조금이라도 괴로운 느낌이 드는 생각
은 skip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 내 능력이 되다시피 했다. 잊어버리면 된다. 신경을 안 쓰면 된다.
그러면 나는 괴롭지 않다. 하지만 그럴 수록 나는 이기적이 되어간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아마 무슨 급박한 사고가 일어나도 나는 내 생명부터 챙길 것이다. 말로는 남을 돕겠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안다. 나는 침입자가 들어오면 가장 안전한 곳으로 내 몸부터 피신시킬 것이다. 도망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도망가서 신고해야지.'라고 나 자신을 합리화하며 필사적으로 도망갈 것이다.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희생을 하게 된다고 해도 내가 과연 내 목숨을 포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무튼 나는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변명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를 위험으로부터 지켜내야하는 상황에 자주 직면했다. 늘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몸을 숨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계'가 내면화되어 있는 것이다. 생존에 가장 적합한 사고 회로를 가지게 된 것 같다. 그것이 인간 사회에서는 '이기'로 통하고 있는 것이고.

요즘 점점 이 사회의 룰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힘이 든다. 내가 언제 이 울타리에서 퉁겨져 나올지 알 수 없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번 그 울타리에서 빠져나오게 되면 어떡하나. 그 경험으로부터 받을 엄청난 상처를 어떻게 감당하지? 이러다가 대인기피증이 생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잘 추슬러야겠다.

게다가 나는 사랑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사랑을 한다면 내 목숨을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내 가족이나 친구 등.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나 뿐이다. 내가 동정하고 연민하는 것은 나뿐이며, 내 눈물은 나를 위해 흐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를 가장 먼저 지켜야 하는 것이다. 나랑 평생을 같이 살 동반자는 '나'다. 내가 이기적인 것인가.
이기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기준이다. 타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같이 생각해주는가 안 해주는가의 차이다. 아무튼 요즘은 머리가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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