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듯   un.
  hit : 2833 , 2011-10-04 15:50 (화)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나를 좀 더 불행하고 외로운 여자로 부각시키기 위한 배경일 뿐이야.
나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끊임없이 좋아해왔어.
좋은 남자가 있으면 좋아했어.

작년 겨울에도 좋아했고
올해 여름에도 좋아했어.
다만 좋아하고 지켜보기만 할 뿐 다가가지 않아서
더이상 좋아지지가 않아서
잊어버렸을 뿐이지.

그런 식으로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사람을 싫증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는 다가가지 않는 것.
물러서지도 다가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것.
그대로인 것만큼 금방 질리는 것도 없다.

그런 식으로 나는 계속해서 밀어내왔어.
좋아도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는데.

보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고
사귀어보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고.
이제 더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펑펑 울어본 사람도 있었어.

그런데도 좋아한 게 아니라고
박박 우겨대며
나는 사랑하는 기능을 잃었다며
불행하다며
징징댔는데.

나는 언제나 사람을 좋아하고 그리워하고 있었어.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보고 싶어 해.
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고
또 자신이 없어서
여전히 그냥 거리를 두려 하는데
이번만큼은 조금이라도 좋으니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말이라도 한 번.
이름이라도 알았으면 좋겠고
얼굴이라도 한 번만 봤으면 좋겠고.

쥐뿔 아는 것도 없는데 좋아하긴 뭘 좋아하느냐며
그냥 겉모습 보고 그러는 거 아니냐며
나를 질책해도
생각나는 건 어쩔 수가 없어.
겉모습을 좋아하는 거라도 좋아.
겉모습이 좋아지지 않는 사람도 부지기수야.

나를 좋아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한 번만
딱 한 번만
안아주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돌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한 번만 안겨봤으면.

-

정말 아는 거 하나 없는데.
그냥 같은 조 되서 말 몇 번 한 것 밖엔 없는데.
왜 자꾸 생각나고 왜 자꾸 보고 싶은 건지.
그냥 좀 착하고
그냥 좀 키 크고
그냥 좀 수업 참여 잘 하고
그냥 좀 멋있고
그냥 좀 사투리 쓰는 것 뿐.

근데 그게 전부 다 내가 좋아하는 것.

-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할 수가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름도 나이도 아무것도 몰라.
그런데도 이게 좋아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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