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deux.
  hit : 3150 , 2012-09-20 10:23 (목)




이 본능에 내재된 불안을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

불안한 대상은 없다.
그저 언제나 불안했기에
아직도 여전히
관성처럼 내 몸과 마음이
불안을 느끼는 것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까.


.
.



한 번은 상담사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기분이 나쁘고 불안하다고.
아버지가 들어오는 것 같아서.
밤에 누가 화장실에 가는 소리가 들리면
불안하다고.
나는 언제나 화장실 옆에 있는 방을 써왔는데
아버지가 새벽에 화장실에 갔다가
내 방에 들어오곤 했기 때문이라고.
누가 무언가를 집어던지거나
큰 소리를 내면 무섭다고.

이런 것이
불편하다고.
그래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상담사는 말했다.
우선 차분히 시간을 갖자고.
그런 곳에서 빠져나온 지 
이제 갓 1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라고.
반면 그렇게 산 세월은 15년이라고.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고.
지금도 아주아주 빠른 속도로 좋아지고 있는 중이라고.



.
.


그렇게 생각하니
그런 것도 같았다.
15년, 
아니 21년과 1년.
비교가 되지 않는 시간이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해서
얼른 빠져나가고만 싶어한다.



조급,
하달까.




사실 연애를 하면서도
나는 이 정도면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십 수년 간 성폭행을 당하고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남자와의 스킨십을 
받아들이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단 한번의 성폭행만으로 
남자와 닿는 것조차 싫어하는 여성들이 많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고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용기 내어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들어갔고
이 사람들은 '아버지가 아니다'
라고 되뇌이며
끊임없이 인지 왜곡을 바로잡은 끝에
나는 이제 남자와 꽤나 잘 지내게 되었다.
1년만에.



.
.


나는 남자와의 성관계가 무지무지 싫을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것은
좋기도 했다.
다만 안 좋게 첫 단추가 끼워지기는 했지만.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수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적어도 나는 그 상황에서 아버지가 생각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
.


그리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
거절에 대한 두려움.
이성 부모와의 부정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의 전이.

이건 뭐 내가 지금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의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내가 제에일 싫은 건
오빠가 잘 해주면 나도 잘 해주고
오빠가 잘 해주지 않으면 나도 잘 안 해주는 거.

거절에 대한 방어기제 때문에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느껴질 때에만
잘해주는 이런 게
나는 싫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하루아침에 나아질 수는 없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인데
그렇게 짧은 시간에 이 정도 발전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많은 것을 바라지 말자.

나 같은 일을 당하지 않고서도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나 정도면 잘 하고 있다.
응응
잘 하고 있다.


그냥
생긴대로 살련다.
이게 나라고.


이게 나이니
네가 이런 내가 싫다면
참 미안하지만
나도 네가 있는 그대로 좋으니
너도 나를 그대 좋아해주련.







'내 마음을 미루어 네 마음이 되기'


.
.


나는 네가 좋다.
가끔은 네가 싫지만 그래도 너는 좋다.
너도 그럴 것이다.


.
.


하지만 나는 네가 나를 싫어하는 게 두렵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너는 내가 싫은데
나는 네가 좋은 게 두렵다.
그 상황이 
그게 두렵다.



불안하다.
불안해.





.
.




불안불안불안해.
불안해.
불안 불안 불안 
응응

하지만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렇게 되어버린 거지
이런 건 말이야
그냥 안고 살 수밖에 없는 거야




누가 그랬어
마음에도 불치의 병이 있다고
나아질 수는 있지만
어린 시절을 삭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영원히 치료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내 경우에는 불안일까
자존감 부족일까
뭘까







아 얼른 상담소 가고 싶은데
얼른 얼른 얼른
얼른 이 굴레 좀 떨쳐버리고 싶은데



가서 치료 받고
울면서 상담사한테 털어놓고 나면
뭐가 좀 나아질까


응응 나아질 수도 있어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야
그 다음은 내가 감당할 일이지




.
.


응응
아 분열될 것 같아


torturer  12.09.21 이글의 답글달기

죄수의 딜레마 혹은 용의자의 딜레마가 떠오르네요.
자신의 주 자아와 기타 자아의 관계에서, 또는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월전략균형이나 내쉬균형이 있는 지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균형들을 찾아서 자신에게 적용해 가다보면 부정적 내,외부 자극에 대해서도 점점 초연해지지 않을까요.

李하나  12.09.21 이글의 답글달기

조언 감사하지만 말이 어려워서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ㅜㅜ음 죄수의 딜레마와 용의자의 딜레마까지는 알겠는데 그게 저와 어떤 접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워전략균형이랑 내쉬균형은 더더욱 모르겠네요ㅜㅜ

torturer  12.09.24 이글의 답글달기

내쉬균형,우월전략균형 전에 내쉬전략, 우월전략을 우선 말씀드리자면요.
내쉬전략은 상대의 전략을 <<주어진 것(이미 정해져 있다는 의미)>>으로 보고 거기에 대응해 자신의 보수(이익, 효용, 기쁨이나 행복의 크기 등)를 극대화 시키는 전략을 말하구요.
우월전략은 <<상대의 전략과 관계없이(상대가 어떠한 전략을 선택하느냐와 무관하게)>> 자신의 보수를 더욱 증대시키는 전략을 말해요.
내쉬균형과 우월전략균형은 자신이든 상대든, 누구도 이러한 전략을 변경시킬 유인이 없는 상태를 뜻해요.
이러한 균형은 자신에게 있어서(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에요) 보수를 더 크게 가져다 주기 때문에 더 낮은 보수를 주는 다른 전략을 선택할 이유가 없어요.
우월전략균형은 모두 내쉬균형이 되구요.
당연히 내쉬균형보다 달성되기 어려운 균형이에요.
그리고 죄수의 딜레마는 우월전략균형이자 내쉬균형이에요.

torturer  12.09.24 이글의 답글달기

접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요.
상대방 또는 기타의 자아가 <<어떤 감정이나 행동을 보여주는 지와 관계없이>>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이 자신의 행복지수를 극대화시키는 일정한 전략으로 유지되고, 당연히 주자아와 기타자아 그리고 자신과 상대방이 그 전략을 바꿀 이유가 사라질 때 우월전략균형이 달성된 경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쉬균형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이 될 것 같아요.
우월전략은 정의상 게임참가자당 반드시 하나씩만 존재(당연히 없는 경우도 있어요)해요.
그에 따라 우월전략균형도 하나 밖에 없어요.
반면 내쉬균형은 여러 개가 있을 수 있어요

torturer  12.09.24 이글의 답글달기

음, 처음 대책없이 댓글을 달 때 들었던 생각은요.
어떤 내, 외부의 부정적 자극에도 초연하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행동이 도달할 길을 미리 정해놓고(또는 정해져 있던지요), 물론 그 길이 자신의 행복에도 가장 크게 도움이 되는 길임을 일말의 의심없이 인정하고 있는 상태가 되면 그게 자기감정의 균형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하는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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