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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엄마에게   trois.
조회: 2428 , 2013-08-20 00:07


엄마, 나 하나야.
엄마한테 할 말이 있어.
사실 나 엄마가 많이 미워.
엄마는 내가 다 잊고 편하게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를 만나고
아빠한테 화도 안 내는 모습을 보면
나는 엄마가 아무래도 그 일을 전부 다 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를 정말 딸이라고 생각한다면
나 같으면 아빠 얼굴을 다시는 못 볼 것 같은데.
참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낸단 말이지.
그런 걸 보면 
나는 엄마가 나를 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아니면 
딸은 딸인데
그다지 아끼지 않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를 13년 동안이나 성폭행한 아빠의 얼굴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나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건지도 몰라.

나는 엄마를 좋아하려고 많이 노력했어.
엄마도 엄마 나름대로 힘들었을 거고,
대처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고 이해하고 싶었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가 원망스러웠어.
중학교 1학년 때,
내가 처음으로 엄마에게 그 일을 이야기했을 때,
엄마는 나를 병원에 데려갔어야 했어.
하지만 엄마가 한 일은 
나를 집에 그대로 방치해두고
아빠랑 지지고 볶고 싸운 일 밖에 없었지.

물론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적어도 나를 그 집에 계속 뒀어는 안 됐었어.
어딘가로 보냈어야 했지.
어떻게 설명할 지에 대한 무서움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했어야 했어.

하지만 나는 그 집에 계속 남았지.
그 뒤로도 아빠의 성폭행은 계속 되었어.
왜 엄마한테 다시 이야기 안 했냐고? 
집안 꼴을 봤으니까.
내가 말 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고
집안만 풍비박산이 나는구나.
내가 말하면 엄마 아빠는 허구한 날 싸우고 
엄마는 집 나가고
아빠는 나를 때리고, 왜 이야기했냐며 오히려 나를 질책하는 구나.
엄마에게 말해봤자,
해결되는 것은 없고 일만 복잡해지는구나.

그래서 나는 입을 닫았어.
나 하나 참고 희생하면, 집안이 조용할 테니까.
그냥, 그건 7살 때부터 내가 쭉 살아왔던 방식이었어.


그리고 나는 언제나 혼란스러웠지.
나에게 그런 잘못을 한 아빠를
엄마는 아무리 봐도 다 용서한 듯 보였고
아무리 봐도 엄마는 아빠를 좋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야.

내가 엄마라면
자기 딸한테 그런 짓을 한 아빠를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엄마는 아빠를 오히려 좋아했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점점 엄마가 싫어졌어.

진짜 엄마가 아닌 것 같았고,
내가 믿을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지.
나보다는 자기 자신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내가 기댈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그 뒤로 지금까지 똑같아.
나는 엄마가 미워.
엄마는 내 편이 아니니까.
엄마는 그저 자기 좋을 대로만 행동하고
자기 좋은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야.

내가 엄마랑 지금까지 그저 같이 살았던 건
살 집이 필요했고 먹을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어.
내가 스스로 그것들을 마련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야.
잘 썼어, 그동안.

그리고 그렇게 사는 동안
엄마를 용서해보려고 노력도 참 많이 했어.
정말이야.

엄마도 평생 쉽게 살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엄마가 한없이 불쌍하기는 해.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어렸을 때는 맨날 할아버지한테 매맞고
그러다가 아빠같은 사람을 만나서
그지같은 결혼 생활을 하다가
이혼까지 하고.
이제 겨우 할머니 덕분에 맘 잡고 살고 있으니까
이 사람을 더 힘들게 하지는 말자,
하면서.

하지만 
잘 용서가 안 돼.
물론 잘못은 아빠가 한 거지.
아빠는 당연히 용서할 수 없어.
평생 증오할 거고
정말 언젠가는 죗값을 치르게 해주고 싶어.
사실 아빠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달리 편하게 칭할 말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부르고 있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싶었던 두 사람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미워.
그게 너무 슬퍼.
나도 두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가 없어.

진심으로
나는 그게 가장 원망스러워.
당신들 스스로가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