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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전위, '빨갱이'   trois.
조회: 2764 , 2013-09-24 11:33



아리랑을 다 읽어내고
이어서 태백산맥을 읽고 있다.
이 역시 작가의 주관이 담긴 역사의식이지만, 
어느 정도 선명하게 당시의 상황을 느낄 수 있어서
당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소설들이다.

아리랑 같은 경우,
독립 무장 투쟁, 그 중에서도 의병 투쟁이 굉장히 부각되고
문화 운동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독립군들이나 임정 역시 독립운동의 중심이 아니다.
아리랑에서 그 시대의 중심이 되는 것은 
의병들이다.

작가는 아마도, 
적극적인 무력 투쟁,
그 중에서도 의병 투쟁이 가장 제대로 된 독립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느꼈다.

그렇다고 다른 운동들을 등한시하거나
가치 없게 여긴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의병에 가장 비중을 두고 있을 뿐이다.
이 점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동안 내가 역사를 배울 때는
문화운동을 더욱 비중 있게 다뤘기 때문이다.
의병은 산발적으로 일어났다가 이내 소탕되어버린
일시적 무력투쟁,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리랑에서는 
피 흘리며 죽어간 의병들의 적극적이고도 필사적인
독립투쟁 과정을 보여준다.
몰랐던 일면을 보게 되어,
한층 더 입체적으로 그 당시를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
.


일제는 그 막을 내린다.
그리고 조선은 
그 덕에 해방을 맞이한다.

일본인들이 빠져나가고,
이제 한반도에 남은 것은
그동안 핍박 받던 사람들과 
그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 섰던 친일파들이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또 한 가지 분명한 역사의식을 내세운다.
친일파에 대한 관점이다.

그는 인물들의 입을 빌려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물을 길러 온 아낙의 입, 매질을 당한 노인의 입,
팔려 나가는 처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일본놈 앞잡이 하는 조선 놈이 더 나쁘다. 제일 나쁘다."

그리고 일본인 고위 관직자들도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조선인 앞잡이들이 없었다면 
대일본제국이 조선을 이렇게 잘 통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친일파,



민족배반자,




물론 개인을 들여다보면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사람들, 
협박을 받았다는 사람들,
일제가 끝날 지 몰랐다는 사람들, 이 있었지만
나는 그런 건 다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친일이라는 것이
단순히 관리가 되고 벼슬을 하는 것을 넘어
같은 나라 사람을 죽이고 괴롭히고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생계를 위해 친일을 한 사람보다는
입신양명을 위해 일제를 이용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이
감히 가난에 쫓겨 친일을 한 사람들을 방패로 내세우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



해방이 되고
친일파들은 꼬랑지를 감춘다.
그래도 자기 죄를 알았는지
죽을까봐 도망을 간 것이다.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귀결이
몇 개월만에 뒤집힌다.




미국의,
등장이다.



한반도, 조선이 앞으로 할 일은
나라의 앞날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수 십 년 세월에 걸친 식민 지배로 엉망진창이 된 나라를
재정비해야만 했다.

친일파를 처벌하고,
정치 제도를 정비해야 했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그 공로를 인정받아야 했고,
또 그들이 앞으로 나라의 앞날을 이끌 기회를 얻었어야 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내놨던 사람들이
그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권리와, 의무를 갖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아주 상식적이지만,
이런 한반도의 상황을
당시의 미국은 존중하지 않았다.

미국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조선의 안정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막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인과 친일파로 꽉 채워져 있었던 
사회의 상위 계층들의 자리가 비워진 조선,
사회주의 사상에 깊게 경도된 젊은 지식인들,
그리고 독립운동가들.

물론 독립운동가들 중에는 사회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백성들은 다르다.
그들은 오랜 기간 핍박 당해왔다.

지주들을 물리치고 소작인들의 세상을 만드는 그 이념에
조선 농사꾼들이 달려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지주들을 물리칠 것도 없이
그들은 꼬랑지를 잡혀 있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폭풍전야 같이 격변이 예상된 상황이었을 것이다.

조선은,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기에 최적의 조건이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미국은 그렇게 보았을 것 같다.

재빠르게 사회 안정을 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왜곡된 방법이든 어떻든,
새로 관리들을 뽑아올릴 여유도,
사회주의자가 아닌 조선사람들을 고를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가장 편리한 방법은
절대 사회주의자일 리가 없고,
이미 관리를 맡고 있었던 
친일파들을 다시 데려오는 것이다.

빠른 기간 내에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
사회주의 혁명을 저지시킬 수 있는 방법.




그 외의 미국의 저의는 사실 잘 모르겠다.
당시 상황이 아직 많이 그려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회주의가 아니었더라도
정부도 없이 해방을 맞아버린 조선은 
사자 앞에 놓인 토끼였을 지도 모른다.
강대국들은 그런 한반도를 호시탐탐 노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느긋하게 자신의 나라를 만들 계획을 세울 시간이 되었더라면,
민족 분열의 여지가 다분한 친일파들을 그냥 뒀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든다.


뭐,
그냥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이지만.
어쨌든, 친일파는 그렇게 다시 사회로 유유히 돌아온다.
더욱 당당히,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자신들조차도 찔려하던
전과를 말끔히 덮으며.




.
.

그리고 시작된 것이
빨갱이 소탕.

'빨갱이'란 무엇일까.
붉은 사람,
이라는 뜻이다.

도대체 사상이 붉을 이유는 무엇인가.
소련과 중국의 국기가 빨개서 그랬을까,
아니면 사회주의 군대의 이름이 적군, 이어서 그랬을까.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는 빨갱이가 되었다.

애초에 빨갱이를 빨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를 구분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련과 중국이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하고
조선도 혁명의 불씨가 키워져 가고 있던 때에
미국은 필사적으로 그 혁명을 막아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용한 것이

친일을 했던 사람들의 밥그릇 욕심.
그리고 그것은 목숨과도 직결 되었을 것이다.

무산 계급들이 뭉쳐 유산자를 몰아내자는 것은,
한반도의 상황을 비춰 말하면

백성들이 똘똘 뭉쳐 친일파 몰아내자,
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유산자든 지주든, 일제 시대에 재산 깨나 모으려면
친일을 하지 않고서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양심적인 부자들도 있었지만, 
극소수였을 것이다.

그러니,
친일을 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명줄과 밥줄을 위협해 오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을 목숨 걸고 사냥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미국이 이를 방관한 것은
이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충실히 저지해주는 사냥개와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해의 톱니바퀴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부르짖는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논리적 이유도 없이
'빨갱이'로 몰려 갔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함축적이고
말도 안 되는 죄목 중 하나가 바로
'빨갱이죄'일 것이다.

빨갱이를 처벌해야 한다는 사람에게
빨갱이를 '왜' 처벌해야 하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제대로 대답할 사람이 있을까? 

빨갱이는,
애시당초 맹목적인 죄목이다.
처벌을 위한 죄목인 것이다.


오죽하면
'살인죄', '절도죄'
가 아니라 '빨갱이죄'일까.

살인은
살인을 했기 때문에 죄인 것이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것이고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죄인 것이다.

절도는
절도를 했기 때문에 죄인 것이다.
절도를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빨갱이는
빨갱이이기 때문에 죄인 것이다.
빨갱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빨갱이여서는 안 되는 걸까?
여기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보고 빨갱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사회주의를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주의를 주장한다고
죽어야 할 이유는 없다.
무정부주의자는 죽어야 하는가?
민주주의자는 죽어야 하는가?
사회주의자는 죽어야 하는가? 

그 사회제도가 체택되지 않을 수는 있을 지언정
그것을 주창하는 것이 어떤 죄가 될 수는 없다.



빨갱이는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한
친일파, 그리고 미국 자유주의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아니 도대체,
가난한 사람을 중심에 세우고자 하는 그 사상을 한반도에서 몰아낼 방법이
무엇이 있었을까? 
오랜 시간 지배층으로부터, 그리고 일제로부터 
재산도 목숨도 빼앗겨왔던 백성들에게서
어떻게 사회주의를 뺏을 수 있단 말인가? 

그건 그냥, 
설명 없이 잡아다 죽이는 것밖에는 없는 것이다.


엄마들이 자주 하는 말,



'그냥 안 돼!'
'왜 안 되는데?'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
'아 그러니까, 왜 안 되냐고. 설명을 해보라고.'
'시끄러워! 어디서 엄마 말 하는 데 말대꾸야. 방에 들어가. 나오기만 해봐, 내쫓아버릴 테니까.
잘못이라면 잘못이지, 그럼 네가 잘 했어?'
'아 그러니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했냐고. 말을 해보라니까?'


이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
.


그렇다면 왜, 
친일파나 지배 계층이 아닌 사람들은
왜 덩달아 빨갱이를 욕하는 것일까? 
어째서 그들이 잘못했고, 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당시에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의 가족들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몰매를 당하기도 하고,
심하면 잡혀가 고문도 당하고, 죽기도 했다.
그런 일을 당할 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에게마저 이런 원망을 했다.

'뭐할라고 공산주의 같은 것은 해갖고 나를 이 고생을 하게 만드느냐'

그리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그 놈의 공산주의가 제일 싫다.'


어째서 자신을 때린 친일파들에게 화를 내는 것보다
공산주의를 욕하게 되었을까? 
공산주의에 대해서 잘 몰라서? 
정말 친일파들의 말처럼 공산주의가 죽어 마땅한 죄라고 생각해서? 

단지 공산주의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남자 가족들이 죽어나가고
남은 가족들이 피해를 입어나가는데,

'공산주의를 뭐하러 해서 이 고생을 시키느냐-'



'친일파는 왜 공산주의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이 고생을 시키느냐'
가 아니고? 







.
.


나는 이 현상을 전위,
로 설명해보고 싶다.

전위란 프로이트의 방어기제 중 하나인데,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을 
원래 감정을 일으킨 대상보다 덜 위험한 대상에게 발산하는 것'
을 뜻한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에 대한 분노를 상사에게 표출하지 않고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고함을 지름으로써
나타내는 것이다.



욕해야 마땅할 거대 권력을 상대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실컷 욕할 수 있는 애꿎은 공산주의를 욕해대는 것.

내가 지금 이 고생을 하는 것은,
나를 잡아다 패는 친일파 때문이 아니라 
'빨갱이' 때문이라는 생각. 분노.


쉽게 미워할 수 있는 상대를 정해
증오하는 것.
인간의 나약함.
주객 전도.



.
.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말이다.
엄마나 내 동생이 나에게 했던 말. 
나를 성폭행한 아버지에게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나에게는

'왜 이야기했어?'
라고 탓하는 것.

내가 이야기한 게 문제인가,
그가 나를 성폭행한 게 문제인가.
문제는 분명한데도
엄마와 동생은 그에 맞써지 못한다.
아무 위협도 안 되는 나를 탓할 뿐.
어쨌든 누군가의 탓인 것은 같은데
그를 탓하기에는 무서우니



나를 탓하는 것이다.




.
.


빨갱이는 
그러니까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에게도
어떤 잘못이 있었을 수도 있다.
윤리적인 문제들이.

친일파들을 죽였다거나,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그러나 그것들만으로
이렇게 민족 전체의 적으로 둔갑할 수 있는 것일까? 
정작 우리가 미워해야 할 주체인
권력자들, 즉 친일파들은 
하나도 미워하지 않은 채.



미워할 수 있는 대상을 골라
마음껏 미워하는 것.
인간의 나약함.


남한의 집단 무의식적 전위,
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 '빨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이런 전위 때문에
아직까지도 친일파들, 그리고 부정을 저지른 권력자들이
버젓이 돌아다닐 수 있는 거겠지.


물론 우리 나라 사람들이 무능하다고
싸잡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시절 그렇게 빨갱이를 맹목적으로 미워하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우리는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
.



  13.09.24

미워할 수 있는 대상을 골라
마음껏 미워하는 것.
인간의 나약함.

안타깝죠....

시위대와 의경들의 폭력적인 대치상황을 보면
가장 안타깝죠. 쟤네끼리 저렇게 서로 욕하고 때리고 할 이유가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