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向月
  악마같은 밤.   지난 이야기
조회: 2554 , 2014-06-10 00:09
 일주일째 계속 되고 있다.
 불면증.
 더불어 꽤 오래동안 괜찮았던 심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음을 느꼈다.
 아침에 병원에 전화를 했다.
 진료 예약. 마침 수요일이 비어있었고 당장 예약하고,
 기차표까지 예매해놓는다. 
 
 병원에 가는게 3개월만이다.
 어느정도 괜찮아졌다고, 관리만 잘하라고, 했던 게 지난 3월이다.
 음.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그 무렵.
 비가 오던 수요일, 역으로 날 데리러 와준 당신이 생각난다.
 
 
 
 건망증이 더 심해졌다.
 아니, 기억력장애인건지, 단순한 건망증, 집중력저하인지 알 수가 없다.
 손에 분명 만지작거렸던 메모를 불과 몇분만에 어디다 뒀는지
 그것도 밀폐된 차 안에서 기억이 안 나 한참을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냉장고 속에서 TV 리모컨을 발견한다거나.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하루를 보내고나서, 뭐였지? 하며 생각이 안 나서,
 연상의 연상을 거듭할 수록 더 복잡해지는 머리를 부여잡고 욕설을 퍼붓거나.
 
 당신은 그런 내게 혀를 내두르며,
 당신 건망증은 알아줘야해.. 한다. 곧 내 얼굴도 까먹겠다.. 한다.
 괜찮아, 매일 사진보니까 안 잊어버려.
 눈을 흘기는 당신을 보며 배시시 웃어보인다. 
 병원진료를 받으면서 신경정신과 진료도 같이 받아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악마같은 밤이 내게 속삭인다.
 내 모든 것을 부정하라고.
 이미 나는, 내 모든 것을 후회하고 부정하고 있다.
 달라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주저앉아 망연자실하다가
 밤이 되면 울면서 빌기도 하고,
 지금껏 이따위로 살았으니 앞으로도 이따위로 살꺼라고
 독한 마음을 먹기도 한다.
 내가 지금에서야 착한 마음을 먹는다고해서, 천국이나 극락세계로 갈 것 같지도 않다며.
 
 지난 날의 나를 모두 부정하고 싶다.
 잘못된 선택을 해서, 낙인찍힌 사람이고 싶진 않았는데
 나는 이미 낙인찍혔다.
 웃기게도, 낙인찍혔다고 생각하면서, 형사정책 중 낙인이론이 생각난다.
 
 넌 이미 나쁜 놈이야, 라고 낙인찍히는 순간.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그래, 그래서 악마가 내게 속삭인다.
 넌 이미 나쁜 년이야,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그러니 착하게 살려는 노력조차 하지마.
 이미 나쁜 년이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 괜찮아.
 
 



 당신을 만났다.
 이미 우린 안되겠지, 하지만 시작은 해보고싶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신은 나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만하기로 하자, 라던 당신을 붙잡고
 내가 언제 같이 살자고 했어? 나 책임져달라고 했어? 아니잖아. 그냥 사랑만 해..
 당신 가고싶을때, 결혼할 사람 생길때. 그때까지만... 이라고 내가 잡았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했다.
 함께 할 수 없음을 알면서, 위태롭게 사랑했다.
 
 당신의 부모님은 그런 나를 싫어하셨다.
 편견의 눈빛은 피할 수가 없었고, 낙인찍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었다.
 당신이 다 괜찮다고, 말해준다면.. 나는 다 버리고 갈 수 있었을텐데
 지옥 속이라도, 불구덩이 속이라도, 다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당신은 그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을 원망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나의 문제였으니까.

 

 나를 만나면서도 당신은 어머님이 가져온 다른사람의 전화번호로 문자를 해
 선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또 나를 보고 나를 안았다.
 선을 보고 돌아와서도 너만한 여자가 없다며 웃던 당신이,
 이번엔 달랐다.
 이제 나도.. 가야지.. 라고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마음 속으로 수백,수천번 생각해왔던 이별이 다가왔다.
 당신은 알고있을까?
 
 당신을 좋아하는데.. 사랑하는데.. 늘 같이 있고싶은데.. 미안해
 라고 말했던 당신의 말.
 처음으로 당신이 내게 사랑한다고 말한거란 것을. 
 


 우리 다시 태어나면 엇갈리지 말자. 라고 웃으며 산길을 걸었다.
 우리 로또되면 그냥 도망치자. 라고 말하며 번호를 고른다.
 어머님께 얼마면 되냐고 물어볼테야, 라고 나는 웃는다.
 


 혼자 불안해하고있다.
 언제 떠날지 몰라서, 매일 이별 준비를 한다.
 이렇게 말해야지 저렇게 말해야지. 하며 내가 당신에게 할 말들을 정리한다.
 하지만 언제나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당신은 여전히 일어나서 내게 아침인사를 하고 출근을 하고
 내게 점심을 잘 챙겨먹으라고 말을 하고, 농담을 하고, 웃고..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고백에 고마워하고 또 웃고, 부끄러운듯 일찍 자란 말을 한다. 
 
 악마같은 밤이 나를 괴롭힌다는 말도 못하고
 응, 당신도 잘자, 하며 하루를 마감하는 척, 한다.
 내 하루는 끝이 나질 않는다.
 당신과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얼음골 계곡에서 트래킹화를 신고 내 백팩을 대신 매고서 바위 위에 서있던 당신의 뒷모습, 이라던가
 여름휴가, 해수욕장에서 밝게 웃으며 수영하던 모습,이라던가
 술에 취해 팥빙수를 떠먹여주고, 산 정상에서 라면을 끓여주고, 나에게 목걸이를 걸어주고
 열심히 갈매기살을 뒤집고, 내 허벅지 위에 손을 올리고 간지럼을 태우던.
 그 모든 것을 다 되돌려서 다시 또 함께이고 싶다. 






 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