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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시안블루
 생각들-오진혁-돈에 대해서   2015년
조회: 63 , 2015-09-19 18:57
진혁아.
어제 학교를 방문해서 니 생활기록부를 보니
진로 상담란에 '본인의 직업관이 확실하여 원하는 대로 지도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더구나.

의사에서 외교관으로, 지금은 <금융컨설턴트>로 해마다 너의 희망 직업은 변해왔지만
이번엔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지난번 '와이즈멘토'에서 받은 적성겸사겸 진로상담 결과를 
니가 진심으로 동의하고 장래 직업으로 받아들였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도 뭘해야 할지 막막했던 아빠를 떠올려보면,
빠른 진로 결정은 그만큼 막막한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니까...

니가 말은 안하지만,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컨설턴트  말에 혹하지 않았니?
너는 생김새만 아빠를 닮았을뿐, 정신은  지극히 현실적인 엄마를 닮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거든.

너의 결정을 존중하면서, 돈에 대해서 몇마디 두서없이 덧붙이고 싶구나.


#1.
경제관념이 너무 없고,  몽롱한 꿈만 꾸는 아빠가
이렇게  평균치의 삶이나마  살고 있는 것은 거의 기적이라고 생각한단다.

한때 '재테크책을 읽지 않고 살아왔다'는게 아빠의 은밀한 자부심이었지만
가족을 부양해야할 가장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요즘은 그것이 가끔 부끄럽구나.
무책임한거지...

이 나이에 새삼 재테크책을 읽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만,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돈의 흐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되고,
<돈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하고,
돈 이외에 <인생의 다른 국면>에도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빠는 그저 니가 <돈의 흐름>에만 관심을 가질까봐 우려가 된다.
간혹 좋은 느낌이었던 사람이 주식이야기, 부동산 이야기, 자식 이야기만 하면 솔직히 '깬다'
피곤하고, 천박해 보이고, 피하고 싶지.
내 아들이 그러면 얼마나 슬프겠니?



#2
나에게 돈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 사람이 둘 있었다.

한 명은 아빠보다 열살이상 어린 회사 후배야.  (아빠를 형이라고 부르는...)
법대를 졸업하고 입사했던 녀석이 휴직을 하고 국제변호사를 따겠다고 뉴욕으로 건너 갔단다.
알바해서 학비대느라고 정말 고생을 많이 했지.

그런데, 녀석은 어렵게 공부하는 와중에서도 자신의 경력 관리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만나서 식사를 하고, 골프를 함께 쳤지.. 
(커서 알겠지만,  다 돈드는 일인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다)

그 와중에 만난 사람이 변호사 사무실에 알바 자리를 소개시켜 주는데,
훨씬 편하고 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전에 받던 알바 급여의 10배를 주더란다.
덕분에 그 후배는 편하게 학업을 마치고 귀국해서 지금은 아빠회사 법무팀에 근무를 하고 있지.

녀석이 말하더구나.
'자신을 위한 투자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는걸 깨닫았다고...


#3
또 한분은 아빠보다 다섯 살쯤 많은  회사 선배야. (아빠가 형이라고 부르는...)
IMF때 주식투자를 해서 '거지'가 되신후,  다시 주식으로 엄청난 돈을 버셨다는구나.
아빠가 이 분을 좋아하고 즐겨 만났던건
이 분이 주식 이야기 보다도 그 과정에서 깨닫은 돈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이야기 해주셨기 때문이야.

이 분 말씀에 따르면,' 20대의 100만원은 50대의 1억원' 이래.
돈이란건 어느 정도가 모여야만 그 돈을 이용해서 투자를 하고, 다시 돈을 버는데
돈을 펑펑쓰는 젊은이들은 도대체 그 종자돈을 모을 틈이 없다는 거지. 
돈이 돈을 번다는 말도 있지?
(옳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걸 경제학에서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라고 말하지.
 산업혁명기의 영국, 박정희 시대등이 역사적으로 자본의 본원적 축적기에 해당한단다.)


#4
진혁아.
두 사람은 돈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게 느껴지니?
누가 옳고 그르고를 말하는게 아니다.
아빠는 두사람 모두 옳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이 두사람이 진심으로 부러웠던건  그들의 돈에 대한 확고한 철학때문이었다.
아빠는 부끄럽지만, 이 나이 되도록 그런 철학이 없거든.

돈이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는' 단순한 게 아니란다.

니가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돈을 바라볼 수 있고
돈 이외에도  삶의 다른 국면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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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아
하나의 관점을 덧붙인다

책을 읽다가 공감하는 글귀를 만났기때문인데,
생각해보니 그 것은 30대까지 아빠가 가졌던 금전관 이었다.

아빠가 읽은 글은 이렇다.

'은행에 저축을 하는 것은 대단히 불안정한거예요
 그러나, 내 몸 속에 저축을 하면 그건 영속적이죠. 
 문화적 경험, 연극을 본다거나 책을 사서 읽는다는 건 피 속에 흔적을 남기는 거예요'

            - 헤이리에서 북카페를 하는 김안수씨를 인터뷰한 <지식인의 서재>에 실린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