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C버전
공개일기 한줄일기 내일기장
向月
  눈부신 너에게.   현실체험기
조회: 2397 , 2015-10-23 12:53
 기억해요?
 나한테 처음 보냈던 편지에, To. 눈부신 너에게- 라고 쓰여져있었는데.
 벌써 1년이나 지나버린 편지를 틈날때마다 꺼내읽고 있어요.
 봉투가 이제 너덜너덜해지고 조금 찢어지고 헤지고, 그래요.

 떠나고 싶은 계절, 10월입니다.
 항상 10월이 되면 돌아가기 싫어서 밖으로 전전긍긍하며 살았는데
 이번 10월은 그러지 않네요. 신기한 일입니다.

 4년 가까이 기르던 머리카락을 잘랐어요.
 싹둑 잘라버린 건 아니지만
 가슴,명치까지 오던 머리카락을 어깨선으로 잘라버리니
 한결 가볍고 좋아요. 까만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지만 아직은,
 그렇게 환자라는 티는 나지 않나봐요.
 그리고- 새로 머리카락도 자라나는지 송송송 짧은 머리카락들이 솟아나요. 풉

 나는 여전합니다.
 여전히 책을 보고 공부를 하고 음악을 듣고 노래를 하며 살아요.
 틈나는대로 기타도 치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가끔 아주 가끔 커피도 한잔씩 하며, 소주도 한잔씩 하며 사치를 부립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욕심은 조금 내려놓은 것 같아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후회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응. 후회해봤자 지나간 시간들이니까.
 오늘, 현재를 잘 살아내고 잘 이겨내야 내일도 있는거니까. 그렇게,
 남들도 다 아는 이야기를, 나는 노력하면서 해보려고 해요.
 
 웃기는건,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이 식어갈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더 깊어집니다.
 왜 그러느냐고 말하지 마요. 나도 모르겠으니까.. ^^
 
 당신의 말처럼,
 이십대 초반의 얼치기 같은 연애를, 두어번 했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이럴 줄은 나도 몰랐어요.
 그사람을 사랑한지 벌써 3년이 되어갑니다.
 1년이 지나면, 놓을 수 있을거야..
 또 1년이 지나면 놓을 수 있을거야..
 그러면서 내게 조금만, 조금만 더-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그렇게 3년이 되어가네요.
 
 가끔 모임에서 그를 만나요.
 여전히 그의 옆자리는 내가 앉고 나를 보며 웃고,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셔요.
 사람들과 하하호호 떠들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도 함께입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다 꺼내놓지도 못한 채 헤어지지만.
 나는 그렇게 그를 보는게 좋아요. 그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도 좋고,
 까만 눈동자를 마주보는 것도 좋아요.
 그리고 그도 그러하길 바라죠.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연애하고 사랑하는게 불완전한 거라는 것.
 알고 있었나요?
 한 사람이 불완전해서 다른 사람을 만나 채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사람의 불완전함 마저도 끌어안고 가야한다는 것.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내가 가진 단점들과 불안함.
 그리고 그사람이 가진 불안함과 불확실함.
 언제쯤 우리는 서로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불안해하지 않고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그건 답이 없는 거였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근원적인 외로움처럼. 능력 밖의 일이 되죠.
 그렇지만 그냥,
 지치지 않고 노력할 뿐입니다. 내 능력 밖의 일이지만, 노력하는건 내가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렇죠? ^^


 가을이에요.
 밖의 나무들이 온통 노랗고 빨갛고, 옷을 갈아입었어요.
 계절을 모르고 피어난 장미와 개나리들이 종종 보여요.
 따뜻한 봄날에 피어났으면, 더 활짝 필 텐데,
 시기를 잘 못 알고 피어나- 곧 떨어지고 시들겠죠.
 그게 자연적인건데.. 내 몸 안의 이녀석은 왜 이렇게 생겨난건지.
 가끔 의문입니다.


 10일에 한번씩 피검사를 하고 백혈구 수치를 확인해요.
 2번정도 항암이 남아있고요,
 병원을 다녀오면 그 날은 그냥 죽은 듯이 잠만 자게 되요.
 다른 날엔 평소와 다름이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내가 가장 두려운 건,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죠.. 당신도 그렇듯. 나도 그래요.
 그래서 도피하듯 책을 읽어요.
 
 미래를 몰라서 알고 있는 과거로만 도망가요.
 새로 나오는 것들보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들.
 가령,
 내가 아주 좋아했던 음악이나 책. 그리고 어릴때부터 안고 잤던 담요같은 것.
 그것들을 끌어모아 침대에 던져놓고 옆에 두고 잠이 듭니다.
 누군가 내게, 과거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때도 지금도 맞는 말 같아서 조금 서글프기도 하네요.




 날이 좋아요, 오늘은.
 잠시 밖에 나가보려해요.
 눈 앞에 당신이 보냈던 편지가 있어서, 생각이 나서,
 이렇게 가만히 앉아 톡톡톡 몇자 두드렸어요.
 
 당신은 ... 안녕,한거죠?
 

질주[疾走]   15.10.25

항상항상
응원합니다 향월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