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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42 , 2003-11-30 10:52


명의이야기 -알레르기천식, 김유영 서울대병원 교수 [ 임호준 ]  

  



    
  알레르기명의/ 서울대병원 내과 김유영교수

김유영 교수는 국내 알레르기학의 대명사다. 강석영 전 서울의대 교수가 알레르기학을 최초로 도입했다면 김 교수는 그것을 본격적으로 육성·발전시켜 꽃을 피웠다. 1979년 서울대병원에 국내 최초로 알레르기 클리닉을 개설했으며, 천식 등 알레르기 질환의 한국적 진단·치료지침 마련에 앞장 서 왔다. 1999년부터는 ‘세계 기관지 천식 선도기구’ 자문위원으로, 천식에 대한 국제적 진단·치료지침 제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감귤 사과 배 나무에 사는 잎 응애가 천식이나 비염 등 알레르기 질환을 유발한다는 것과 염색체 11번에 알레르기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인자가 있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규명함으로써 국제 학계서도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김 교수의 말투와 태도에서는 ‘약간’ 권위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서울대병원 한 관계자는 “엄마처럼 자상하진 않지만 아버지처럼 중심을 잡아주는 분”이라고 평했다. 한 후배 교수는 “얼핏 권위적으로 보여도 환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취미는 산행(山行).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와 칼라파타르, 중국 쓰쿠냔산 등을 등정했다. 젊었을 때는 인수봉 등 암벽타기에도 매료돼 한가닥 외줄에 생명을 걸기도 했다. 그는 “산이 좋아 산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알레르기란 인체 면역체계가 일종의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현상.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를 공격해야 하는 면역체계가 몸에 그다지 해롭지 않은 물질(알레르겐)에 지나치게 반응함으로써 염증, 발작 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천식의 경우 집먼지 진드기, 꽃가루, 곰팡이, 담배연기, 화학물질 등에 의해 기관지 점막이 부풀어 오르고, 기관지 근육까지 경련을 일으키면서 수축돼 호흡곤란, 기침, 발작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천식 등 알레르기 질환은 산업화와 관계가 깊다. 태평양 파푸아뉴기니섬 고산지대의 원주민은 알레르기를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집을 짓고, 이불을 덮고 살면서부터 알레르기성 비염과 천식 등이 발병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최근 20여년간 8배, 우리나라는 3배 정도 알레르기 환자가 늘었다. 김유영 교수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아 천식 유병률(有病率)은 1980년 5.6%, 1990년 10.1%, 1997년 14.5%다. 현재는 16~17% 정도로 추정된다.
현대인에게 알레르기 질환이 많은 이유는 위생상태가 개선됨에 따라 세균의 침입이 과거보다 크게 줄었고, 이 때문에 할일이 줄어든 면역체계가 남아도는 힘을 엉뚱한 데 집중시키기 때문이란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 밖에 아파트형 주거 형태의 확산, 각종 화학성분·식품첨가물에의 노출, 농약 대량살포 등으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 흡연 등도 알레르기가 증가하는 이유다. 김 교수는 농약 살포로 병충해를 일으키는 곤충이 줄어들자, 곤충의 먹이가 되던 잎응애 등의 작은 벌레가 늘어났고, 이때문에 과수원에만 가면 알레르기가 생기는 ‘귤응애, 잎응애 천식’이 늘고 있다고 세계 학계에 보고하기도 했다.
알레르기 질환에 대처하는 첫번째 원칙은 어떤 물질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지를 정확하게 찾아 이를 피하는 ‘회피요법’이다. 둘째는 약물요법. 천식의 경우 기관지확장제, 항염제, 스테로이드 등이 사용된다. 김 교수는 “두가지 치료법을 적절히 조화하면 천식 발작과 폐기능 감소 등을 예방할 수 있다”며 “알레르기 천식은 재발이 매우 잦고, 증상이 잘 조절되다가 갑자기 악화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한시도 경계심을 풀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필요한 경우엔 면역요법을 고려할 수 있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을 아주 조금씩 체내에 투입해 그 물질에 대한 면역반응을 둔감하게 하는 치료다. 3년 이상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이다. 통상 80~90% 증상이 호전되며, 특히 꽃가루나 집먼지 진드기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경우 효과가 좋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환자에게 항상 환자·의사의 파트너십을 강조한다. 쉽게 완치되는 병이 아니므로 의사와 환자가 함께 힘을 모아 증상을 관리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환자도 병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한다.
병이 잘 낫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 그럴듯한 말로 환자를 꼬드기는 수 많은 건보식품, 약품, 약재가 시중에 범람하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그는 충고한다. 특히 ‘산성체질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므로 체질을 알칼리성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은 낭설이므로 아예 무시해 버리라고 권한다. 인체 체액의 산성도는 pH 7.4로 조절돼 있으며, 속칭 ‘산성체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수년 전 천식이 발작해 사망한 한 환자를 아직도 가슴아파 한다. 염료공장에 다니던 그 환자는 ‘직업성 알레르기’가 심한 것으로 판명돼 공장을 그만두라고 거듭 부탁했으나 무시하고 일을 하다 발작이 일어나 사망했다. 알레르기 천식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인구 100만명당 1명 꼴이다. 김 교수는 “최근 천식 사망이 크게 줄고 있지만, 전체 천식 환자의 5% 정도는 언제 ‘사고’를 당할지 모르는 중증이므로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호준기자 hjl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