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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아산병원 이승규교수의 '간'   주소록
조회: 982 , 2003-11-30 11:06
서울아산병원 이승규교수의 '간'


  

단언컨데 간은 사람의 오장육부 중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장기다. ‘인체의 화학공장’으로 불리는 간에서는 담즙(소화액)을 비롯해서 우리 몸에서 필요한 수천가지의 물질과 효소를 생산해 낸다.
담즙은 십이지장으로 이동해 섭취한 음식을 더 작은 입자로 분해하는 등 소화를 돕고, 이렇게 소화-흡수된 각종 영양소는 피를 타고 돌다 다시 간으로 이동해서 재처리된 뒤 다른 조직에 저장되거나 몸 밖으로 배출된다.

이같은 방법으로 우리가 흡수한 지질과 당질, 단백질이 몸 속에서 대사된다. 각종 비타민과 호르몬이 대사되는 곳도 간이다.

간은 또 체내외에서 발생하는 각종 유독물질의 제독(除毒) 작용을 한다. 예를 들어 장내에서 단백질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다량의 암모니아 가스가 발생하는데, 그대로 두면 뇌 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게 된다.




이승규 교수는 누구



많은 사람이 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이승규 교수를 ‘당대 최고의 칼잡이’라 부른다. ‘칼잡이’는 외과의사를 통칭하는 용어다. 요즘은 외과도 장기별로 전문화돼, 간만 수술하는 사람, 심장만 수술하는 사람, 위만 수술하는 사람 등으로 세분화된다. 따라서 어느 한 사람을 간암 또는 위암 수술 분야 최고라 말할 순 있지만, 최고의 외과의사라고 부르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그를 “최고의 외과의사”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모든 외과 분야를 통틀어 비교해도 그와 필적할만한 칼잡이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당대 최고임을 나타내는 에피소드 한 토막. 수년전 서울대 병원장을 지낸 한만청 교수와 김영삼 대통령주치의를 지낸 고창순 교수가 비슷한 시기에 간암에 걸렸다. 그러나 당시 현직 서울대병원 교수였던 두 분이 간암 수술을 받은 곳은 서울대병원이 아닌 서울아산병원(당시 서울중앙병원) 이승규 교수에게였다. 당시 서울대병원측은 이 사실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질까봐 ‘엄청나게’ 노심초사했다.

그는 토·일요일을 빼면 이틀에 한 번꼴로 간 이식 수술을 한다. 이식수술은 보통 오전 9시쯤 시작돼 다음날 새벽에 끝난다. 최고 36시간동안 쉬지 않고 수술한 ‘진기록’도 갖고 있다. 이식이 없는 날엔 간암을 수술하고, 시간을 쪼개 회진·외래진료를 한다. 일요일이건 공휴일이건 하루도 빠짐없이 회진한다. 몸이 열두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이 그에게 하나도 과장이 아니다.

하루 10시간도 넘게, 그것도 허리를 구부려 온 신경을 집중해 수술한다는 건 엄청난 ‘육체노동’이다.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이 교수는 수술실에 런닝머신을 갖다 놓았다. 그는 외과의사의 첫째 덕목을 “열몇시간씩 서서 수술할 수 있는 튼튼한 하체와 허리”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허벅지는 왠만한 처녀 허리 사이즈 굵기다. 다른 외과의사처럼 술을 마시지도 않으며, 틈나는 대로 팔굽혀 펴기, 철봉 등을 한다. ‘자기관리가 지독한 사람’이란 게 주위 사람들의 평가다.

1949년 1월생인 이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주 전공은 간 이식. 1992년 8월 뇌사자 간 이식을 처음 성공한 그는 2003년 11월 현재까지 800여건의 간 이식을 시행했으며, 수술 성공률은 95% 정도다. 수술 건수나 성공률 면에서 단연 ‘세계 최고’다. 특히 1994년엔 국내 최초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생체 간이식을 성공했고, 1997년에는 성인의 생체 간이식을 성공했다. 또 두 사람의 간을 조금씩 떼 내 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세계 최초로 고안, 발표하기도 했다. 덕분에 국제무대서 ‘거물’로 대우 받는 몇몇 안되는 국내 의사 중 한 사람이다.

이 교수는 아직도 수술장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끼니를 떼우고 새우잠을 잔다. 일요일이건 공휴일이건 하루도 빠짐없이 회진하고, 가족 외식도 병원 구내식당에서 한다. 수 년 전 어머니 장례식날 밤, 위급한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수술장으로 달려간 ‘일화’는 지금도 많은 의학도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레지던트때의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무엇인가를 이뤄보겠다는 열정, 그 목표를 위해 빈틈없이 자신을 관리해 가고 있는 그의 노력이 현재의 그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를 ‘최고의 자리’에서 지켜 낼 것으로 믿는다.







이를 인체에 무해한 물질로 바꾸어 소변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간이다. 또 알콜이나 약물 등의 독성도 간에서 제거돼 인체를 순환하게 된다. 간 세포 사이에 존재하는 ‘쿠퍼세포’는 우리 몸 속에 침입한 바이러스나 각종 병균, 이물질 등을 끌어들여 잡아먹는 역할을 한다.

그 밖에 제 역할을 다한 호르몬이나 영양소, 혈액 찌꺼기 등 인체에 불필요한 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역할도 간이 담당한다. 일종의 ‘쓰레기 처리장’ 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간이 인체 소화기관 중 가장 큰 이유도, 심장에서 내 보내는 피의 약 25% 정도가 손바닥 만한 간을 통과하는 이유도 그만큼 간이 많을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간은 엄살을 부리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우직스레 일만 한다. 위(胃)와 한번 비교해 보자. 위는 염증이나 궤양이 생겨 약간만 불편해도 ‘아우성’을 친다. 속이 쓰리고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되는 증상이 즉각 생긴다. 치료를 하고, 하지 않고는 ‘주인’ 맘이지만, “아프니까 어떻게 좀 해달라”고 끊임없이 주인에게 떼를 쓴다.

그러나 간은 왠만큼 지방이 껴서 붓고, 염증이 생기고, 세포가 죽어 나가도 크게 내색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일만 계속한다. 마치 주인을 위해 이 한 몸 부서져라 일만하는 충직한 하인처럼,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돼서야 “나 아픈데...”라고 기별을 한다. 그러다 보니 왠만큼 간이 아파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몸이 붓고, 황달이 생겨 아프다는 것을 알았을 땐 이미 간 기능은 70% 정도까지 상실돼, 치료가 쉽지 않은 상태이기 십상이다.

좀 심한 비유인지 모르지만 고깃집에 가면 소금기름에 찍어먹으라고 소 생 간이 나온다. 그 간이 매끄러운 선홍빛이 아니라 색깔이 누리께하거나, 군데 군데 시커멓게 얼룩져 있다면 먹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사람의 간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사람의 간은 표면이 매끈하고 암적색 빛이 돌아 보기에도 좋지만, 지방간이 있는 사람의 간은 약간 누르스름한 빛을 띄면서 부어있고, 황달까지 있는 사람은 약간 단단하면서 시커멓게 착색돼 있다. 간경화 환자의 간은 표면이 마치 전복껍질처럼 거칠고 딱딱하며 쪼그라들어 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누리께하고 시커멓게 간이 변해가는 데도 자신의 간을 돌보지 않는다. 간은 침묵하기 때문이다.

사실 간은 인체에서 재생력이 가장 좋은 장기이다. 간암이나 간경화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간의 절반 정도를 떼 주는 ‘생체이식’이 가능한 것도 그만큼 재생이 빠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체이식을 하고 두달 정도가 지나면 간은 원래의 크기를 95% 이상 회복한다. 따라서 간은 왠만큼 상처를 입어도 적절히 관리하면 다시 정상을 회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방간은 한두달만 금주해도 말끔히 없어진다. 그러나 제 아무리 재생력이 좋은 간도 70% 이상 망가지면 문제가 생긴다. 간 세포가 30%, 아니 50% 망가졌을 때라도 미리 ‘SOS’ 신호를 보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미련 곰탱이’ 같은 간은 항상 좌초 직전에야 “구해달라”고 절규를 한다.

따라서 느닷없이 ‘SOS’ 신호가 날아오지 않게 대비하려면 미리미리 간을 아끼고 보호하는 방법 뿐이다. 용왕님 앞에 선 토끼가 “간을 꺼내 놓고 왔다”고 둘러댄 것처럼 수시로 간을 꺼내서 확인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간경화나 간암의 90% 이상은 간염 때문이다. 술을 많이 마시면 간이 망가진다고 말하지만, 알콜성 간경화는 전체 간경화의 5% 미만이다. 간염 바이러스가 없다면 매일 소주 두세병씩 몇십년을 마셔야 알콜성 간경화가 생긴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따라서 간경화나 간암은 간염을 어떻게 예방하고 대처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간염 중에서도 간에 치명상을 입히는 주범은 B형 간염 바이러스다. 우리나라 성인의 6~8%는 B형 간염바이러스 보유자며, 10대 이하도 1% 정도는 감염돼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감염자의 80% 정도는 출생시 모체(母體)로부터 수직감염되며, 나머지도 대부분 아주 어렸을 때 감염된다. 어른이 돼서 감염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술잔을 돌리면 감염된다는 얘기는 술을 적게 마시라고 지어낸 이야기지, 실제로 술잔으로 감염된다는 것은 아니다. 결국 간경화나 간암에 걸리는 사람은 어렸을 때 이미 결정된다는 얘기다. 운명의 장난처럼 어린 시절 자기도 모르게 감염되므로 당사자로선 억울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감염 직후부터 체내에서 계속 증식을 한다. 그러나 어렸을 때는 면역체계도 미숙하기 때문에 바이러스와 면역세포가 서로 싸우지 않으며, 따라서 아무런 증상도 없다. 눈과 얼굴이 노랗게 되는 등 간염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30대를 전후해서다. 그제서야 ‘적’인줄 알아차리고 면역세포가 공격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때 바이러스만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간 세포까지 파괴되는데, 이것이 간염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나타나는 발병 양상과 경과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바이러스와 면역세포간의 전면전이 벌어지는 게 급성간염이며, 오랜 시간을 두고 국지전을 벌이는 게 만성간염이다. 어떤 경우는 평생 발병하지 않고 평화공존을 유지하는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을 ‘무증상 보유자’ 또는 ‘건강 보유자’라고 한다.

현재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 중 몇 퍼센트 정도가 ‘운 좋게’ 무증상 보유자가 되고, 몇 퍼센트 정도가 만성 간염으로 진행하는지 등에 관한 통계는 없다. 어림짐작으로 말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면 ‘바이러스 보유자의 70~80% 정도는 바이러스의 증식활동이 멈춰 있거나, 증상이 너무 경미해 본인도 잘 모르고 있거나, 발병을 했다가 저절로 낫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해두자. 뒤집어 이해하면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활동을 하는 만성간염으로 진행돼 임상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전체 바이러스 보유자 20% 정도라는 것이다. 이들 중 25~30%는 간경화가 되며, 그 중 일부가 간암으로 발전한다.

최근엔 C형 간염도 간경화나 간암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B형과 달리 C형 간염 바이러스는 전염력이 매우 약해 성 행위 등 일상생활을 통해 감염될 확률이 거의 없거나 아주 낮다. 주요 감염 경로는 혈액과 체액. 감염자로부터 수혈을 받거나, 비 위생적인 바늘로 귀를 뚫거나, 문신을 하거나, 마약 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주로 감염된다. 신장투석을 받거나 장기이식을 받는 과정에서 감염될 수도 있다.

얼핏 생각하면 B형보다 감염 확률이 크게 낮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방백신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예방백신이 보급되면서 크게 줄었지만, 백신이 없는 C형 간염 환자는 계속 증가추세다. 백신이 우리보다 일찍 보급된 이웃 일본에선 B형 보다 C형 간염이 더 많다. 언젠가는 우리도 C형 간염이 B형 간염을 앞지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C형 간염은 B형 간염보다 증상이 가볍다. 황달도 나타나지 않고, 피로감, 무력감, 소화불량, 구토 등의 증세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걸리면 잘 낫지 않고 만성화 되기 쉬워 결과적으로 훨씬 더 위험하다. 일반적으로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50~70% 정도가 만성화돼, 현재 우리나라 만성 간염 환자의 약 10~15%가 C형 간염 환자다. 만성 C형 간염 환자의 약 30%는 간경화로, 약 10%는 간암으로 발전한다.

한편 A형 간염은 최근 20세 이하 연령층에서 비교적 많이 생기고 있고, 증상도 비교적 심한 편이지만 만성화 되지 않고 대부분 완치되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개발국에 많은 D형 간염과 E형 간염도 우리나라에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간염 바이러스를 보유했지만 발병하지 않은 사람, 즉 ‘무증상 보유자’들은 얼마든지 정상생활을 할 수 있다. 왠만한 신체 접촉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으며, 적당히 과로하거나 술을 마셔도 큰 문제가 없다. 사실상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 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한가지가 정상인과 다르다. 그것은 그들의 내일이 어제처럼 그렇게 건강할 것인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억누르고 있는 간염 바이러스는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으며, 지금껏 평화롭게 공존하던 바이러스와 면역세포가 어느 순간 전투를 벌여 간염으로 진행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요즘엔 ‘건강 보유자’란 표현보다 ‘무증상 보유자’란 표현을 의사들은 더 즐겨 쓴다. 건강한지 안한지는 잘 모르겠고, 단지 증상이 없다는 것만 인정하겠다는 뜻이 여기에 내포돼 있다.

바이러스 보유자는 따라서 의사들이 구태여 무증상 보유자란 단어를 쓰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속에 잠들어 있는 바이러스가 기지개를 켜고 발호(跋扈)하지 않도록, 마치 얼음 위를 걷듯 조심조심 생활해야 한다. 즉, 간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체중이 늘지 않도록 관리하며, 과음을 삼가고, 지나친 과로와 스트레스를 피해야 한다. 또 규칙적으로 간 검사를 받아 바이러스의 상태를 체크해야 한다.

이 중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술이다. 앞서 언급했듯 알콜성 간경화는 전체 간경화의 4~5%에 불과하다. 그러나 술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B 또는 C형 간염때문에 간경화가 된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다. 대부분의 간경화는 바이러스가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때로는 알고서도 술을 마시기 때문에 발생한다. 간경화 환자의 음주경력을 조사해 보면 하루 소주 1~3병씩 10~20년씩 마신 사람이 대부분이다. 바이러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지만, 대부분의 간경화 환자가 그렇게 이해가 안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간경화 때문에 간 이식 수술을 받고도 술을 마시다 결국 사망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이름만 되면 아는 유명인 이모씨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따라서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술을 독약처럼 생각해야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래저래 술을 마셔야 할 자리가 생기고, 또 술을 마신다고 당장 문제가 생기지도 않기 때문에, 대부분 술을 입에 대게 된다. 물론 어쩌다 한번, 꼭 필요해서 술을 마신다면 크게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그렇게 한번 두번 술을 마시다보면 스스로의 방어벽이 허물어지고, 일단 방어벽이 허물어지면 그 다음엔 통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안 그래”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간경화 환자도 처음엔 “나는 그렇게 무식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내 간 속에 바이러스가 힘을 축적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울러 바이러스 보유자는 간에 항상 청진기를 들이대고 있어야 한다. 물론 침묵하는 장기, 간은 왠만해선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심이 있으면 보이고, 애정이 있으면 느껴지기 마련이다. 신경을 곤두세우면 간이 이를 악다물고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왠지 모르게 피로하고 무기력해지거나, 평소보다 식욕이 떨어지고 소화가 잘 안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때는 즉각 간기능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피곤한 정도를 지나 음식 냄새를 맡는게 비위가 상하고 헛구역질 또는 구토를 하거나, 얼굴에 기미가 끼고 피부색이 거무튀튀해지거나, 몸이 이상하게 자꾸 붓거나, 눈 흰자위나 피부가 약간 누르스레 변한다면 좀 더 심각한 신호로 받아들이고 즉시 진단받고 치료에 나서야 한다.

일단 간염이 발병하고, 그것이 만성으로 진행되면 이때부턴 인내와 끈기의 싸움이다. 이 병은 쉽게 완치되는 병이 아니다. 현재 개발된 인터페론이나 라미뷰딘 등의 치료약도 간염 바이러스의 활동을 억제하는데 불과하며, 시간이 지나면 면역성을 키운 바이러스가 다시 튀어나와 환자를 괴롭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길 수 있다”고 믿어야 하며, 의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물요법, 생활요법, 식이요법을 꾸준히 병행해야 한다.

비록 힘들고, 지루하고, 효과가 더디며, 때로는 병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인내를 갖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할 것을 하고 하지 말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성급하게 완치를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쉽게 낫지 않는 병이기 때문이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만성 간염도 평생 몸에 지니고 산다고 각오하고, 그렇게 느긋하고 꾸준하게 관리해 나가야 한다. 그것만이 간염을 이기는 길이다.

물론 처음엔 누구나 의사를 믿고 처방에 따라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그렇게 1년, 2년 치료를 받아도 병이 완치되지 않고,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면 현대의학과 현대의학을 맹신하는 의사에 대한 불신이 쌓이게 된다. 이때쯤 “누구누구는 여차저차해서 간염이 완치됐다고 하더라” “서양의학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하다더라” “간염에는 무엇 무엇이 특효약이라더라”는 얘기가 귓전을 어지럽힌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민간요법이나 자연식품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대부분의 간경화 환자들이 그같은 경과를 겪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특효약’이라고 선전하는 일부 버섯, 성분 미상의 생약, 스테로이드 성분이 포함된 한약 등은 사망률이 80~90% 정도인 급성·전격성 간부전을 일으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간염 환자는 귀를 막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간염 때문에 경영 일선에서 퇴진했다 간염을 극복하고 복귀한 컴퓨터 바이러스 박사 안철수씨는 “주위에서 이 것 저 것을 권할 때 솔직하게 유혹을 참기 힘들었다. 그러나 귀를 틀어막고 의사 지시를 따랐고, 그래서 간염을 이길 수 있었다”고 언론을 통해 고백한 바 있다. 그의 경험담을 많은 간염 환자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한편 간염이 발병하면 환자는 안정을 취하면서 고단백-고비타민식을 해야 한다. 간염에 걸리면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며 끼니마다 쇠고기를 배불리 먹는 경우가 많은데, 쇠고기나 돼지고기 단백질보다 생선이나 닭고기 가슴살의 단백질이 더 좋다. 또 아무리 단백질 식품이라 해도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그 밖에 콩, 달걀, 우유, 두부 등을 많이 섭취하는 게 좋다. 또 간염에 걸리면 체내 비타민도 부족해지므로 비타민 A, C, E, B1, B12, 엽산 등을 보충해 주는 게 좋다.

식품첨가물이 많이 함유된 인스턴트 식품, 튀긴 음식, 태운 고기, 말린 생선 등은 오히려 간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가급적 삼가야 한다. 쑥, 미나리 등을 녹즙기로 짜서 매일 마시는 것도 좋지 않다. 조리해서 먹는다면 몸에 좋은 쑥과 미나리도 녹즙으로 마시면 섭취량이 지나치게 많아져 오히려 간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당연히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말아야 하며, 담배도 간암 발생률을 높히므로 끊어야 한다.

한편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침대에 누워 꼼짝도 않는 경우가 많은데 피곤하지 않은 범위에서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게 좋다. 잠은 충분히 자서 피곤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간염 수치가 안정되면 직장에 나가서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을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하루 종일 영업을 하러 돌아다니거나, 야근을 하는 업무는 피해야 한다.

끝으로 지방간에 대해 알아보자. 지방간은 글자 그대로 간에 지방이 껴서 간이 부은 상태다. 의학적으로는 지방의 무게가 간 전체 무게의 5% 이상일 때 지방간으로 진단한다. ‘지방간=술’ 이라고 단정짓는 사람이 많지만,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도 지나치게 뚱뚱하거나 당뇨가 있으면 지방간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알콜성 지방간이라 해도 반드시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술을 거의 못 먹는 사람에게도 알콜성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다.

아마도 지방간은 직장인에게 가장 많은 병이지 싶다. 기자가 근무하는 신문사의 경우, 직장 건강검진에서 지방간이 나오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은 지방간 진단을 받고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 모두 지방간인데 설마 내게만 무슨 문제가 생기겠느냐고 생각하는 묘한 ‘공범의식’ 인것 같다.

사실 지방간은 그리 걱정할 병이 아니다. 무엇보다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증상이 있어도 그리 심하지 않다. 따라서 일단 생활하는데 큰 불편이 없다. 또 다른 간 질환과 달리 치료가 매우 손쉽다. 알콜이 문제라면 한두달 금주하면 금방 붓기가 가라앉으면서 기름이 빠진다. 비만이 원인인 경우도 운동 등으로 감량을 하면 지방간이 없어진다. 설혹 지방간이 없어지지 않고 오래 남아 있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간경화나 간암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지방간이 있다고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 필요는 분명히 없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치게 태연하다는 점이다. 지방간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병이 아니다. 그 자체로서 위험하진 않지만, 앞으로 위험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강력한 ‘스톱 사인’이다. 따라서 지방간 판정을 받으면 한번 멈춰서서 자신의 생활습관을 돌이켜 보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고쳐야 한다. 현명한 사람에겐 지방간처럼 고마운 경고도 없다.

사람들은 그러나 그렇게 현명하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방간의 스톱 사인을 무시하고 내달린다. 모두다 신호위반 하는데 나만 빨간 불에 멈춰 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신호위반의 끝은 대개 사고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알콜성 간염이나 지방성 간염이 그같은 사고에 해당한다. 알콜성 간염은 만성적인 음주나 폭음으로 간 세포가 손상돼 염증이 생기고, 염증 때문에 간 조직이 섬유화되는 병이다. 이것이 심해지면 알콜성 간경화증이 된다. 주로 비만인에게 나타나는 지방성 간염은 지방간과 염증이 함께 나타나는 병으로 역시 심해지면 간경화증, 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지방간은 매우 간편하게 해소된다. 술이 문제라면 한달 정도만 금주하면 된다. 죽어도 금주를 못하겠다면 주 2~3일 휴간일(休刊日)을 지키고, 한꺼번에 폭음하지 말고, 술을 마시되 천천히 마시고, 안주를 충분히 먹으면서 술을 마시는 등 ‘요령’을 피우기라도 해야 한다.

또 비만이 문제라면 살을 빼면 된다. 살이 찌면 간염 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 심장병 뇌졸중 등 만병의 근원이 되므로 더더욱 살을 빼야 한다. 그렇게 시키는 대로 멈춰서는 사람에게 지방간은 대수롭지 않은 병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간경화나 간암으로 이어지는 화근이 된다.

(임호준 기자·조선일보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