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4668 , 2004-06-01 15:24 |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란 뭘까.
내 생각에 남자는 크게 여자를 질투하거나 사랑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남자는 여자와 뗄 수가 없다.
태생 자체가 여자의 뱃속이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의 고향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지배욕과 피지배욕을 함께 느끼는 자연 같은거라고 생각한다.
게이란 어쩌면 여자를 너무 사랑해서 스스로 여자가 되어 버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홍상수 감독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는 어떤 정신과 의사와 대화를 나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뭘 얘기하는것 같냐고 물었더니 그는 한마디로 모든 여자랑 다 자고 싶다란 뜻이라고 대답했다.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한 여자를 사랑하기엔 짧은 사람.
그래서 좌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맘을 모든 여자를 다 소유하는걸로 복수하는듯한 또는 진솔한 사랑을 할 수 없어서 뻐킹이라도 즐기는 그런 여자에 대한 연약하고도 맹목적인 애정이 홍상수 감독에게 있는것 같다.
김기덕 감독도 그런거 같다.
그에게서도 여체의 몸을 통해 해탈하고 싶은 욕구가 느껴진곤 한다.
여자앞에서 고해성사를 하고 여자 앞에서 거만을 떨고 여자앞에서 비꼬고 여자앞에서 강간하고 여자앞에서 애원하며 여자앞에서 사랑을 고백한다.
난 그런 모습들이 스스로를 더 망가뜨려 비틀려가는 모양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 의사는 그렇게 함으로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그들만의 방식으로 여체를 얻었고 여심의 마음으로 까지 다가가고 있다.
그들은 나름대로 영화 작품을 통해 자신을 고발하고 그런 벌거 벗은 자신을 내보여 여자들의 본능을 공략한다.
지금까진 비교적 성공적여 보이는 모습으로 여심에게 다가가고 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최소한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노력을 한다.
그렇게라도 영화작품을 통해 시원한 자위행위를 하며 이루지 못한 욕심을 위로하고 그걸 보는 여심을 흔들어 결국 소유한다.
그동안 쌓아둔 내공이 언젠간 깨달음에 이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인생경험들이 그 사람들의 수단의 다가 되어 버리면 그저 주저 앉아 쉽게 사는 법에 안주하게 되지 않을까.
해탈로 가기전에 과정의 즐거움에 도취되서 주저앉는거 말이다.
왜 남자는 여자를 좋아할까?
이건 본능이고 당연한거라고만 대답하기엔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것과는 틀린 모양이기 때문이다.
뭐랄까.
굉장히 정치적이기도 하고 예술적이기도 하고 생계처럼 악착같기도 하다.
그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여자를 좋아한다.
아주 처절할 정도로 여자를 원한다.
왜 그런걸까.
여자가 그렇게 남자에게 처절할 정도로 매달리나?
남자보다 더 절실하나?
난 잘 모르겠다.
생계와 의존이 필요한 여자가 아니면 남자처럼 절실히 이성을 바라는것 같진 않다.
그런데 남자가 여자를 바라는건 못 먹어 굶어 죽을거 같은 하이에나 수준 같다.
남자가 여자를 필요로 하는게 본능적인 필연이라면 여자는 살면서 지내면서 생겨진 필요인것 같다.
살면서 서로 만들어간 관계성이 남자를 원하게 되고 남자를 의존하게 되고...그렇게 길들여지고 훈련되어 가는 것 같다.
얼마전 또 다른 남자분과 얘기를 했는데 그 사람은 정말 남자들이 싫다면서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를 아는데 남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체험 깊은 경고를 했다.
그렇다고 여자랑 결혼 할수 없는 노릇이니 결국 결혼은 하지 말란 얘기였다.
모든 남자들은 그렇게 대답한다.
남자는 어쩔 수 없다.
그게 남자다.
모든 남자는 똑같다.
어쩔 수 없다.
남자들이 하는 고백이다.
난 남자에게서 이 고백처럼 진실되게 들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남자는 어쩔 수 없는 여성 편력가고 남자는 어쩔수 없이 성욕의 노예이고 남자는 누구든지 바람을 핀다고 봐도 된다고 한 말이 남자에게 들은 가장 진솔한 고백이라니...
진짜 재수없어서 기회가 안닿아 바람을 못피는 사람이 있을 지언정 안피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 된다.
난 남자의 순결과 정조관념에 많은 물음표를 갖고 있다.
그들은 안돼는 모양이다.
그들에겐 어쩔 수 없는 부분인 모양이다.
그걸 알면서도 인정하고 받아들여 결혼하느냐.
아니면 알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느냐.
아니면 알지만 알게 되면서 생기게 되는 불편함이 싫어서 모른척하고 살거나.
자신없다.
남자를 나만아는 멍청이로 묶어두고 믿을 자신이 없다.
왜 남자는 이 여자도 좋고 저 여자도 좋고 되도록 많은 여자를 소유하고 싶어 할까.
그 얘기는 즉 정말 사랑하는 한 사람을 못만나봤단 뜻이기도 하다.
왜 남자는 그렇게 본능에 쫓기듯 자신의 정액을 받아줄 무덤을 찾지 못해 안달인걸까.
그렇게 성적인 관계를 통해 여자를 점령했다고 느끼게 되는걸까.
왜 그런 방법으로 여잘 소유하려 할까.
그리고 그런 얘기들은 왜 그들의 무용담이 되는걸까.
어떤 학자는 남자에겐 종족 보존의 본능이 강해서 어쩔수 없이 바람을 피는것이다라고 분석하더라만 난 인간이 애초에 이렇게 불안하게 지어졌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완전한 인간의 죄로 인한 타락설을 믿는다.
내가 만난 여성집착형 남자들은 대부분 반 기독교였고 기독교가 자신들의 여자를 뻇어간다고 믿는거 같다.
예전에 내게 특이한 경험을 안겨준 뮤지션이 기억난다.
그는 정말 여잘 좋아하는 여자 찬양가였다.
지나가는 모든 여잘 다 사랑할 수 있는 남자였다.
일반적으로 이쁘다라고 할 수 없는 여자에게서도 섹시함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는 대단히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는 길거리에 지나가는 모든 여자들을 다 강간하는 상상을 하거나 같이 자는 상상을 한다고 그랬다.
그의 성욕은 거의 삼손의 오른팔처럼 강했는데 그는 그에 대한 자부심과 좌절감을 함께 느껴야 했다.
그래서 모든 여자를 다 원하지만 모든 여자를 다 얻지 못하는 한계에 늘 좌절하고 슬퍼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패미니스트에게서도 들은 적이 없는 여성해방론자였다.
여자들이 남자보다 성에 억눌려 자유롭지 못한 것에 심한 유감과 동정심을 표했다.
그리고 성욕을 펼치는데 방해되는 도덕이나 종교나 교육을 다 미워했는데 그건 여자보다도 더 심한 수준이었다.
특히 기독교를 거만한 괴물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난 성욕에 대해 불편함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함부로 불쌍하다고 느끼는 그가 더 이상했다.
여자를 위하는 척하는 발언 뒤에 숨겨진 속마음은 자기가 성적으로 갖고 싶은 모든 여자를 맘대로 얻지 못함에 대한 분노같았다.
그 사람이 남자라서 그런걸까.
여자도 혹시 그런 사람이 있을까.
왜 그런걸까.
남자들이 그런걸로 절망적이리만치 간절해서 갖은 부도덕함까지 일삼는걸 보면 정말 안타깝다.
그들은 또 묻겠지.
도덕과 부도덕은 누구의 기준이냐.
도덕은 뭐고 부도덕은 뭐냐.
제법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겠지.
하지만 그 질문 뒤에 숨겨진 자유롭지 못한 욕심의 한계에 절망하는 모습이 들킨것 까지 알까.
남자들에 대한 많은 의문부호가 날 또 저지한다.
살날이 많은데 그 많은 삶을 남자에게 믿고 맡길 수 있을까.
물론 안그런 남자도 있겠지.
그 몇 안되는 남자가 바로 내 남자라고 믿기 때문에 살게 되는게 결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