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3237 , 2009-11-24 15:26 |
그걸 본 건 어느 호수가 나무언덕 위 커다란 나무 아래서가 처음이었다.
잔잔한 호수 물결과 높푸른 하늘, 저 멀리 건너편 나무숲을 바라보며
잠시 앉아서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바로 그런 곳에 그 벤취가 놓여있었다.
그 벤취가 그토록 새 것처럼 보이지만 않았어도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털썩 걸터앉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마침 이런 곳에 이런 것이 있었네, 이렇게 내심 반가워 하면서.
그 호수는 전에도 가본 적이 있어서, 호수가 나무숲속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던
오래된 나무 탁자와 나무 의자들은 별로 새로울 게 없었다.
호수공원을 관리하는 기관 같은 곳에서 의자들을 새로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면
일률적으로 모든 의자들을 교체했지 유독 이 의자 하나를 새로 갖다 놓았을 것 같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이제 방금 가져다 놓기라도 한듯이,
광택이 도는 녹색 페인트 색깔이 선명한 그 벤취는 눈부시게 말끔하고 산뜻한 모습이었다.
앉는 이가 혹시 내가 처음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
황송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인사차 벤취 주위를 돌며 자세히 눈여겨 보게 된 것이다.
뒤편을 돌아 정면을 마주하자 등받이 위편 중간쯤에 부착되어있는 작은 금속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 In honor of Anne Crawford
who knew how to love and to share and to appreciate life."
그 후에도 공원이나 YMCA 축구장 주위를 빙두르는 트레일 주변 등 벤취가 요긴하게 역할을 할만한
공공장소에서, 고인을 기리며 누군가가 기증하여 설치해 놓은 벤취들을 쉽사리 볼 수 있었다.
한동안 그곳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았다.
저아래 호수가에서 물수제비를 뜨고 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탄성소리가 들려왔다.
멀리 보트 위에서 한가로이 낚시를 하고 있는 이들,
건너편 나무숲과 호수가를 따라 줄지어 서있던 예쁜 집들도 보였는데
밖에 나와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왜 매번 올때마다 볼 수 없는지 의아해하기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이렇게 그 사람을 기억해 주는 것도 참 멋진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곳은 아마도 그녀가 살아 생전에 오기를 즐겨했던 곳인지도 모른다.
오고 싶었지만 올 수 없었던 곳인지도.
그녀는 어쩌면 이곳에 와서 호수가 주변을 산책하고
나무 아래 잔디밭에 앉아 쉬면서 호수를 바라보곤 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이나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뒹굴고 웃으며 즐거운 한나절을 보내곤 했는지도.
어쩌면 조용히 앉아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곤 했는지도.
슬픈 일이 있을때 한적한 이곳에 와서 홀로 맘껏 울었는지도.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올 것이다.
조용한 호수가 나무언덕 아름드리 나무 아래 놓인 예쁜 벤취에 앉아
그들도 나처럼 얼굴도 모르는 그녀을 잠시 떠올려 보리라.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 결을, 따사로운 햇살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손으로 움켜쥐어 보듯
자신의 삶의 한 순간을 그렇게 한번 움켜잡아 확인해보고 싶어지리라.
그곳을 떠나면서 벤취를 손으로 가만히 쓸어주었다.
"잘 쉬었다 갑니다" 라는 작별인사 대신.
프러시안블루
09.11.25
고인은 호수가 그 자리를 매우 좋아했을듯 하네요 |
티아레
09.11.25
좋아하는 장소가 둘 다 서울에 있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