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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도권 안에서 직업으로 학문을 한다는 것   공개
조회: 3273 , 2010-09-14 14:01
마비된 경고 장치/ 우석훈


한 때 미국에서 한국인 경제학 박사를 워낙 많이 배출해서, 미국에서 한국 오는 비행기마다 새로 박사 받은 사람들이 한 명씩은 타고 있다는 농담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MBA(경영학 석사) 열풍이 불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제학 박사가 수년째 공급부족이라고 하는 것 같다. 수많은 직업군이 구조조정과 함께 인력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경제학자들은 공급부족의 덕을 좀 보는 것 같다. 어쨌든 밥은 먹고 사는 것 같다.

1990년대에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금융화가 동시에 벌어졌고, 그러다보니 한국에도 증권사에도 경제연구소를 하나씩 설치하는 게 유행이 되었다. 정부출연연구소는 에너지경제연구원, 농촌경제연구원처럼 꼭 경제연구소일 필요가 없는 분야에서도 산업화 시절의 흔적이 남아서 각종 정책연구소들이 경제학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학, 국책연구소 그리고 기업연구소와 같은 경제학자들이 움직일 공간이 많아졌고, 대기업 기획실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것이 이제는 드문 일이 아니다.

나는 1996년에 현대그룹의 과장으로 입사했고, 1999년에 에너지관리공단에 부장으로 자리를 한 번 옮겼다. 내가 일하던 시절에 연구파트가 아닌 곳에 경제학자가 일하는 게 드문 일이라서 꽤 주목을 받았었는데, 지금은 나와 같은 경력을 가지게 된 경제학자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바꾸어 말하면, 연구직이든 현장이든, 국민경제를 분석하고 자기 분야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고민하는 그런 경제학자들이 더 많아졌다는 의미이다. 경제학과가 상대에 설치된 곳은 학부제의 여파로 강단의 자리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그러다보니 강단에 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경제학자들이 정부만이 아니라 민간업체 그리고 금융업체에 폭넓게 포진을 하고 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자유기업원이나 전경련에서부터 가장 왼쪽에 있다고 할 시민단체나 민중단체의 싱크탱크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자들은 꼭 경제를 다루는 분야가 아니더라도 폭넓게 진출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각 지자체에서 설치한 지역개발연구원에서 지역개발공사까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한국에 경제학자는 넘치고 넘친다.

DJ 정부 중반에서 후반기까지, 한국에는 공급론자라고 부르는 일련의 경제학자들이 학자로서의 소신을 가지고 부동산 공급 그것도 수요가 있는 수도권에서 더 많은 아파트를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부동산 공급 그리고 용적률 상승이라고 하는 두 가지가 아파트 공급론자들의 주요 주장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경기도에 신도시가 러쉬처럼 생겨났고, 재개발 등 새로 생겨나는 아파트는 고층 건립이 가능한 상업용지에 주상복합이라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의 기본 논리는 간단했다. 부동산이 비싼 것은 수요에 비해서 공급이 부족한 것이므로, 더 많은 공급을 늘리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현실은 그들이 말한대로 진행되었다. IMF 이후 건설사가 3배로 늘어났지만, 우리는 건설사 구조조정과 같은 구조적 접근 보다는 공급론쪽의 정책을 주로 시행하였다.













▲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타워팰리스 전경. 부동산 신화의 한 상징이다. ⓒ뉴시스

몇 년 전의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백분토론을 비롯한 공중파의 TV 토론과 각종 경제신문 등의 칼럼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이 경제 지식을 접하는 창구에서 공급론자들은 절대 다수였다. 공급론자들은 경제학자들만은 아니었다. 각 대학의 부동산학과, 도시공학과, 심지어는 환경대학원 교수들까지도 공급론으로 자신들의 성을 세우고 있었다.

올초부터 부동산에 대한 논의가 계속 있었는데, 올해의 사회적 논의의 특징은 수 년 전에 부동산 공급을 주장하던 학자들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공개되지 않은 경제학자들끼리의 내부 논의이기는 하지만, 연초부터 부동산에 대한 여러가지 걱정들이 대기업, 증권사 혹은 정부기관에 소속된 사람들도 올해에서 내년에 걸쳐 격동적인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것 같다. 누구도 언제, 그리고 어디까지 이 현상이 계속될 것인지는 장담하기가 어렵다. 모델링을 아무리 한다고 해도 이런 단기간의 마이크로 현상에 대해서 모델링을 할 수 있는 단기 모델 기법은 아직은 경제학에서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 기간과 수준, 여기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합의된 내용이 아직 나올 수준은 아니지만, 방향에 대해서만큼은 대체적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전문가들 사이의 내부 논의가 국민들에게 전달될 경로가 없다. 잠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생각해보자.

증권사나 대기업에 소속된 학자들은 "사견임"을 전제로도 이런 얘기들을 하기가 어렵다. 삼성경제연구소나 현대경제사회연구원 혹은 각종 증권사에서 나오는 보고서들은 연구자가 처해진 상황을 참조해서 보는 수밖에 없다. 기업에서 월급 받고 일하는 학자들이 사주나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얘기를 하기가 아주 어렵다.

정부 연구소의 경우도 상황은 많이 다르지 않다. 물론 가끔은 개발사업을 놓고 정부연구소 간에 견해가 충돌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그건 연구원장 등 연구소 운영을 맡은 사람들이 지시하거나 양해해 준 경우에만 가능하다. 연전에 대운하와 관련하여 자신의 연구에 대해서 연구원이 대중들에게 공개한 적이 있었다.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으면,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박사들 역시 정부의 정책기조에 반하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옷 벗고 나오겠다고 결심하지 않으면 어렵다. 나 역시도 정부에 소속된 전문위원 자격으로 총리실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시절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얘기를 다 하지는 못했다. 결국 사직서를 쓰고 나온 다음에 비로소 나의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정부란 원래 그런 곳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 심하다.

그렇다면 그런 기업이나 정부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된 대학 교수들의 경우는 어떨까? 여기도 마찬가지이고, 정부 방침에 반하는 얘기를 하기가 더 어려우면 어렵지, 자유롭지는 않다. 대학원생들이나 박사과정 학생의 월급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연구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 등에서 시행하는 연구용역에 참가할 수밖에 없다. 크면 몇 억씩 되고, 작으면 수 천만 원짜리 수의 계약을 하는데, 이런 형태의 연구에는 보수주의 쪽 교수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좌파 교수들도 참여한다. 일종의 구조인 셈인데, 신문에 정부 방침과 반하는 칼럼을 쓴 교수들이 포함된 연구용역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로 석연치 않은 이유로 불량처리 되기도 하고, 3년짜리 등 다년간 연구들의 재계약이 거부되었다. 이론은 먼 곳에 있지만, 연구비는 현실의 일이다.

연구용역비의 문제만도 아니다. 정부로부터 '우리 편'이 아니라고 간주되면, 각종 위원회나 자문 등 교수들이 달고 싶어 하는 '사회활동'의 길이 막히게 된다. 그깟 감투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싶지만, 어쨌든 이 사람들은 그것을 적지 않은 명예라고 생각한다. 그뿐인가? 총장에서 재단까지, 교수들 위의 시어머니의 참견이 보통이 아니다. 나는 그런 게 귀찮아서 그냥 시간강사로 버티는데, 시간강사한테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일이 벌어진다. 물론 무시하고 그냥 발언을 해도 되지만, 정교수가 되기 전까지는 언제든지 재계약을 안 해주는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정교수가 될 때까지는, 눈치 보면서 입 다무는 수밖에 없다. 정교수가 되면 좀 자유로워질까? 학교에서 교수들을 밀어내는 방식은 갈수록 다양해진다. 연구과제를 통해서, 총장을 통해서 그리고 재단을 통해서 한국의 교수들은 지금 입이 완벽하게 막혀있는 상황이다.

물론 원래도 그런 경향이 있었는데, 연구용역을 통치의 수단으로 정권이 직접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블로그나 트위터를 통해서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일반 국민들보다 학자들이 더 표현의 자유가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교수 노조 같은 곳에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시하고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킬 수는 없는가? 그럴 수는 있겠지만, 지난 2년 동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학자라고 하는 사람들, 분야를 막론하고 지금은 모두 입이 봉인된 상황이다. 경제학의 경우는 인문학이나 다른 사회과학에 비해서 정부 연구를 받기가 훨씬 수월한 분야이다. 금액도 크고, 안정적으로 연구용역이 나온다. 물론 공대에 비하면 연구비 규모가 작기는 않지만, 실험장비를 구입하거나 연구실을 대형으로 운영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 표현대로라면 "실속있다"고 할 수 있다. 연구용역과 정권 유지가 직결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경제학자들 중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 대중들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중 유일한 사람이 시골의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박경철 원장일 것이다. 그 수많은 경제학 박사들을 두고 왜 박경철 원장이 나설 수밖에 없는가? 그가 기업으로부터, 정부로부터, 그리고 대학으로부터 자유로운 거의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민단체나 노조에서 운용하는 연구소들의 경우는 어떤가? 민간 싱크탱크라고 불리는 이런 곳들이 지난 수 년 동안 몇 군데 생기기는 했다. 현실을 말하자면, 이런 곳은 저임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고, 워낙 규모가 적어서 자료를 축적할 여력도 없고, 또 기업집단과 정부집단을 상대로 집단 대 집단의 논쟁을 벌이기가 쉽지 않다. 민간 경제연구소 중에서 그런대로 연구소 모습 정도는 갖춘 곳이라고 할 거의 유일한 곳이 김광수 경제연구소 정도이다. 그러니 김광수 소장과 선대인 부소장이 논쟁 과정에서 앞으로 튀어나오게 되는 셈이다. 불행히도 민간 씽크탱크들 중 많은 곳은 아직 논쟁에 뛰어들어 자신의 의견을 낼 준비가 덜 되어있다.

상황이 이러니, 미네르바 사건이 구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배웠던 경제학은, 그것이 케인즈의 것이든 아니면 밀턴 프리드만류이든, 아니면 더 딱딱한 정치경제학이든, 수입한 이론들이다. 그 이론들이 과연 우리 현실에 맞는지, 그리고 얼마나 한국 경제라는 특수한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는지, 우리는 더 많은 논쟁이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만, 학문 특히 경제학이 통치 장치에 입이 봉쇄된 지금, 미네르바 사건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겨난 문제가 바로 경고 시스템의 마비이다. 경제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예방적 원칙'이 작동되게 해준다. 이전 정부에도 문제가 좀 있었지만, 현 정부에서는 학자들의 입이 너무 철저하게 봉쇄되어 있는 상황이다 보니, 사회적으로는 경고 장치가 완전히 마비된 셈이다.

2008년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생길 때, 루비니 등 미국 경제학자들 중에서는 경고를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이후 왜 영국의 경제학자들은 위기에 대한 경고를 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이 진행된 적이 있었다. 그 질문은 우리의 경우에도 유효하다. 한국 경제학자들은, 지금 지나친 비지니스의 함정에 빠져있거나, 아니면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빠져있거나, 그런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부드러울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가 기업을 통해서든, 아니면 정부를 통해서든, 경제학자들이 월급을 받고 밥을 먹고 사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비지니스를 위해서만이 아니지 않은가? 국민들에게 최소한 위기에 대한 경고를 해주고, 국민경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는 것, 바로 국민들을 위한 비지니스가 경제학자들이 해야하는 역할 아닌가?

자신이 어떤 학파나 이론에 속해있든, 경제학자들은 모두 경제원론을 처음 배우면서 경제학이라는 말이 경세제민으로부터 왔다는 말에 감격을 했던 적이 한 번씩 있지 않은가?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한다는 그 경세제민의 정신, 먹고 사느라고 그걸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아닌가?

현 상황은, 국민들과 부동산업자들만 있고, 그 사이에서 설명과 해석을 맡아야 하는 학자들이 쏙 빠져있는 상황이다. 공급론자라도 좋다. 왜 현 상황에서 부동산 공급이 더 필요한지, 그걸 설명해야 하는 순간 아닌가? 국민과 업자들이 논쟁하고, 경제학자들은 쏙 빠진 지금의 기이한 침묵! 이래서 어떻게 국민들에게 국민경제 내에 경제학의 역할이 있다고 얘기할 것인가?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혁명과 학문, 섹스의 공통점 / 박노자


제가 체 게바라 관련의 일화 중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스토리는 ‘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가 혁명이 승리한 뒤에 관료직을 하면서도 밤에 아바나의 부둣가에서 짐꾼으로 ‘아르바이트’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권을 잡은 뒤에는 얼마든지 자신의 월급을 높이 책정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정부 일이 아닌 육체 노동으로 ‘용돈’을 벌었다는 ‘혁명 지도자’…. 누가 그에게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혁명은 사랑과 같다, 사랑을 돈 받기 위해 하는 것이냐?”라고 반문하곤 했답니다. 혁명을 좋아해서 한 것이지 고관이 되어서 고대광실에서 푸짐한 녹봉을 받으면서 안락하게 살 생각으로 한 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화가 사실이든 아니든간에 그 교훈은 의미심장합니다. 정치활동이 돈과 맞바꿀 수 있는 하나의 제도권 ‘직업’이 되는 순간, 그 활동을 통해 근본적 변혁을 이룰 수 없는 것이고, 근본적 변혁을 이루겠다는 큰 정치인은 끝내 자기 활동의 제도적 ‘정기화’를 예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관이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공산당에 입당하는 이들이 생기는 순간, 그 공산당을 그냥 해체시켜버려야 합니다. 그런 공산당은, 어느 정도 안정화된 중심부 국가에서는 사민주의 이상의 활동을 하지 못할 것이고 주변부에서는 스탈린 주의로 전락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변혁적인 정치도 그렇지만, 섹스라는, 몸둥이를 가진 이 중생의 최고의 쾌락도 ‘제도화’되면 점차 퇴색합니다. 더군다나 제도화에 의한 강제까지 생긴다면 ‘맛이 있는 섹스’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어떤 제대로 된 섹스도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바로 그러기에 ‘부부 사이의 강간’이라는 개념은, 요즘 법적으로까지도 성립됩니다. 비록 서로에게 섹스를 제공할 ‘도덕적 의무’가 있는 부부라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섹스를 강제로 시킨다면 일반 강간과 다를 게 없는 흉악범죄일 뿐이죠. 물리력까지 동원해서 시킨다는 것은 법정이 다루어야 할 범죄지만, 사실 남편/부인의 ‘도덕적 권한’을 이용해서 상대방에게 섹스를 요구한다는 것부터 부질없는 짓이라고 봐야 합니다. 둘이 자율적으로 의기투합하여 하는 것이지 한 쪽이 다른 쪽에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논리의 연장 선상에서는, 저는 (적어도 고도로 발전된 복지국가가 아닌 경우에는) 성산업의 존재의 불가피성을 인식하지만, ‘돈을 주고 사는 섹스’에 개인적으로는 매우 부정적입니다. 돈을 무기로 하는 ‘경제력에 의한 강간’, 즉 양쪽의 자율성이 충분히 보장돼 있지 않은 부자유한 성행위이기에 그렇습니다. 차라리 그러한 측면에서는 양쪽이 자율적으로, 좋아서 하는 혼외정사는 훨씬 더 바람직하고 도덕적입니다. 물론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동등하게 혼외정사를 즐길 권리가 보장돼 있고, 혼외정사를 즐기면서도 가족 테두리 안에서 아동 양육 등의 문제를 아동에게 피해를 가하지 않고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즐기면 된다는 이야기죠.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면 그게 벌써 ‘도덕’과 사이가 먼 일일 것입니다.

혁명의 순수성도 섹스의 즐거움도 돈이나 강요, 강제의 냄새만 나면 당장에 도망갑니다. 돈을 미끼로 하거나 힘으로 시키면 진정한 혁명도 맛이있는 섹스도 얻어낼 수 없는 것이죠. 그러면 학문은 과연 이와 다른가요? 창조성이 있는 진정한 학문 연구는 이와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제가 지금 예컨대 1930년대에 하얼빈에 자꾸 왕래했던 이효석이나 홍종인, 전무길 등 경성이나 평양의 소설가, 신문 기자들이 하얼빈의 백계 러시아인들을 어떤 시선으로 봤는지 이국적 건물 양식이나 퇴락적 카바레들의 슬프면서도 계속 웃어야 하는 러시아 무희들의 얼굴 표정에서 뭘 읽어냈는지 궁금해서 관련 연구들을 하는 것이지 누가 저보고 “9월말일까지 연구 완료하여 논문 제출하라”고 애당초부터 명령을 내려 제 연구 진행의 시간적 범위 등을 타율적으로 규정했다면 아마도 처음부터 그 연구가 싫어졌을 것입니다. 연구도 사랑의 일종입니다. 낡은 신문, 잡지들의 냄새부터 과거 사람들의 위대한 발견과 위대한 편견까지 애착을 갖고 대하지 않는다면, 연구할 수는 없는 것이죠. 물론 김성수와 <동아일보>를 연구하는 학자는 고창 김씨의 재벌을 사랑할 의무는 없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 대한 ‘흥미’가 없으면 안되며, 고창 김씨들의 착취에 맞서 파업을 벌였던 경방의 여공들을 얼마든지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죠. 하여간, 연구라는 것은 마음이 ‘댕겨져야’ 하는 것이고, 누군가가 타율적으로 규정하거나 강제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구에서는 결과 그 자체보다 자료 하나 하나 만지며 그 결과를 도출해내는 ‘과정’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는 혁명이나 섹스와 상당히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지금 과연 국내의 소장파 인문학자 대부분이 ‘맛이 있는 섹스’와 비교될 수 있는 ‘맛이 있는 연구’를 천천히, 만족스럽게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가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노무현 정권이 발족시키고 이번 정권이 계속 추진하는 ‘인문 한국 (HK)’과 같은 거대 프로젝트의 테두리 안에서는 소장파 학자들이 연구자로서의 ‘시한부 인생’을 살고 타율적으로 규정된 형태의 결과물들을 부단히 생산해내야 되는 것입니다. 결과물로서는 주로 ‘등재지 논문’만이 통하는 것이고, 이 등재지 논문의 일정한 편수를 연례 내지 않는다면 다시 고등실업자나 ‘보따리 장수 (시간 강사)’로 전락돼야 되는 것입니다. 본인이 자료를 조금 더 오래 보고 아주 좋은 글을 천천히 쓰고 싶든, 자료를 크게 수집해서 아예 논문이 아닌 단행본 하나쯤을 2~3년 후에 내고 싶든, 일단 장기적 연구 계획 일환으로 먼저 2~3년 들여서 자료 정리부터 하고자 하든, 관리자들에게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일정한 양의 논문을, 일정한 기간 내에 써서 일정한 학술지에 발표하지 않으면, 무조건 나가라, 이것입니다. 연구 대상에 대한 흥미라든지, 연구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방법론적, 이론적 고민이라든지, 장기적 연구라든지 - 이것은 관리자들에게 하등의 관심사도 안됩니다. 정규직이 되고 싶으면 당신의 학문적 관심을 무조건 우리의 규정에 맞추라.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우리 시스템에서 탈락하라, 이것입니다. 자존심이 있는 연구자라면, 그러한 시스템의 테두리 안으로 아예 발을 들이지도 않을 것일 걸요. 문제는, 국내의 대단히 열악한 조건 하에서는 소장파 연구자들에게 자존심을 살리겠다는 생각을 할 만한 여유도 주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랑’(개인적 의향, 취향, 흥미 등등)과 무관하게 그저 ‘시키는 대로’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 과연 위대한 학문이 탄생하나요?

저는, 이 ‘인문 한국학’ 시스템을 어느 정도 관찰한 뒤에 적어도 외국에서 학위를 받으신 국내 동료 제위께 다음과 같이 읍소하고 싶습니다. 최소한의 기회라도 있으시면 제발 귀국하여 이 지옥적 시스템의 포로가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같은 비정규직이라 하더라도 북미나 일본, 유럽에서 어쩌면 훨씬 더 많은 자율성을 누리면서, 훨씬 더 진정한 학술적 분위기에서 관련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성이란, 한 번 말살 당하면 다시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애국자라 하더라도 창조성을 씨말리는 이 학문의 도살장으로 제 발로 걸어갈 의무까지 없습니다. 가급적 귀국 거부를 해서, 한국 당로자들로 하여금 왜 이와 같은 두뇌 유출이 발생되는지를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하게끔 해봅시다. 그게 진정한 애국일 걸요. 우리 저항이 없으면 저들은 끝내 정신 차리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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