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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남자애   un.
조회: 3170 , 2011-07-20 16:25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남자애가 있다.
파트가 다른데 교육 받으러 왔을 때 잠깐 같이 일했다.
유일한 동갑내기여서 번호를 교환했다.
좀 얘기를 하다보니까 내가 성가셔하는 타입의 남자애였다.
나보다 말 많은.
자꾸만 말거는.
그런데 별로 통하는 건 없는.

그래서 그냥 거리를 뒀다.
그런데도 자꾸 말을 걸어온다.
그래서 그냥 대꾸는 해줬다.

그런데 오늘은 놀러가잔다.
영화를 보러 가잔다.

단박에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너랑 나랑 몇 번 봤다고 영화니.

얼굴 본 게 두 번 밖에 안된다.
그 외엔 다 카톡이다.
그것도 뭐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도 아니고
카톡으로 그냥 그저 그런 얘기 좀 나눈 것 뿐이다.

물론 뭐 영화 한 번 보러가잔 것 가지고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내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반응하도록 두고 그 반응을 관찰하는 것은 중요하기에
억압 없이 써내려간다.

-

일단 짜증난다.
내가 싫어하는 타입의, 뭐랄까 조금 우유부단하고 너무나 착해빠진 남자애다.
게다가 점점, 서서히, 조금씩의 원칙을 깨고 갑자기 성큼 다가오는 녀석.
내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거리를 두려고 했는데, 영화를 보러가자고 하질 않나,
돈을 자기가 다 낸다고 하질 않나,
내가 카톡을 씹으니 대뜸 전화를 하질 않나.
그래서 전화도 씹으니 카톡으로 뭐라고 혼잣말을 하질 않나.
다 싫다.
그냥 싫다.

지랑 나랑 언제 봤다고 영화래?
밥이나 먹자는 것도 아니고.
뭘까 이건.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걸까?
두 번밖에 안 봐놓고?
원래 그런 애인걸까?
아니면 남자애랑 여자애가 영화를 보러가는 것 자체에 별다른 의미가 없는걸까?

아무튼 짜증나고 찜찜하고 싫다.

-

자아
뭐가 그렇게 짜증이 나니.

남자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싫다.
왜?
아버지가 나에게 딸 이상의 관심을 보였던 징그러운 과거가 있기 때문에.
나는 남자가 나에게 그런 감정을 품는 게 징그럽다.

나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완벽한 이성을 꿈꾼다.
단점 없는.
로맨틱한.
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그런 연애.

왜?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처음 본 연인 관계,
나의 부모가,
연인의 워스트 케이스였으니까.

그래서 조금의 단점도 허용하지 못한다.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받을 상처에 지레 반응한다.
나를 절대 상처줄 것 같지 않은 남자,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오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치는,
절대 자신의 여자를 해치지 않는 기사도 정신의 소유자.

-

나는 항상 불만이 많았다.
왜 나에게 다가오는 남자애들은 다 찌질한 걸까.
조금 멋있고 조금 괜찮은 남자애들은 없고
다 찌질하고 이상한 남자애들.

-

문제는 내 마음에 있다.
편견.

이건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 무의식의 영역과 관계가 깊은 듯 싶다.
좀 전의 다이어리에도 썼듯이,
내 가족관계, 영유아기, 성장기와 관련된 문제들은
전문가에게 맡기려고 한다.

그래서 한 반 년 정도 휴학을 할까 생각 중이다.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 위해서.
휴학하고 심리 치료 받고, 여행도 좀 다니고.
그러면서 세상으로 나갈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을 가져본달까.

어쨌든 나는 좀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