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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캔디병   deux.
조회: 2677 , 2012-03-06 20:56


여러모로 생각해봤는데
나는 아무래도 캔디병인 것 같다.
울 줄도, 기댈 줄도, 응석부릴 줄도 모르는 사탕 기집애.

나보다 덩치나 마음이 큰 사람만 보면
달려가 안기고 싶은데
민폐일 것 같아서
나를 싫어할 것 같아서
약해보이기 싫어서
그 마음 꾹꾹 누르고
행복한 척,
반듯하게 자란 척
누구보다 크게 웃고
누구보다 밝게 말한다.

스트레스와 불행은 내 안에 고스란히 쌓여가고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먹으면서 
일시적으로나마 쾌락을 얻는다.

.
.


기대고 싶다.
울고 싶다.
응석부리고 싶다.
민폐끼치고 싶다.

내가 겪은 불행을
인정받고 싶고
그것을 잘 견뎌낸 것을
칭찬받고 싶다.
토닥토닥 받고 싶고
쓰다듬받고 싶다.
그리고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모든 사람들과 모든 일들에 대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으로
저주를 듣고 싶다.
그리고 나에 대한 위로의 표현을 듣고 싶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제발 
아무 일도 아닌 듯이 살아가는 게
나에게는 가장 큰 상처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런 일을 겪게 된 것은
내 운명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책임도 아니고
가해자 한 사람의 책임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책임 돌릴 마음 같은 것은 없으니까
그냥 좀 알아주기만 해줘요.
위로만이라도 좀 해줘요.



티아레   12.03.07

지금 쓰고자 하는 글은 단순한 위로나 칭찬의 글은 아니에요.
이 글을 쓰는 단 한 가지 이유는 하나양이 하루 속히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진정한 도움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에요.

“울 줄도, 기댈 줄도, 응석부릴 줄도 모르는 사탕 기집애 - 캔디병”

마음 속으로는 항상 덩치가 크고 마음이 넓어 보이는 사람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위로받고 싶은 갈망이 있지만, 민폐일 것 같아서,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약해보이기 싫어서 강하고 밝은 사람인 척 한다는 거지요.

그건 병이 아니라 하나양이 건강한 자아를 가졌다는 증거고,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에 그 판단은 옳아요.

하나양은 누군가가 다만 하나양의 상처와 고통을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따뜻한 위로의 표현을 건네줬으면 좋겠다고 했나요.

하나양과 계속해서 볼 일이 없거나, 서로 더 깊이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가볍게 지나칠 정도의 사이라면 그런 일회적이고 피상적인 위로를 건네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거예요.
울다 같은 사이버상의 익명의 공간들이 그 좋은 예가 되겠지요.
그런 위로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다는 말이 아니고, 서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이에선 그 정도 위로의 말을 건네고 지나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는 거죠.

하지만 하나양과 현실 속에서 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하나양은, 상대가 무엇을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단지 토닥여주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주길 바랄 뿐이다,라고 답하겠지요.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폭탄을 터뜨렸을 때”라는 표현이 더 맞을 거예요), 상대는 충격에 휩싸이고 당황스럽겠지만 일단 놀라움을 수습하고나면, 누구라도 반사적으로 위로의 말을 몇마디 건넬 수는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닌 관계라면, 그 다음 전개될 상황은 어떨까요.
바로 여기가 하나양과 상대방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지점이에요.

지인이나 친구들이 하나양의 고민을 듣고난 후, 어떤 반응이나 태도를 보일까요.

먼저 하나양이 이미 익숙히 알고 있을 첫 번째 유형, “외면/회피형”이 있겠네요.
하나양의 엄마나 이모, 이모부, 할머니 등 하나양의 혈육과 친척들이 여기에 속하죠.
하나양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 모르는 척 하거나, 더 이상 알고 싶어하지 않거나, 알게 되었더라도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거나.

하나양과 비슷한 또래의 지인이나 친구들 입장에서 얘기해볼께요.
일차적인 보호와 문제 해결의 책임이 있는 혈육들이 그 일을 덮어버리고 없었던 일 취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 삼자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요.

우선 그들 대부분은 그 경험에 대해 무지하고, 그 고통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죠.
살면서 자신이 경험한 다른 종류의 고통과 슬픔을 통해 막연하게 짐작을 하는 거죠.
자신이 가늠할 수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누군가의 심각하고 깊은 상처나 고통을 대할 때, 그들은 어떤 느낌과 생각이 들까요.

털어놓고 나면 당장 내 마음은 조금 홀가분해질지 모르지만, 상대는 도움이나 답을 줄 수 없어서 안타깝고 마음이 무거울 거예요. 의도치 않게, 상대에게 부담을 지우는 결과를 빚게 되는 거죠. 누구라도 막상 그런 고민을 쉽고 가볍게 들어넘기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더 안좋은 경우라면, 충격에 빠지거나 막연한 공포에 눌릴 거예요.
상대는 하나양의 경험에 대해 무지한만큼, 그걸 겪어낸 하나양 마저도 더 이상 알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고, 어색한 사이가 되어 멀어질 수도 있을 거구요.

상대에게 답을 기대할 수 없고, 오히려 상대마저 압도해 버릴 심각한 고민이나 문제라면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티아레   12.03.07

(이어서)
“고통 분담형”에 대해서도 생각해볼까요.
김보은 김진관 사건(1992)에 대해서는 하나양도 알고 있겠지요. 이 사건에서는 남자친구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한 외국영화에서는 친한 여자친구가 살해에 가담하죠. 김보은 사건은 가해자가 계부였고, 영화에서는 가해자가 생부였어요. 예로 든 사건은 매우 극단적이고 드문 경우겠지만 문제의 본질을 잘 드러내고 있기에 언급했어요.

하나양의 고통을 분담하고자 하는 가까운 관계의 누군가가 나타날 수 있겠지요.
그 사람이 누가됐건, 그 과정에서 그는 하나양의 고통을 정신적으로 고스란히 겪어내야만 할 거예요.
하나양을 아끼고 사랑하는 정도와 그가 감당해야할 고통의 깊이는 아마도 비례하겠지요.
그 얘긴 하나양의 분노도 상대에게 그대로 전가될 수 있을 거라는 뜻이구요.

친구라면 이런 경우 고민 상담을 해도 좀 더 이성적으로 반응하고 대처하리라 생각하지만, 그 친구에게 감당하기 쉽지 않은 짐을 지우는 것임에는 틀림없기에, 상대를 신중하게 골라야 할 뿐더러 그런 대상은 아주 친한 한두 사람으로 한정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남자친구나 애인의 경우는 좀 다를 것 같아요.
나라면, 내 사랑하는 사람이 그 끔찍한 고통을 겪도록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오래도록 풀리지 않을 응어리와 분노를 가슴속에 품게 만들고 싶지도 않을 거구요.
다른 건 다 함께 나눠도, 그런 고통은 나누지 않는 게 상대에 대한 배려이자 서로를 위해 더 지혜로운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상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싶은 이유는 문제의 해결이나 고통의 감소를 기대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의도와는 달리, 고통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고통이 두 사람 몫으로 배가되거나 생각지 못한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면 어떨까요.
외과의가 자신의 가족이 환자일 경우 수술집도를 하지 않는 것도, 심리치료사나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가족을 치료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거예요.

가까운 관계 일수록, 감정적으로 깊이 얽혀있는 관계 일수록,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기가 어렵고, 냉철함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건 더더욱 힘들죠.

내가 좋아하는 미국드라마 중에 <몽크>가 있어요.
형사인 몽크는 심한 공황장애와 강박증을 앓고 있는데 그에겐 십년 이상을 함께 해온 심리치료사가 있어요. 일주일에 두세 번 꾸준히 상담을 받는 설정이기 때문에 상담 장면이 꽤 자주 나오는 편이죠.

그와 그의 심리치료사의 관계가 어찌나 인상적이었던지 혹은 부러웠던지, 그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 속으로 소망을 하나 품었더랬지요. 그 당시 제가 좀 힘들었거든요.
돈을 벌어야겠는데, 돈이 필요한 이유야 여럿이겠지만, 그중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주치의를 두듯, 나도 내 심리치료사를 두고 싶다는 거였어요.

아마 이런 상상을 했던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번 그의 사무실에 찾아가 그와 단둘이 편안한 소파에 마주 앉아요.
그리고 한시간 동안 나의 얘기와 고민에 오롯이 관심을 집중해주고 전문적인 상담과 조언을 아끼지 않을 나의 치료사를 얻는 거예죠. 매번 비슷한 얘기와 고민거리를 늘어놓아도, 치료에 진전이 없거나 몹시 더뎌도, 혹은 조금 나아진 듯 했다가 다시 제자리 걸음을 반복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는 늘 무조건 내 편이고, 지치거나 재촉하는 법이 없이 항상 느긋하게 기다려주고 다독이며 나를 이끌어줄테니까.

내가 아는 대학교수 한분도 지금껏 몇 년째 상담을 받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번 자신의 상담자를 만나는 일이 삶의 큰 낙이자 활력소라고 하더군요.

전문적인 상담자가 우리들 곁에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에요.
그들은 나의 가족도 아니고,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거친 사람들이기에 내 문제 때문에 정신적, 감정적으로 흔들리거나 힘들어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나의 문제를 짚어내고 분석하며 가장 좋은 처방을 내리고 도움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엄마나 친척이 나서서 하나양이 상담치료를 받도록 조처하진 못했지만, 이제 자신 스스로를 위해 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두려움을 떨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요.

李하나   12.03.07

그동안의 제 행동을 반성할 수 있는 댓글이었어요. 도대체 어느 선까지 털어놓아야 하는 지 알 수 없어서 고민도 많이 했고, 실수도 한 것 같아요.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이유 중에, 나의 경험을 어디까지 털어놓을 지 모르겠다는 것도 있었는데,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네, 상담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없네요. 아무래도 전화를 해야되는 모양인데, 왜 이렇게 전화하기가 어려운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계속 노력할게요. 늘 좋은 말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