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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엄마   deux.
조회: 2322 , 2012-10-02 01:09


추석 때
아빠와 동생과 함께 
시골에 내려갔다 왔다.

반 년만에 만나는 아빠였다.
내 마음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어째서 이다지도 고요할까
나조차도 참 신기했다.

그냥
오랜만에 만난 그 약간의 어색함만을 갖고
우리 셋은 태연한 분위기로
시골에 내려갔다.

.
.


그리고 시골에서 올라온 오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동생과 나.
이렇게 넷이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노래방에 갔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아주 다정히도 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왜 이래'라고 말하며
손사레를 치면서도
싫지 않은 듯한 눈치였다.



.
.




그 상황들을 지켜보며
내가 왜 이렇게 무능한 지
왜 정당하게 분노하지 못하고
요구하지 못하고 화내지 못하는 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망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정당하게 화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장 눈 앞에서
나를 성폭행하고 자신을 배신한 아버지의 손길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내가 무엇을 배울 수가 있겠는가.



어떠한 종류의
무력감과
배신감마저 느꼈다, 나는.


.
.



도대체 나는 무얼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나도 한 순간
아 그냥 이렇게 잊고 
잘 지내면 안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나에게만 나쁜 사람이었다.
나만 그렇게 지독한 일을 당했을 뿐
엄마도 동생도
아버지를 어느 정도는 좋아했다.

내 앞에서 아버지와 포옹하고
아버지의 어깨 동무에 좋아하는 어머니와 동생을 보면서
나는 배신감과 함께
내게 이들의 남편과 아버지를 뺴앗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 먼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
.



왜 이렇게 어려운 문제가
내게 주어졌는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조금만 더 쉽게 
덜 괴롭게 문제를 내주지.


.
.



아무튼 이런 생각들을 반복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가족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제 3자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평가받아볼 필요가 있다.

확실하게 그런 것을 느꼈다.





.
.

오빠에게는 미안하다.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해서.
내가 요즘 이런 것들을 신경쓰느라
오빠에게 마음을 쏟고 있지는 못한 게
살짜쿵 미안하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런 상황이고
이것이 나의 최선이다.
오빠를 놓지 않고 있는 것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 이외의 몫은
오빠가 감당해주기를 바란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