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는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왜 이럴까 등등.
'나'
에 집중되어 있는 지금.
다른 사람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가 나를 좋아하는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 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나 않을까
조금은 걱정이 된다.
.
.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지금 이렇다.
그리고 이럴 수밖에 없는 시기이고
이래야 하는 시기이다.
나에게 관심의 촉을 세워야만
내가 내 상처를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
.
나는 이럴 수밖에 없다.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은 사람들
화목한 가정에서
학대같은 것은 받지도 않고
부모들이 싸우지도 않고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들처럼
똑같이 행복하고
똑같이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욕심이다.
나는 아직은 그럴 수 없다.
지금 이 상태 이대로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사랑 받는 느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러니
사랑하는 느낌 또한 무엇인지 모른다.
내가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도 잘 모르며
아예 가치가 있기는 한 건지도 잘 모른다.
세상은 나에게 자신의 한 켠을 내어주고는 있지만
내가 얼마만큼의 공간을 차지할 수 있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얼마만큼 누구한테 요구할 수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 그렇다.
그래서 오빠가 나를 조금이라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으면
바로 뿌렸던 나의 마음을 거둬온다.
상처로 돌아올 것 같은 두려움에.
차갑게 변해서 나를 대할 때의
그 괴로움을 나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기에.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 방어한다.
어쩔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생존방식이다.
지금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내가 나의 영혼의 생명을 유지해왔던
나의 생존전략이다.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당연히 없다.
절대로 없다.
그러니까 나 자신을 너무 채찍질 하지 말자.
나무가 병들었을 때는
수 백개의 가지를 모두 치료하는 게 아니라
그 나무가 뿌리 내린 '땅'부터 치료하고
그리고 나무의 뿌리를 치료해야만
가지와 열매들이 치료되는 법이다.
열매 하나하나에 약을 뿌리고
가지 하나하나를 동여맨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나무의 병은 결국에는 토양의 문제이며
뿌리가 병들었기에
가지와 열매들도 병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
.
가지를 치료하는 일은 그만둔다.
열매를 치료하는 일은 그만둔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흙을 본다.
뿌리를 본다.
흙을 치료한다.
뿌리를 치료한다.
그렇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