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가르기   카테고리가뭐야
 맑은 하늘 구름사이로 비행선 자국이 쉭~ hit : 2654 , 2002-11-22 00:31 (금)
편을 가르면 안심이 된다.
니 편 내편을 나누고 어딘가에 소속되면서 상대에게 거리감이나 적개심을 느끼면 희열과 우월감이 생긴다.
아주 유치한 발상이지만 이상한 본능이다.

어릴땐 특히 이런 경향이 짙은데 여자편 남자편 나눠서 여자들은 남자들을 더럽고 게으르고  저속한 존재로 비하하고 여자하고만 어울리려고 하면서 편을 가른다.
남자들은 여자들은 못말리는 욕심쟁이에 얌체같은 촉새들이며 입싸고 생각이 모자란 깍쟁이들로 간주하고 남성우월주의적인 세상에 적응해가며 편을 갈라 남성성을 즐긴다.

그리고 부잣집 애들은 부잣집 애들하고만 어울리고 가난한 애들은 가난한 애들하고 어울린다.
서로 다른 문화를 형성해서 편을 가르고 서로 무관심하거나 서로 무시하는걸 즐겼다.
내가 국민학생때는 늘 그랬다.
그리고 그들 사이엔 눈에 안보이는 많은 종류의 편가르기가 있었다.

중학교때라고 편가르기가 없었나.
내가 다닌 중학교는 지금의 프랑스타운이라 불리는 동네 중심에 있었고 바로 앞에 외국인 학교가 있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심심찮게 쌈구경을 할 수 있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안쪽에 파란 눈을 한 하얀 피부의 아이가 흙을 집어 던지고 밖에 있던 한국 애들은 아무 돌이나 주워서 철조망안으로 던지면서 뻐큐를 날리곤 했다.
웃긴건 그 철조망 안쪽 외국인학생들은 시팔노마 라고 외치고 가관이었다.
어린이들 사이엔 국경도 없고 벽도 없고 편견도 없다구?
말도 안돼는 어린이 환상주의다.
어린이들은 지독한 파시스트에다 셀피쉬한데다가 잔인하기 이를데 없으며 자기가 아닌 세상에 대해 쉽게 적개심을 느낀다.

내가 어리때 가장 적개심을 느끼며 나와  편을 갈랐던 존재는 남자보다도 외국인보다도 어른들이란 족속들이었다.
난 매우 빈부차이가 컸던 동네에 살았고 국민학생때 처음 사회공동체를 경험했을때 또래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느껴진건 계급같은 신분차이였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하면 그 계급차이도 어른들이 만들어 내서 아이들에게 주입시키고 있었다.
그땐 강남8학군 치맛바람하면 설명이 필요없던 시절이었고 당연히 부잣집 공주님들 뒤에는 부자 부모님들의 돈봉투가 자연스럽게 오갔고 당연히 선생들의 사랑의 표적이 되었다.
그게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쨋든 돈은 애정을 살 수 있는 좋은 티켓이었다.
그때 난 어떤 패배감에 젖어 있었고 어쩔 수 없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비하감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어떤 현상에도 분노하는 법을 몰랐던 나는 그저 나라는 존재가 다른 아이들과는 틀린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것 처럼 정해진거라고 생각했다.
난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라고 스스로 굳게 믿었고 그 사랑을 탐하는건 주제넘는 교만한 행동처럼 느껴져서 아예 그런 욕심은 싹이 돋기도 전에 스스로 잘라서 나를 비하시켰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렇게 가난했냐면 그렇지 않다.
작은 아파트지만 판자촌에 사는것도 아니고 자동차같은건 없었지만 우리 동네에 사는 다른 사람들도 그 당시엔 자가용같은거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우리 동네를 중심으로 북쪽으로 길을 건너면 백평짜리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동네 앞에는 하얀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에 집시치마를 입고 있는 여자애들이 색색으로 땋은 머리를 하고 돌아다녔다.
그들은 자전거도 탔고 나이키 신발도 신었고 그들이 들고 다닌 필통안엔 온갖 직수입 키티 학용품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우리 동네를 중심으로 남쪽으로 길을 건너면 그 동네가 재개발되기전부터 있었던 원주민촌이 나온다.
거긴 아직 길도 안놓였고 가게같은것도 불량식품만 팔았고 집이라곤 시골에서도 본적이 없는 지저분한 판자집이었다.
거기 있는 애들은 여름엔 안씻은것 처럼 얼굴이 검었고 겨울엔 볼이 터서 붉게 상해 있었다.
걔네들은 옷도 별로 갈아입지 않았고 안경을 낀 애들도 없었다.
그래서 내 어렸을땐 안경낀 애들은 부잣집아이=똑똑한 아이=사랑받는 아이라는 편견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난 그 중간 동네에 살았고 그 중간 동네는 그다지 부자도 가난하지도 않은 그저 살만한 동네였다.
그런데 왜 난 내 입장을 열등한 쪽으로 몰았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 눈이 나보다 못사는 애들보다 나보다 잘난 족속들에게 더 집중했나부다.
그리고 이런 모든 편견의 뒤엔 어른들의 안보이는 횡포가 있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국민학교 1학년때 담임 김광자.
김광자-이 여자는 돈에 미친 양심도 없는 인종차별주의자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인질잡아 엄마를 오게 만들어서 놀랜 엄마가 돈봉투를 내밀때까지 괴롭혔다.
그러나 엄마는 끝까지 돈봉투같은걸 몰랐고 난 끝까지 이상한 갈굼을 당했다.
그녀의 어록도 아직 기억난다.
자긴 눈이 뒷통수에도 달려서 칠판에 글쓰면서도 떠드는 애들이 보인다고 했다.
난 이말에 겁에 질려서 그 숱많은 검은 머리카락사이로 눈이 보일까봐 무서워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안그래도 말이 없었는데 더 말을 안할려고 노력했다.
집에 와서도 그 뒤에 달린 눈이 나를 볼거 같아 말을 하지 않았다.

국민학교 2학년때 담임 홍삼랑-
이 여자도 미친 여자다. 뜬금없이 내게 이것저것 사다 교실을 꾸미라고 시켰다.
긴 화분들이며 거울이며 교실비치용 걸레하며 별걸 다 시켰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순진한 우리 엄마가 돈봉투를 가져다 주지 않은게 얄미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딱한번 시계가 없어서 시간도 잘 몰랐던 내가 교실로 안들어가고 운동장에 남은 애들을 믿고 점심시간이 끝난줄도 모르다가 늦게 교실에 들어간적이 있었다.
그녀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기 무섭게 내 뺨을 5대를 날렸고 난 그 날도 기억한다.
어느 여름 금요일 C.A시간이었다.
그나마 난 나은거다.
원주민촌 애들은 더 심한 구타를 당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체벌은 그 갓9살짜리 애를 기마자세로 한시간을 서있게 한거다.
팔은 앞으로 나란이하고 다리는 구부리고 다리가 조금이라도 펴지거나 팔이 내려가면 가차없는 발길질이었다.
미친년.

3학년때 담임 김인숙-난 그녀를 파악하기도 전에 몸이 아파서 한달이상 입원하고 한학기를 거의 학교를 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한건데 그건 학교 새학기가 바뀌어 새로운 부당대우를 받게될걸 두려워한 스트레스에 눌린 병이었던거 같다.
엄마는 첫아이 학교생활 3년째야 되서야 돈봉투라는걸 알게 되고 그 선생에게 처음 봉투전달을 거행했다.
그 여자는 나를 아주 이뻐했다.
난 영문도 모르고 북쪽 길건너 사는 애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는게 신기해서 첫 신분 상승의 기쁨을 맛봤다.
그러나 그 선생이 좋진 않았다.
아마 어린 덕경이도 직감이란게 있었던거 같다.
나를 향한 가식적인 미소에서 분명이 꺼림직한 기운을 느꼈던거다.

4학년때 담임- 김흥식
난 처음 남자 담임을 만나게 되고 그 아저씨는 음악교사였다.
참 신기한건 북쪽 부잣집 여자애들은 하나같이 애교도 만점이었고 얼굴도 다 이뻤다.
쉬는 시간마다 그 애들을 불러다가 안마를 시켰는데 그때마다 아주 흐믓해하고 그 공주들을 귀여워했고 주요 명예직을 다 앵겼다.
그러니까 음악 선생이어서 그 학교가 방송출연을 하게 ‰瑛뻑
난 항상 행복해♡  02.11.22 이글의 답글달기
통쾌하다^0^

아~~~~~통쾌하다!!
님이 참 부러워여..비록 어릴 때 안 좋은 일을 많이 겪긴 했지만 지금의 모습이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당당한 사람이 되어 있으니깐여..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appletree  02.11.22 이글의 답글달기
재밌네요^^

덕경님의 글은 재밌고 독창적인 것 같아요.
같은 말을 해도 한번 비꽈서 애기하는 듯한 어투도
귀엽구요.
오늘 쓰신 어린시절의 기억은 공감이 가요.
저도 떠올리면 입맛이 쓰디쓴 훌륭한(?) 스승들이
여러 분 계셨지요...하...하...

never62  02.11.23 이글의 답글달기
..

화가 치밀다가 크게 웃다가 ..결국은 씁쓸함이 떠나질 않네요..
위같은 심한경우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는 모두들 공감하는 얘길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인교육을 가르쳐야 할 선생님들이 오히려 아직 너무나 여린 아이들 맘속에 깊은 창을 꼿는 일은 대체 어느나라 법인가요
나이가 들면 더러운 때가 묻어서 그런 거라고 선생님들만 나무랄수 없다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저는 선생님이 되려고 하시는 분들은 어느 정도 사명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님이 돈받는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고 했을 때 사실 무척놀랐습니다
저도 어린날 선생님의 대한 일기하나를 잘 못써서 무척 혼난 적이 있었는데 어릴적 그때는 잘 모르고 순수했기 때문에서 였는지 하루종일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며 내가 나쁜아이였다고 진실로 뉘우쳤던 기억이 아직도 나는데 말이죠..

선생님들을 비롯한 수많은 어른들이 언제부터 현실에 무릎꿇고 不正에 대해 긍정이 됐는지 .. 마음의 때는 정말 연륜에 비례할수 밖에 없는 건지..

영혼을 팔아 배를 채우는 사람은 뭇짐승이랑 하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yobe1  02.11.26 이글의 답글달기
덕경님 화이팅!!

길거리 다니다가 우연히 부딪히는 어른이 선한 사람일 확률보다, 학교에서 눈씻고 기를써가며 찾아대서 선한 선생님 찾을확률이 더 적을꺼 같네요!!

정말 짜증나는 선생님들 많져,,!!
양심을 어디다 숨기고 다니는지 알 수가 없다니깐요!!
선생님만큼은 아무나 되서는 안되는데,,!!

선생이나 부모는 아무나 되선 안된다!!
정말 선생이나 부모되기위한 인격 시험같은 거 아주 까다롭게 봤음 좋겠다니깐요!!!!!!

냥냥~  02.11.27 이글의 답글달기
역시~

오랜만에 들어와도...역시 덕경님 글은 시원유쾌하네요~

정곡을 찌르는 문구하며~

난 중학교때 처음봤어요....하얀돈봉투....

교무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봤는데....소문으로 듣던거랑 직접보는거랑의 차이는 엄청났죠...

믿었던 사람들의 그 배신감이란......

이루말할수 없죠........

그때 받은 충격인지...그때 부터 내 꿈들중에서 '선생님'이란

단어는 사라졌죠~ 휭~~'o'~

편지를 쓰신 일은 정말 용감하네요~

난 그때 그냥 못본척....그랬죠.....속은 와작와작 깨져버렸지만.....끄끄...

암튼 오늘도 글 잘 읽고 갑니다~


*아~ 프랑스 꼬마애가 한국어 욕하는거 상상되서 웃음나요..

키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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