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가는 크리스마스   미정
 으 ~~ 춥다 hit : 267 , 2000-12-27 05:47 (수)
짱이의 일기  --  2000. 12. 25        월요일-크리스마스         으 ~~ 춥다

조용히 가는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도 이렇게 하얀 눈과 함께 아쉽게 지나갑니다.
한해의 끝이 바로 코앞에 있군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날들이라 그런지 크리스마스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마음은 내년으로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내년 달력을 들춰보게 되네요.
와 ~~ 일월은 노는 날도 많네.  ^__^
여러분은 내년 달력을 받으셨나요?  올해가 정말 얼마 안 남았죠?

한해를 잘 마무리하자 생각을 하고 주변 물건들부터 이것저것을 들춰보고 정리를 합니다.
회사 장부도 꼼꼼하게 맞춰보고 여기저기 있던 영수증들도 차곡차곡 담아놓고, 책상 서랍도 정리해 봅니다.
안보이던 볼펜이며 비상금도 나오고, 그렇게 찾아도 없던 친구 전화번호도 나옵니다.

얼마만에 정리를 하는지 아주 산더미 같군요.
회사 장부를 맞춰보니 처음 의도완 다르게 적자가 많이 보입니다.
경영의 "경"자도 모르는 놈이 사업을 한다고 했으니 시행착오라는 선생님을 만난 것이죠.

사회가 어려워서 라고 핑계를 대기엔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네요.
성실도 중요하고 노력도 중요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정작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현실을 어떻게 바로 볼 수 있고 판단할 수 있을지가 중요해 보입니다.

친구의 말이 생각나네요.
월말이 어쩌면 그렇게도 빨리 오는지 신기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었죠.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그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매달 22일부터 시작되는 고지서, 세금영수증, 공과금, 월급등등은 무서운 것들 입니다.

노력을 하고 열심히만 하면 세상 어느 것도 못 할 것이 없을 줄 알았는데 세상은 너무나 냉정하고 현실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매달 22일 이후만 되면 약간 예민해 지는 것 같고 스트레스도 증가하는 것 같네요.

만약 여러분들이 사업을 생각하신다면 본인의 현실부터 파악하고 모든 것을 냉정하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본인의 상상과 계획만 믿고, 성실과 노력만 믿고 앞날을 예측한다면 많은 장애와 맞닥뜨릴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과 극단적인 현실까지도 고려할 수 있는 경영 마인드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 합니다.
지금 저의 상황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일을 배우는 단계라고 믿고 싶습니다.

유난히 빨강 글씨가 많은 12월의 장부를 보면서 크리스마스의 기분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그냥 이 일이 좋아서 한다고 맘 편하게 생각할까?
그래!  하고 싶었던 일,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잖아 라고 생각하자. 또 그 명분이 제일 크고...
물론 봉사와 희생은 절대 아닐 것입니다.

연말이고 크리스마스라서 그런지 온정의 손길들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이란 것을 잘 모르고 자랐는지 아이들이 한없이 우는 모습이 안타깝네요.
봉사 나온 형 언니들과 안 떨어지려고 눈물을 저리도 서럽게 흘립니다.
..........
그렇게 추억 만들기를 다짐했던 크리스마스는 조용히 가고 있네요.
어제오늘 뭔가 못한 것 같은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마무리 잘 할 수 있는 한 주를 보내야 겠습니다.



                                         미당 서정주는…

                                                                                                    
                                                                                          이  경  철

"60여년 동안 시만 써왔으니 나도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힐 수는 있겠는가?"

"선생님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선생님이 쓰시면 저 히말라야의 산도 조선의 산이 되고 러시아 아가씨도 조선 처녀가 되지 않았습니까. 시인 중의 시인이시지요. " 병상에서 잠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 기자와 나눈 대화다.
미당 서정주는 시인 중의 시인이다.
'시의 정부 (政府) ' , '한국이라는 부족 언어의 주술사' , '큰 시인들 다 합쳐도 미당 하나만 못하다' 는 등의 미당에 대한 많은 찬탄사와 같이 그의 시들은 우리 가슴 속으로 그대로 꿰차고 들어왔다.

그의 시가 있음으로 해서 한국어는 그 말 맛과 함께 깊은 뜻을 펼쳐보일 수 있었다. 말 못한 우리네 삶과 냉가슴을 속 깊게 서로 전하며 울리게 했다.
그 언어 부림의 비밀을 캐고자 수많은 시인이 따랐으나 어느 누구도 근접하지 못한 한국시의 큰 봉우리가 미당이다.

"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세상은 가도가도 부그럽기만 하더라/어떤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어떤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몇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있어/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미당이 1935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첫 작품 '자화상' 은 이미 그의 끝없는 구도로서의 시쓰기를 예감하고 있다.
아무리 순수한 것일지라도 몇 방울의 피가 섞여 있을 수 밖에 없는 원죄 같은 우리의 인생, 혹은 시에 있어 서 그 더운 피에 몸부림치며 순화시켜 가는 것이 미당의 시쓰기요 시세계였다.
일단 한 세계가 완성되면 그는 그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바람처럼 또 다른 세계로 옮겨 다녔다. 해서 임종 직전까지도 미당은 "나는 영원한 문학청년이야" 라고 할 수 있었다.

첫시집 '화사집' 에서 열다섯번 째 시집 '80 떠돌이의 시' 에 이르기까지 미당의 시세계는 시집마다 각각 특징 있는 다른 세계를 열어보이고 있다.
'화사집' 에서 미당은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을 원색적 언어로 토해냈다. "아름다운 배암....../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어리냐" 라고 '화사 (花蛇) ' 에서 노래했듯 자의식과 관능적 욕구에 몸부림 치는 젊음, 그 원죄적 세계관을 치열하게 드러냈다.
시집 '귀촉도' 에 이르면 이런 젊음의 피는 일단 순화되고 한국의 전통 가락과 한의 세계에 기대게 된다.
1955년에 펴낸 '서정주시선' 에 이르러서 원죄나 젊음의 방황은 극복되고 낙천성이 드러난다.
그 낙천성은 한의 극복과 함께 적당한 체념으로서 원만하게 삶을 끌어안으려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시집 '신라초' 에선 생명의 근원적.윤회적 탐구로 나가며 그 노력은 신라의 불교적 세계관으로의 천착으로 이어졌다.
시집 '동천' 에 이르면 종교나 세계관의 차원을 넘어 가없는 우주적 삶으로 나아가며 시 '동천' 과 같은 절창을 낳게 된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놨더니/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이 '동천' 단계에 이르러 미당의 시는 사람뿐 아니라 귀신은 물론 전 우주와 공감할 수 있는 시적 깊이와 폭을 지니게 된다.
시집 '질마재신화' 에서 우리의 이러저러한 삶을 신화적 단계로 끌어올린 미당은 다시 '떠돌이의 시' 와 '80 떠돌이의 시' 를 통해 세계 여행 중에 바라본 남의 세계마저도 우리의 신화체계 속에 간단없이 넣었다.

아무리 하찮은 삶과 사물이더라도 미당의 시어가 닿으면 그대로 신화로 화하는 언어의 주술사가 바로 미당 이었다.
그런 미당은 잃은 한국어와 한국의 마음은 그만큼 초라해지게 됐다.
발표시 중 마지막이 된 본지 정초에 실린 새천년시에서 미당은 "이 끝없이 살아야하는 영원 속에서/구세주 예수님이나/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아 사시었던/그 영생의 길에/언제나 앞장서 살도록 해라" 고 했다.






                               서정주(未堂)선생의 빈소 표정
                                                                                                    
                                                                                         이  성  섭

미당 서정주 시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일원동삼성서울병원 안실에는 25일 새벽 윤재웅 동국대 교수, 이경 시인 등 미당의 동국대 제자들을 비롯한 문인들이 잇따라 찾아와 분향 을 하며 문단의 거목을 읽은 슬픔을 함께 하며 애도했다.

0...미당의 둘째 아들 윤(재미 심장 전문의)씨는 큰 아들 승해(재미 변호사)씨와 함께 그동안 미국에 머물다 "둘째가 보고싶다"는 부친의 말을 전해듣고 급거 귀국길에 올라 미당 타계 직전인 24일 오후 8시쯤 병원에 도착했다.
그동안 미당의 두 아들은 미국에서 직장에 다녀야하는 사정 때문에 병실을 지키지 못한대신 큰며느리 강은자(60)씨와 미당의 동생 정택(78)씨가 병실에 머물렀다.

0...큰아들 승해씨는 부친의 타계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길에 올랐으며 26일 오전에야 병원에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미당의 큰손자가 되는 승해씨의 큰아들 인씨도 함께 귀국하려고 했으나 여권 기간이 만료돼 들어 올 수 없는 형편이라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에따라 유족과 문인들은 인씨가 귀국할 수 있도록 당국에서 도와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0...임종을 지켜본 최종림 시인은 "미당 선생님이 혼수상태에 빠지기 직전에 지난 80년대중반 자신과 함께 그리스와 파리 등을 다녀온 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했다"면서 스승의 영면을 안타까워했다.

0..."장례식은 조촐하게 치른다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라고 미당의 처남 방한열(67)씨가 말했다. 장지는 고인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선운리 선영.




아아, 미당 서정주 선생(추모시)
     서정주 시인 영전에
  
                                      정성수(丁成秀)

천재도 가는구나
이승을 버리는구나
20세기 마지막 크리스마스 이브에
깊은 한숨처럼 눈 내리는 날 저녁에
펄펄 날리는 눈송이를 타고
하늘로 떠올랐구나
국화꽃 향기 속으로 스며들었구나
“눈앞의 것에 휘둘리지 말고 먼 곳 보는 대인(大人)이 돼라”
세상의 째째한 졸개들에게 한 말씀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구나
시인은 죽고
텅 빈 지상
이제 어느 마을에 가서  
시인을 만나랴
시를 위해 태어난 아름다운 신선을 만나랴.




미당 서정주시인 연보

▲1915년 전북 고창 출생
▲1935년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입학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김동리, 오장환, 이용희등과 `시인부락' 동인 결성.
▲1941년 첫 시집 `화사집' 출간
▲1948년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
▲1954년 예술원 창립과 함께 예술원 회원
▲1960년 동국대 교수
▲1966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1977년 한국문인협회 회장
▲1980년 중앙일보 문화대상 본상 수상
▲1991년 서정주 시전집(2권. 민음사) 출간
▲1992년 시 전문지 `시와 시학'을 통해 친일행위 공개적으로 인정
▲1993년 `늙은 떠돌이의 시' 발표
▲1997년 시집 `80 소년 떠돌이의 시' 출간
▲2000년 10월 부인 방옥숙씨 별세



-- 사랑이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같은 방향으로 밖을 내다보는
    것이다.
                                               쌩떽쥐베리 (Antoine De Saint-Exupery)

                                                                         - 오늘 짱이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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