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엊그제 일처럼   미정
 춥지만 햇살은 쨍 hit : 222 , 2000-12-28 20:18 (목)
짱이의 일기  --  2000. 12. 27       수요일        춥지만 햇살은 쨍

마치 엊그제 일처럼

주차장 마당의 물위로 반사되는 햇살이 눈이 부십니다.
이곳에서 세차를 하는 아저씨의 물바가지 질은 여전하네요.
몇 분이면 차 한 대가 말끔하게 씻겨져 도로로 나갈 차비를 하고 있습니다.

물을 피해 사무실로 들어가 이력서를 내 보입니다.
일년 반이 넘었는데 얼굴을 알아보는군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또 왔노라고 말을 꺼내 봅니다.
우린 그만둔 사람의 재 입사는 안 받는다고 너스레를 떠는 배차주임의 말이 친근하게 들립니다.

다시 일을 하고 싶다고 말을 했더니, 잘 오긴 했지만 직장을 계속 다니지 왜 이렇게 왔냐고 걱정스럽게 물어 보네요.

할말은 많지만 웃음으로 대답을 하고 입사지원서를 작성해 나갑니다.
일년 반이 넘었는데 마치 며칠 전에 온 것처럼 바뀐 것이 거의 없군요.

근무하는 직원이며 사람들, 그리고 앞마당의 풍경까지 불과 며칠전의 기억 같습니다.

벽에 걸려있는 배차표의 사진들을 보니 눈에 익은 아저씨들이 아직도 잘 계신 것 같네요.
특히 부부가 번갈아 교대를 하면서 한 대의 차를 몰고 있었는데 여전히 명찰이 걸려있습니다.
언제나 제시간에 나와서 남편을 또는 아내를 맞이했었고 안전 운전하라고 당부하던 교대시간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많이 남는 모습들이었죠.
힘이 무척 들텐데 아주머니가 대단하시죠?

저와 아주 친했던 동갑의 친구는 그만둔 모양입니다. 사진이 어디에도 보이질 않으니...

결혼을 막 한 친구였는데 얘기도 많이 했었고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그 날의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서로 나누며 퇴근을 했었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회사 사무실을 뒤로 하고 구청과 동사무소 경찰서 등을 찾아가 구비서류를 준비 합니다.
건강진단서, 무사고 경력증명서, 주민등록등본, 신체검사 적성 판정표 등을 준비합니다.

할 일이 많을 것 같네요.
이제 당분간은 자유시간이 많지 않을 테니 미뤄놨던 일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마무리를 지어야 겠네요.

물끄러미 처다 보는 디디와 내년의 일에 대해서 상의도 하고 신경을 많이 못쓰는 동안 잘 좀 해 달라고 당부겸 부탁을 합니다.
참으로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은 한해였고 그 중에서도 사업을 시작했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갖가지 에피소드와 일들이 있었는데 올 한해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하고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침 오늘은 동창회가 있었는데 참석은 하지 못했네요.
짬 내서 나갈 수도 있는 상황인데 일부러 일을 만들어서 자리를 피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녁때는 전화가 오는데 다들 왜 안 나왔냐며 얼굴 좀 보자고 성화들입니다.

『나도 나가고 싶었지 ... 그런데 오늘은 그냥 혼자 있고 싶더라구.
     어쩌면 매년 겪는 나의 연중행사 일거야.
     알잖아 연말연시 슬럼프 말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생각하니 그냥 뭐 그런거지.
     마치 바이오리듬이 최하점에 있는 것 같은거 말야 그래서 그래.
     잠시 내버려두고 지켜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져.
     야 너 나이가 몇 살이냐 애들처럼 굴지 말고 이젠 그러지좀 마라.
     너의 그런 성미 때문에 주위사람들이 얼마나 피곤해 했겠니?
     알아! 그래서 일부러 더 씩씩할려구 노력하잖아.
     얼마 있다가 따로 만나서 술 한잔하자.
     응
     그래 잘있어...  ( 짜식 의리는 있어 가지구... )』

오랫동안 못할 것 같은데 오늘도 밤 행사를 치르러 가야겠습니다.
우 ~~ 춥다.  헛둘 헛둘...





       아아 삶이

                           이경림

절망이라고 치욕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시름이라고만
말할 수 있어도 얼마나 좋으리
시름처럼 순하게 시름처럼 아득하게
깊어질 수 있다면 또 얼마나 좋으리
시름처럼 천천히 해가 뜨고 시름처럼
하염없이 늙어가는 나무 아래선
펄펄 끓는 치욕을 퍼먹어도 좋으리
노란 평상 위에서 온갖 웬수들 다 모여
숟가락 부딪치며 밥 먹어도 좋으리
그때 머리 위로는 한때 狂暴했던 바람이
넓적한 그림자를 흔들며 가도 좋으리
시름처럼 수굿한 구름이 나무 꼭대기에서
집적대고 좋으리

그래
끝이라고 문 닫았다고
말하지 않고 그냥 시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또 얼마나 좋으리 시름처럼 따뜻하게
시름처럼 축축하게 한시절
뒹굴뒹굴 보낸다면 얼마나 좋으리
시름의 방 속에서 어른거리는 것들의
그림자를 보는 일도 좋으리
문밖에서 휙 지나가는 도둑고양이 같은 시름들
못 본 척하는 일도 좋으리
풀섶에서 눈 번득이는 작은 짐승처럼
그저 고요히 두근거리는 일도 좋으리






제 13월

             오정방

덤으로
연말에 한 달쯤
더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12월은
몸도 바쁘고 마음도 급한 채
너무 빨리 빨리 지나가서
설흔 한 날로는 엄청 부족하다

정다운 벗들에게
일일히 손으로 써서
문안 편지를 띄우고

보고픈 친지, 동기간들
직접 찾아 가 보거나 전화선으로나마
하나 하나 안부를 챙겨보고

만사를 잠시 잊고
아내의 관심사에 더 가까이 귀 기울여 주며
손주들 천진한 재롱에 흠뻑 젖어보고

읽고 싶었으나 미루어 두었던 책들
얼마쯤 더 읽어보고

쓰고 싶었던 글들
몇편 더 갈고 닦은 뒤에

하루쯤은 눈 산에 올라가
풍진에 덮인 허상을 말끔히 씻고나서

다가 올 새해를 위해
차분히 계획을 세우고
기도중에 조용히 신년을 맞고 싶다

12월이 지난 뒤 한 달 가량
인정이 듬뿍 넘치고
사람 사는 맛이 물씬나는
13월이 주어진다면
참으로 좋겠다






      길을 가다가

                          이정하

때로 삶이 힘겹고 지칠 때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서 있는 자리.
내가 걸어온 길을 한번 둘러보라.
편히 쉬고만 있었다면
과연 이만큼 올 수 있었겠는지.

힘겹고 지친 삶은
그 힘겹고 지친 것 때문에
더 풍요로울 수 있다.
가파른 길에서 한숨 쉬는 사람들이여,
눈앞의 언덕만 보지 말고
그 뒤에 펼쳐질 평원을 생각해보라
외려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 아닌지.







      소망의 시 3

                        서정윤

가끔은 슬픈 얼굴이라도
좋다, 맑은 하늘 아래라면.
어쩌다가 눈물이 굴러 떨어질지라도
가슴의 따스함만으로도
전해질 수 있다, 진실은.

늘 웃음을 보이며
웃음보다 더 큰 슬픔이
내 속에 자랄지라도
<웃음>만을 보이며 그대를 대하자.

하늘도 나의 것이 아니고
강물조차 저 혼자 흘러가고 있지만
나는 나의 동그라미를 그리며
내 삶의 전부를
한 개 점으로 나타내야지

지나가는 바람에도 손잡을 수 있는
영혼의 진실을 지니고
이제는 그대를 맞을
준비를 하자.




-- 살아있는 것, 아는 것, 행동하는 것, 듣는 것, 보는 것, 사랑하는 것은 영광
    
    스러운 특권이다.   이 계절에 푸른 하늘을 쳐다보는 것, 해가 서산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구경하는 것, 해가 동쪽으로 솟아오르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것이다.   보라! 우주 속에는 신비가 가득하다.

    그리고 너와 나는 여기에 있다.

                                                                말코 모로우 (Marco Morrow)

                                                                         - 오늘 짱이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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