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인터뷰 / 이동진   공개
  hit : 30836 , 2010-05-13 07:09 (목)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비밀>
- 읽어 보고 싶은데 구할 수 없어 아쉬운 책.

그가 만든 영화들을 보면 볼수록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감독, 홍상수.
검색을 하다 마주친 그의 인터뷰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들을 옮긴다.


05/16/2010

인터뷰 전문을 찾았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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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인터뷰] (1) 남자-여자-침대-술, 홍상수 영화 속 욕망의 4원론









[이동진닷컴] (오늘의 한국영화 대표 감독들을 만나는 ‘부메랑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이 인터뷰 시리즈는 모든 질문을 그 감독 영화들 속의 대사나 자막에서 빌어오는 형식으로 이뤄집니다. 자신이 만든 작품 속에서 되울려오는 물음에 감독들은 어떤 대답을 들려줄까요.)



홍상수 감독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한다. 대신 그는 세상에 대해 스스로 피부호흡한 결과만을 믿는다. 인류학자의 예민한 관찰력과 물리학자의 엄정한 태도로 비루한 삶과 부조리한 세계의 속내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홍상수의 영화들이 종종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에게 (거짓) 위안과 (가짜) 희망을 주는 갖가지 통념과 관습의 실체를 날카롭고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욕망의 찌꺼기가 끊임없이 발목에 감기는 삶의 뻘밭 속, 우리가 진실이나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앙상한 실체가 뿌리째 드러나 있다. 요컨대 그는 참이 아닌 것을 하나씩 제거해나감으로써 아주 조금씩 참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론적 회의주의자인 셈이다. 결국 예술의 적은 상투성이고, 삶의 적은 당위일 것이다.



남자 여자 침대 술이라는 욕망의 4원론으로 삶의 허망한 구조를 드러내온 홍상수의 영화세계는 가까이서 바라볼 때 언뜻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걸음 떨어져 연속적으로 관찰하면 형식에서 캐릭터까지 끊임없이 진화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새로운 길을 걸어왔고, 그 길을 꾸준히 걸어왔을 뿐 아니라, 정말 많이 걸어왔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지만, 영화언어를 만드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 어떤 사람은 에릭 로메르와 비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루이스 부누엘의 작품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홍상수는 다른 어떤 감독과도 다르다. 그는 영화로 말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발명했다. 경이로운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년)로 혜성처럼 등장한 후 그가 여전히 전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이로운 신작 ‘밤과 낮’(2008년)까지, 그가 지난 12년간 형형히 빛나는 8편의 영화를 연이어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영화의 신이 한국영화계에 내린 커다란 축복일 것이다.



그와의 길고도 흥미진진했던 인터뷰를 끝낸 나는 이제 그의 아홉번째 영화를 기다린다. 여전히 설렌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강원도의 힘’(1998) ‘오! 수정’(2000) ‘생활의 발견’(2002)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 ‘극장전’(2005) ‘해변의 여인’(2006) ‘밤과 낮’(2008)













'밤과 낮'의 홍상수 감독. ⓒ 이동진닷컴-베가스튜디오 김현호


“뭘 만드실 거에요, 이번엔?” “제목만 정했어요.”(‘해변의 여인’에서 고현정이 극중에서 영화 감독인 김승우에게 차기작에 대해 질문.)



-제목에 대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감독님은 제목을 지을 때 대체적으로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따릅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극장전’ ‘밤과 낮’ 등은 서로 이질적인 단어를 이어붙이거나, 도치 혹은 중의적 의미를 지니는 단어를 사용해서, 각 단어들이 원래 갖고 있던 의미를 전혀 다른 쪽으로 증폭시키는 경우지요. 또 하나는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해변의 여인’처럼 기존에 잘 알려진 책이나 곡명 혹은 경구를 따오는 방식입니다. 제목을 처음에 어떻게 떠올리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겐 제목이 말의 느낌으로 접수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단어가 가진 의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작명할 때의 포커스는 그 어감에 놓여 있습니다. 그 말 자체가 풍기는 인상이 의미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죠. 요약하자면, 저는 말이 귀에 걸리는대로 제목을 짓습니다.”



“앞으로 새벽 한 시에 처하고 전화하기로 정했다.”(‘밤과 낮’에서 파리로 도피한 화가 김영호가 서울의 아내 황수정과 시간 맞춰 전화하기로 한 약속에 대해 내레이션.)



-감독님 영화에서 제목은 언뜻 내용과 동떨어져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밤과 낮’은 주인공인 성남(김영호)이 파리에서 서울로 전화를 하는 실내 장면을 제외하면 밤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제목이 ‘밤과 낮’인데요.



“언젠가 외국에서 집으로 전화를 하면서 두 곳 사이에 시차가 존재하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던 경험에서 온 제목이죠. 그런데, 흔히 ‘낮과 밤’이라고 쓸텐데, 그걸 도치해 배열하니까 어감이 제게 상당히 좋게 다가오더군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같은 제목도 내용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느낌대로 지은 거에요. 파리의 한 책방에서 파는 그림 엽서에 적혀 있었던 루이 아라공의 그 글귀를 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그 말이 그냥 좋아지더라고요. 의미가 아니라 어감 자체가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작명 방식은 어떤 관객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합니다. 그 제목이 지닌 의미와 연결지어서 영화의 내용을 풀어보려고 고심하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긴다는 거지요.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코언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경우도 그랬는데, 예를 들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혹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나 ‘생활의 발견’ 같은 경우는 제목 자체가 감상에 오히려 일정한 제한을 가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비유 하자면 이런 거에요.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언제 한 번 내가 사는 곳에 들러봐. 진짜 신기하고 좋은 게 있어’라는 초청의 말을 듣는 겁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곳으로 가는 길을 대충만 알려줬어요. 신기하고 좋은 게 어디에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고요. 한참을 밍기적거리다가 그 편지를 들고 그 곳에 가봤는데, 대충만 알려줘서 찾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헤매다가 신기하게 생긴 돌 조각 같은 걸 길가에서 발견해요. 이 돌이 그 친구가 말한 게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하면서 그 지역에 대한 느낌을 어느 정도 강화하는 거죠. 그 돌처럼 다소 막연하더라도 영화와 약간의 관계를 갖고 감상을 도와줄 수 있는 제목을 선호하는 거죠.”



“자, 해볼까? 준비. 땅!”(‘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도입부에서 들려오는 전자오락기 소리.)



-한 영화를 여는 방식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습니다. 일단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장면들을 보여준 뒤 제목을 넣고나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영화가 참 많은데, 감독님은 거의 언제나 제목을 깔끔하게 맨 앞에 제시하고 배우와 스태프 이름을 깐 이후에야 첫 장면을 보여주십니다.



“저는 다른 장면을 먼저 보여준 뒤 제목을 나중에 넣는 영화들을 보면 속으로 ‘왜 굳이 저러시나’ 싶어요.(웃음) 좀 치기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사실 별 효과도 없는데 말이죠. 전 제목이 책장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일단 책의 껍질을 먼저 보여주고나서 곧바로 깨끗하게 내용으로 들어가는 게 좋지, 중간에 제목을 넣는 게 뭐 그리 좋은지 잘 모르겠어요.”



“자, 갑시다.”(‘강원도의 힘’에서 김유석이 함께 술을 마시다가 취해 쓰러진 오윤홍을 부축하면서.)



-감독님은 영화를 시작하는 첫 쇼트를 가볍고 평범하게 시작합니다. ‘오! 수정’ ‘생활의 발견’ ‘극장전’ ‘해변의 여인’ 등에서 보듯, 어딘가로 가는 사람의 모습이나 평범한 거리 풍경을 심상하게 스케치합니다. 쇼트의 길이도 상당히 짧은 편이죠. 이를테면, 감독님 영화에서 첫 쇼트는 숙제 같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영화를 시작하기 위해 살짝 넣은 문턱 같다고 할까요.



“맞아요. 극중 등장하는 사람을 만나기 직전에, 그 사람들이 속한 공간에 대해서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주자는 거죠. 괜히 분위기 잡지 않고 그 공간에서 봤음직한 앵글을 자연스럽게 잠깐 보여준 뒤 곧바로 인물로 들어가고 싶은 겁니다. 그 정도를 넘어서서 오버하는 걸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서두에서 분위기를 잡는 것은 제 의도와도 맞지 않아요.”



“당신 여기서 조심해. 조심하라구.”(‘밤과 낮’ 첫 장면의 파리 공항에서 김영호에게 담뱃불을 빌리던 거지가 갑자기 경고하면서.)



-그런데, 가장 최근에 나온 영화 ‘밤과 낮’의 첫 장면은 이전과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평범하게 거리를 스케치하는 대신, 주인공 성남(김영호)이 마치 그리스 신전에서 불길한 예언이 담겨 있는 신탁을 받듯, 거지로부터 경고를 받게 되니까요. 이 장면은 마치 문장 부사처럼, 영화 전체에 메아리치는 어떤 무거운 공기 같은 것을 깔아둡니다. ‘밤과 낮’은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이 첫 장면과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마지막 장면이 서로 조응하면서 가운데 들어 있는 이야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감독님의 이전 영화들의 구조와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하는 거죠.



“이 영화는 아주 간단한 두 개의 이야기 모티브로 시작됐어요. 첫번째는 ‘한 남자가 바보스런 이유로 집을 떠나 도피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누군가의 선의의 거짓말로 그 남자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었죠. 만일 이 영화에 구원이 있다면, 그건 영화의 종반부에서 아내인 성인(황수정)이 남편인 성남에게 임신을 했다고 거짓말을 해서 돌아오게 만든 거잖아요? 이를테면 구원이 거짓말을 통해 이뤄진 셈인데, 저는 그런 모티브가 좋더라고요. 흔히 좋은 결과는 좋은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고 생각하죠. 통념으로는 구원이 헌신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를 테면 어머니가 옆에서 밤새워 떡을 썰어서 아들이 고시에 합격했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현실이 과연 그렇습니까. 나쁜 놈이 배가 불러서 함부로 거리에 버린 빵을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주워먹고 살아날 수도 있는 거죠. 그런 맥락에서 저는 선의의 거짓말로 집으로 돌아온다는 모티브가 좋았어요. 그러다보니, 이 영화의 앞 부분은 일종의 신화 같은 것이 되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확실히, 감독님 영화는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 연결되면서 전혀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고 할까요.



“그렇습니다. 인간의 사고는 논리적이고 일관적이고자 하는 성향을 갖고 있죠. 일반론을 빨리 갖고 싶어하고, 한 번 그 일반론을 알았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그걸로 가고 싶어하죠. 그러다보니 그런 일반론에 맞지 않는 사례를 만나면 쓸 데 없이 너무 많이 고통받으면서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습관적으로 받아들인 통념이나 이미지가 괜히 삶을 힘들게 하는 듯 합니다. 따져 보면 삶에 주어진 것이 적지 않은데 그걸 즐기지 못하고 힘들어 하죠.”



“어디까지 가세요?” “아무 데도 안 가요.”(‘강원도의 힘’에서 오윤홍이 기차 역 앞에서 호객하는 택시기사에게 퉁명스럽게.)



-이번엔 마지막 장면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감독님의 영화들은 망연자실한 상태 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인물을 보여주면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물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자체를 모르는 경우라고 할까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애인인 효섭(김의성)이 살해당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태우던 보경(이응경)은 아침에 신문지를 바닥에 하나씩 펴놓고 베란다로 나가서 밖을 내다봅니다. ‘생활의 발견’에서 경수(김상경)는 집에서 나오지 않는 선영(추상미)을 문 앞에서 비를 맞으며 처량하게 기다리다 돌아섭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나 ‘극장전’ 혹은 ‘강원도의 힘’ 역시 라스트 신의 느낌이 이와 유사하죠. 이처럼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고, 인물은 그 한 가운데서 위태롭게 대롱대롱 매달린 상황으로 끝맺는 결말은 감독님이 인간을 보는 시선을 그대로 함축하고 있는 듯 합니다.



“싫든 좋든, 인물이 사람들의 통념과 상투성 아래서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겐 그게 사실성의 문제입니다. 감독으로서 미래에 제가 어떤 지점에 도달하면, 정말로 긍정할 수 있는 인물을 그려내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다 해도 저는 조심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설혹 제가 그 지점에 도달했다고 해도 그걸 영화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을까의 문제가 있거든요. 그리고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맞아들어갈 수 있는 방법인지에 대해서도 불확실하고요. 그럴 때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통념 자체가 갖는 허구성을 보아내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상투성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물의 모순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을 믿어왔던 우리의 사고 방식 등에 대해 자문하도록 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매달린 상태로 끝나는 것은 그런 인물의 상태를 보여주는 의미를 지닙니다.”



“집에 가실래요? 너무 멀리 왔어요.”(‘생활의 발견’에서 김상경이 술에 취한 채 밤거리를 함께 헤매던 예지원에게 떠보듯 제안.)



-가장 최근에 발표하신 ‘밤과 낮’을 보고 나오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드디어 홍상수 감독의 오딧세이가 집으로 돌아갔구나”란 것이었습니다. 감독님 영화들을 흥미진진하게 쭈욱 보아온 관객 입장에서 ‘밤과 낮’의 결말은 자못 흥미롭습니다. 일종의 로드 무비 같은 감독님 영화들 속의 인물은 그리스 신화 속 오딧세이를 떠올리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전과 달리 ‘밤과 낮’에서는 이 인물이 아내 페넬로페가 있는 고향인 이타케 섬으로 마침내 돌아간 후 끝을 맺는다는 겁니다. 홍상수의 인물이 어쨌든 서성이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는 것은 대단히 주목할만한 엔딩이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그 귀환은 반쪽의 안식만을 주는 결말이고, 기이한 꿈 장면에서 알 수 있듯 불안과 신경증을 배태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감독님 영화에서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할 때, 귀가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전과 다른 긍정적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밤과 낮’의 라스트 신을 통해 감독님 필모그래피에서 영화적 구두점 중 하나가 찍혔다는 느낌도 들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다음 작품이 어떨지 정말 궁금합니다.



“ ‘밤과 낮’을 통해 현재의 제 상태로서 할 수 있는 귀가는 시킨 것 같습니다. 주인공 성남이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와 합쳐졌는데 그 둘의 진심이 영원까지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요. 돌아왔지만 적어도 그런 어두운 꿈을 꾸는 정도까진 보여줘야 했던 것 같습니다.”



“좀 기다려야 할 거 같은데, 넌 어떻게 좀 괜찮냐?” “기다리지 뭐. 얼마나 기다리라는데?” “넌 괜찮냐? 어떠냐?” “기다려볼까?” “그래라. 그럼.”(‘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김태우가 성현아를 함께 기다리던 유지태를 따돌리려고 하지만, 꿈쩍도 않는 유지태.)



-감독님 영화는 기본적으로 남녀 관계에 대해 다룹니다. 이때 중요하게 묘사되는 것이 이성을 앞에 둔 동성끼리의 신경전이지요. 한 명의 남성과 두 여성, 혹은 한 명의 여성과 두 남성이 함께 있는 데서 벌어지는 일들을 무척 흥미롭게 다루신다고 할까요.



“남녀관계에는 다른 관계보다 환상이나 통념 혹은 의지나 이성 같은 것이 훨씬 더 복잡하게섞여 있는 듯 해요. 워낙 냉철한 남자라서 연애할 때에는 쿨하다가도 결혼을 하고나면 돌변해서, 이상한 믿음에 토대해 괴상하게 군다던가 하는 일들이 많죠. 남녀관계에선 이성과 감정이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한다고 할까요. 그 속에 오만가지 편견이 뒤엉켜 있는데, 거기선 희망조차 과잉이죠. 정말 가장 복잡한 관계인 것 같아요. 그런 관계를 다루면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가장 잘 드러나는 듯 합니다.” 













'밤과 낮'의 홍상수 감독. ⓒ 이동진닷컴-베가스튜디오 김현호



“누구랑 하실 거에요?” “네, 가능하면 지금 말씀하시는 분하고요.”(‘해변의 여인’에서 우연히만난 두 여자 중 송선미와 인터뷰 하고 싶어하는 김중래.)



-베드신에 대한 질문들을 드리겠습니다. 감독님 영화 속에서 베드신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무척 중요한데, ‘누가 누구와 어떻게 잘 것인가’라는 문제를 영화에서 왜 그토록 중시하십니까.



“사람에겐 누구나 욕망이 있죠. 그런데 사회는 개인의 욕망 추구 방식에 대해 제도화해놓은게 있잖아요? 그 둘 사이에서 늘 부딪침이 있는 거죠. 하지만 제 영화가 그 부딪침 자체에 대해 집중하는 것도 아닌 거 같아요. 그냥 그걸 일상에서 일어나는 상황으로 놓고, 서로 충돌하는 다양한 모순 쌍들을 그 상황 안에 넣으려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제 영화가 섹스나 외도 자체에 집중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다만 남녀 관계에서 인간이 지닌 상투성이 잘 드러난다는 거죠. 인간 관계에서 최악이 될 수도 있고 최선이 될 수도 있는 게 남녀 관계에요. 너무나 강력한 욕망이고, 그 관계 안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되어 있기에 영화로 다루고 싶어지는 듯 합니다. 누가 누구와 잘 것인가에 대한 선택과 결정은 여러 차원에서 정말 중요하죠. 그건 진짜 선택이기도 하고요.”



“너, 근데 그때 그 갈비찜 먹으면서 니 와이프 칭찬 몇 번 했는지 알아? 여섯번이야. 내가 그때 세어봤거든. 여섯번을 칭찬하더라고, 네가.”(‘극장전’에서 친구의 가족과 함께 중국 음식점에서 식사하던 김상경이 예전 그 친구가 아내의 음식 솜씨를 거듭 칭찬했던 이야기를 꺼내면서.)



-저도 ‘극장전’의 동수(김상경)처럼 세어봤습니다.(웃음) 감독님 영화들에 베드신이 이제껏 모두 36번 나오더군요. 이 횟수는 있었던 것으로 암시되거나 실패한 섹스가 묘사되는 장면들을 모두 포함한 숫자입니다. 세느라고 셌는데, 물론 이 역시 횟수가 약간 틀릴 수는 있을 거에요. 어쨌든 편당 무려 4.5회인 셈이네요.(웃음)



“그렇게나 많군요.(웃음)



-베드신에 대해서 좀 난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웃음) 일일이 따져 보니, 그 베드신들 중에서 체위가 묘사된 것은 모두 26회였는데, 그중 남성 상위가 25번이더군요. 단 한 번의 예외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동우(박진성)가 성매매 여성과 관계할 때의 여성 상위 체위였습니다. 왜 남성 상위가 집중적으로 많을까요.(웃음)



“일단 개인적으로 정상체위가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리고 영화적으로 생각해보면,체위가 너무 야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베드신을 찍을 때 사실 섹스 자체보다는 그 사이에 펼쳐지는 다른 요소에 집중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장면이 너무 야해지면 관객의 시선이 거기에만 집중될 것 같아요. 남성 상위는 사실적이기에 오히려 더 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면 그래도 그 체위가 나은 것 같습니다. 체위가 이상하면 거기에 시선이 너무 많이 가서, 대사 전달 등에 방해가 되는 듯 해요. 사실적인 베드신을 원하지만, 연출할 때 어느 정도의 수위에서 멈춰야 한다는 계산이 있는 거죠.”



“그럼 다 벗어요.” “다, 다 벗어요?” “아뇨. 됐어요.”(‘해변의 여인’에서 관계를 원하는 김승우에게 옷을 벗으라고 말하는 고현정.)



-최근 두 작품에서 베드신의 묘사 방식이 이전과 확연히 다릅니다. ‘해변의 여인’에서 중래(김승우)와 문숙(고현정)이 처음 관계를 갖는 장면은 예전의 구체적인 묘사 방식과 달리 행위를 보여주지 않고 암시만으로 끝냅니다. ‘밤과 낮’에서 성남(김영호)과 유정(박은혜)이 도빌에서 관계를 갖게 되는 장면 역시 구체적인 묘사를 생략합니다. 두 영화 모두 인물들이 옷을 벗고 연기하는 장면도 없죠. 최근 들어서 베드신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으시는 것은 캐스팅된 배우들이 그런 연기를 원치 않아서입니까, 아니면 이젠 그런 행위에 대한 묘사 자체가 덜 중요해졌다고 느끼시기 때문입니까.



“둘 다 맞습니다. 배우들이 그런 장면들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았으면 저도 불편하게 느끼지않았을 거에요. 그런데 배우들은 베드신 연기를 할 때 당연히 불편하게 느끼거든요. 감독이 베드신을 연출한다는 것은 그런 배우들의 심적 부담을 고스란히 안고서 하는 거죠. 겉으론 아닌 척 해도 미안함이 없을 수 없어요. 그래도 얻는 게 있다고 생각할 때까진 괜찮았는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때부터는 정말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후에 촬영하게 될 영화부터는 베드신을 찍기 싫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어요. 그 다음 영화가 ‘극장전’인데, 그걸 찍을 때는 항아리에 물이 아직 다 차오르지 않아서인지 그냥 예전처럼 했죠. 하지만 무척 힘들었어요. 그 영화까지 찍고나니까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더라고요. 이젠 배우들 그런 연기 시키는 것이 싫어요. 베드신을 연출하려면 그 장면에서 두 배우가 손놀림을 어떻게 해야 하고 신음을 언제 내야 하는지를 지시해야 하고, 반복해 촬영하게 되면 그때마다 고쳐줘야 하는데, 그게 힘들어졌어요.”



-힘드신 건가요, 아니면 싫으신 건가요.



“힘드니까 싫은 거죠. 이젠 그렇게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필요하다면 힘이 들어도 꼭 해야되겠지만요.”



“너도 영화 본 거야?” “다시 다 봤지. 회고전이라서고 그래서. 형의 영화 좋잖냐.”(‘극장전’에서 투병중인 선배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온 김상경이 우연히 마주친 친구에게 묻자, 그 친구 역시 그 영화를 막 보고 나왔다면서.)



-이번 기회에 감독님 영화 8편을 데뷔작부터 순서대로 차례로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8편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터닝 포인트 비슷한 게 보이는 것 같더군요.



“그게 언제인가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극장전’ 사이입니다. 이번에 쭈욱 다시 보면서 감독님 작품 중 가장 어두운 영화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영화는 형식적으로도 쇼트의 평균 길이가 가장 긴 작품이면서 카메라의 움직임은 별로 없지요. 그 다음 작품인 ‘극장전’에서는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이전과 상당히 다른 면모가 보입니다. 타이틀 시퀀스의 방식부터 차이를 보이고 카메라워크도 변했으며, 인물 역시 다르게 행동합니다. 문병을 마치고 나오는 동수(김상경)의 ‘극장전’ 라스트 신 내레이션 속에선 변화에 대한 갈망 같은 게 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극장전’을 포함해 그 이후의 영화들인 ‘해변의 여인’과 ‘밤과 낮’에는 이전과 달리 주인공이 통곡하는 장면이 들어 있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극장전’ 사이에 터닝 포인트 같은 게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거지요.



“저는 주변의 일상적인 것들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댐으로써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인데, 제 경험이 원둘레처럼 둘러싸고 있다고 한다면, 그중 제일 먼저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 부분이 있고, 죽었다 깨어나도 들이대지 못할 것 같은 부분도 있죠. 그런데 제가 살아가면서 인간적으로 조금 나아지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그렇게 조금씩 제 삶의 원둘레가 늘어날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전에는 주인공이 귀가하는 장면을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이제는 ‘밤과 낮’에서처럼 생각해볼 수도 있게 되는 거죠.”



“오늘은 좀 춥죠?” “어제보다 따뜻한데요.”(‘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유지태와 성현아가 약수터에 가기 위해 학교 담장 언덕길을 걸으면서.)



-아닌 게 아니라 저는 ‘극장전’ ‘해변의 여인’ ‘밤과 낮’ 같은 감독님의 최근 영화들에서 돌기 시작한 일종의 온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차갑지만 확실히 이전보다는 따뜻합니다. 이전 영화들의 날이 선 듯한 인상과 달리, 슬픔이든 연민이든 유머든, 피가 돌고 냉소가 적어진 듯한 느낌이랄까요? 제가 느끼고 있는 이런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별로 무리가 없는 지적인 것 같습니다. 내 스스로를 바라봤을 때, 삽십대 초중반까지는 제가 사람들의 어떤 부분들을 못 견뎌 했거든요. 비판에만 멈춰 있었고요. 지금은 이해하는 부분이 더 많아진 게 사실입니다. 이전엔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다른가를 보려고 했는데 이젠 서로 얼마나 같은지도 보려고 하는 거 같고요. 물론 제 마음 속의 변화를 의식하고 영화를 만들진 않아요. 하지만 직감으로 작업을 하는데도, 자연스럽게 그런 게 영화 속에 투영되는 것 같습니다.”



“내 삐삐 못봤어?” “웬일이에요? 당신이 물건을 다 잃어버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없네.”(‘강원도의 힘’에서 호출기를 잃어버린 백종학이 아내에게.)



-감독님 영화에서는 인물이 뭔가를 분실하거나 깜빡 잊고 두고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강원도의 힘’에서 상권(백종학)은 호출기를 잃어버리는데, 교수 집에서는 우산까지 두고옵니다. 같은 영화에서 지숙(오윤홍)은 머리띠를 떨어뜨리고, 지숙의 친구는 카메라를 분실합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보경은 지갑이 없어져 곤경에 처하는데, 민재(조은숙)는 분식집에 선물로 사둔 신발을 두고 가기도 합니다. ‘오! 수정’의 재훈(정보석)은 장갑을 분실하는데, 영수(문성근)는 또한 재훈에게서 빌린 카메라를 잃어버립니다. 감독님이 처음 만드신 세 영화의 사례만 들었는데, 이후의 작품에서도 분실의 모티브는 자주 반복되죠. 특히 지갑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가장 많죠. 감독님 영화 속 인물들은 왜 자꾸 뭔가를 잃어버리는 것일까요.



“글쎄요. 한 번도 의식해본 적이 없었는데 물어보시니까 이것도 한 번 생각해 볼게요. 일단 분실은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으니까 영화 속에서도 무리없이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분실의 모티브는 일상적 만남의 한계 속에서 관계를 맺게 하거나 행동의 방향성을 뒤틀도록 기능을 한다는 점도 고려됐겠지요. 그리고 제겐 물건을 좀 버거워하는 성향이 있어요. 물건이라는 것은 달고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해야 할까요. 선승들이 선방에서 극도로 간략한 생활 도구들만 갖고 살아가는 모습에 끌려요. 물건이 있으면 분실에 대해 늘 걱정을 해야 하잖아요. 항상 정리해두는 것도 귀찮으니, 물건이란 것은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제게 있는 듯 해요. 그래서 귀찮아 하고, 쉽게 버려요. 저는 항상 ‘내게 내일 큰 사고가 생기면 챙겨야 할 물건이 뭘까’를 생각해요.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산다고 할까요.”



-내일 큰 사고가 생기면 꼭 챙겨야 할 물건이 어떤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셨나요?



“여권 하나와 통장 하나에요.”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용적이신데요?(웃음)



“여권은 주민등록증보다 훨씬 유용해요. 그리고 은행 돈은 챙겨야 하죠. 나머진 다 없어도 됩니다. 책이야 다시 사면 되고, 사진은 원래 남겨 두기 쉽지 않죠. 제 성향이 원래 그런 듯 해요. 제 매형은 20대 때 유학가서 관람했던 공연의 팜플렛까지 전부 지금껏 보관하고 있는데, 저는 매형을 볼 때마다 ‘정말 사람은 참 다른 거구나’ 싶어요. 저는 정반대거든요.(웃음)”



“근데요, 이 집, 사람이 너무 없는 거 같지 않아요?”(‘생활의 발견’에서 김상경이 추상미와 식당에서 낮술을 마시다가.)



-얼마 전 ‘밤과 낮’을 서울 시내의 한 극장에서 보았습니다. 개봉일 오후였는데도 저를 포함해 관객이 다섯명 밖에 되지 않아 무척 안타까웠어요. 사실 감독님의 영화는 흥행이 안 된 경우가 많은데…



“전부 다 안 됐죠.(웃음)”



-매번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시나요.



“현실이죠, 뭐. 제가 만드는 영화를 관객들이 매표소에서 선택하지 않는 거죠. 그분들 대부분이 영화에 대한 개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으실텐데, 극장까지 와서 돈을 지불할 때 바라는 영화의 기준으로 봤을 때, 제 영화는 순위에서 한참 처지는 거죠.”



“오랫동안 해왔는데, 사람들이 안 좋아하는 그림인가 봐, 내 그림이.”(‘밤과 낮’에서 화가인 김영호가 박은혜에게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아무리 그게 현실이라도, 꽤 많은 제작비가 들 수 밖에 없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돌파하기 쉽지 않은 어떤 벽 같은 걸 느끼실 것 같은데요.



“어쩔 수 없는 거죠. 저와 영화의 관계가 있으니까, 하는 날까지는 잘 지속시키고 싶은데, 제 영화가 현실에선 사람들이 잘 안 보는 영화이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제작비를 줄여야 한다면 최대한 줄일 거에요. 그렇게라도 계속 만들 수 있으면 고마운 거죠.”



“두 분이 영화 안 찍어요?” “돈 일억이 간단한 게 아니지. 아무리 부자라도. (재훈이는) 돈 많지. 돈은 많은데 연락이 없어.”(‘오! 수정’에서 이은주가 문성근에게 정보석이 영화 제작비를 대주기로 한 일이 어떻게 되어가냐고 질문. 이에 힘없이 대답하는 문성근.)



-영화는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들 수 밖에 없는 장르입니다. 소설은 그냥 볼펜과 종이만 있어도 쓸 수 있지만, 영화는 각종 기자재와 스태프와 배우들이 있어야 하니까요. 만일 제작비를 구하는 게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영화는 백만원으로 찍을 수는 없는 것이잖습니까.



“왜 백만원으로 못 찍습니까. 저는 제 영화를 보려고 하는 분들이 최소한만 있으면, 백만원이 아니라 오십만원만 있어도 계속 찍을 거에요.”



“나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가지려고 노력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은 포기하려고 노력해.”(‘강원도의 힘’에서 오윤홍이 술을 마시다가 친구에게.)



-감독님 역시 가질 수 있는 것은 가지려고 노력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은 포기하려고 노력하십니까.



“대부분 포기하려고 해요. 가질 수 있는 것만 정확히 따져봐서 그걸 잘하려고 해요.”



-그러면, 가질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영화와 맺고 있는 관계라고 해야겠죠. 영화에 대한 태도와 마음을 유지하고 싶어요. 조금더 덧붙인다면, 제가 아끼는 몇몇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부메랑인터뷰] (2) 홍상수, 변해온 것들과 변하지 않는 것들









[이동진닷컴] (이 인터뷰는 4월22일자 ‘남자 여자 침대 술-홍상수 영화 속 욕망의 4원론’ 제하의 기사에 이어지는 후반부 내용입니다.)













'밤과 낮'의 홍상수 감독. ⓒ 이동진닷컴-베가스튜디오 김현호



“야, 그 경찰관, 내가 아는 선생님이랑 되게 많이 닮았어. 어떻게 그렇게 닮은 사람이 있을까 신기해.”(‘강원도의 힘’에서 강원도에 놀러갔다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윤홍의 친구가 현지에서 만난 김유석에 대해.)



-감독님의 영화를 보다 보면 인물들이 너무나 생생해 꼭 모델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캐릭터들의 모델이 있냐는 질문 많이 받으시죠?



“인물은 상상을 통해 만들게 되는데, 상상이란 것도 사실은 구체적인 경험 조각에서 출발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뭔가가 튀어나오는 일은 없죠. 어떤 상상이든 그 밑바닥엔 구체적인 경험의 조각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배열하고 배치하느냐에 따라 새 인물이 탄생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물은 모델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미디엄을 통과하는 순간, 그리고 배우가 연기하는 순간, 모델과 똑같이 하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대상을 사진으로 찍어도 작가의 시선이 개입하잖아요.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영화를 만드느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제 마음입니다. 그래서 모델이 있다고 해도 부분적으로만 활용하고 또 변형시켜 인물을 만들죠. 긴 대사는 한 사람의 말에 여러 가지 소스를 합치고요. 그래도 당사자는 자신의 말을 따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거에요. 그것까진 어쩔 수 없어요. 제가 20대 초반의 나이로 매일 카페에 나가서 시나리오를 써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는데 잘 되지 않았어요.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제게 일어난 일을 그대로 옮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의식 속에서 그에 대한 저항이 있어 제대로 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때 깨달았어요.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구나. 내가 마음대로 인물을 움직이고 조작할 수 있어야 하는구나.”



“영실씨가 출연하신 영화가 제 얘기에요. 사람들이 친해서 서로 믿고 하는 얘기를 그렇게 쓰는 거 너무한 거 같아요. 그렇게까지 하면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건지.” “정말 자기 얘기에요? 어떤 게 자기 얘기에요?” “죽으려고 여관 간 거, 약을 한 알씩 다 나눈 거, 다 제 얘기에요. 죽기 바로 전에 눈 내린 거, 말보로 피려고 했는데 못 핀 거, 그거 다.”(‘극장전’에서 감독 지망생 김상경이 자신의 일을 선배 감독이 그대로 영화에 옮겼다면서.)



-‘극장전’의 장면에서처럼, 감독님의 영화 속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서 그대로 따온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죠?(웃음)



“당사자에겐 작아도 과장되게 느껴지기 마련이죠.(웃음)”



-그런 반응에 접하면 어떠세요?



“제가 정말 따온 모습이면 또 모르겠는데, 전혀 의외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강원도의 힘’의 후반부에 나오는 인사동 술자리 잡담 장면은 모델 없이 제가 순전히 만들어서 썼는데, 어떤 분들이 술 먹을 때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썼다고 계속 말하더라고요. 정말 웃겼어요.(웃음)”



“지금 출발 예정인, 서울에서 전주 가시는 손님은 승차하시기 바랍니다.”(‘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첫 부분에 나오는 고속버스 안내 방송.)



-감독님은 여행을 알리는 안내 방송으로 영화 이력을 시작하셨습니다.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본격적인 첫 장면이 펼쳐지기 전, 제일 먼저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바로 서울에서 전주로 가는 고속버스 안내 방송이었으니까요. 아닌 게 아니라, 이후 감독님 영화에서 여행은 매우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영화가 로드무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아예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면서 영화가 시작되는 작품이 전체의 절반이나 되니까요. 영화 속에서 왜 인물들이 여행하도록 하시는지요. 왜 ‘이곳’이 아니라 ‘이곳이 아닌 곳’을 택하십니까.



“인물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찍게 되면, 그 사람이 생활을 하기 위해 억지로 유지해야 하는 많은 기억들을 다뤄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왜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직장 생활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해서 오늘쯤 한 번 상사에게 아첨을 해야겠다든지, 와이프에게 오래도록 못해줬으니까 내일은 한 번 자야겠다든지, 그런 생각들이 작용하는 공간이라는 거죠.(웃음) 그런 것들이 일상 속에 가득 차 있기에 영화로 옮기기에는 좀 답답한 느낌이 있어요. 그걸 골고루 묘사하기엔 무리가 있고, 다 보여주려고 하면 영화가 넘칠 것 같죠. 여행을 가게 되면 그런 통념의 짓누름이 옅어져서 좀 편해요. 그렇기에 오히려 그 안에서 통념이 작동하는 모양을 보여주기에 더 적당하다는 느낌도 있어요.”



“여행? 어디로 가려고? 강릉? 그럼 너랑 나랑 둘만 가는 거고?”(‘강원도의 힘’에서 백종학이 후배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런데 제게 유독 흥미로운 것은, 그 여행을 둘이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둘이 서로 이성이 아니라 동성이고, 대부분 같은 나이의 친구가 아니라 선후배 사이라는 점입니다. ‘강원도의 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해변의 여인’ 같은 작품들이 그런 예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한 마디로 ‘선후배 사이인 동성들끼리 떠나서 이성을 만나는 여행을 다루는 로드 무비’인 경우가 많다고 할까요. 왜 인물들의 관계가 같은 나이의 친구가 아니라 선후배 사이인 걸까요.



“그 지적도 참 재미있네요. 저도 제가 그렇게 하는지 몰랐어요.(웃음) 질문을 받고 지금 비로소 생각을 해보니, 처음 떠오르는 것이 제가 동년배 친구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화 일을 하면서 생기게 되는 선배나 후배들인 것 같습니다. 저는 캐릭터나 이야기를 만들 때 제가 경험했던 것에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아는 분야나 인물을 택해서 그로부터 영화를 풀어나가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인물 관계도 선후배 사이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경수야, 우리 사람 되는 거 힘들어. 힘들지만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 응?”(‘생활의 발견’에서 자기가 챙겨야 할 몫을 확실하게 챙겨가는 김상경에게 선배가.)



-감독님 영화 중 가장 유명한 대사는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위의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극 초반에 이 말을 선배로부터 들었던 경수(김상경)는 춘천에 가서 다른 선배에게 이 대사를 자기의 말처럼 고스란히 옮기기도 하지요. 이 인상적인 대사는 어떻게 쓰신 겁니까.



“그건 그 당시에 제가 술자리에서 그 비슷하게 하고 다녔던 말이에요. ‘생활의 발견’을 완성하고 나서는 다신 그 말을 안 했죠. 영화에 써놓고나서 감독이 그 말을 직접 하면 너무 웃길테니까요.(웃음)”



-그땐 그런 무시무시한 말을 왜 하셨어요?(웃음)



“의미 그대로에요. 사람되기 힘들다, 그렇다고 괴물 되진 말자.(웃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웃음)



“뭐, 기대치가 너무 높지 않으니까 편하게 듣는 거 같더라고요.(웃음) 그래도 괴물까지 타락하진 말자고 하니까 ‘그 정도는 긴장하자’란 생각들을 했을 거에요.”



-주로 스태프들에게 그 말을 하셨군요?



“그렇죠.(웃음)”



“근데, 그 사람 이야기 하지 말래요? 그 사람, 우리하고 다른 사람이거든요. 그 사람에겐 우리한테 없는 게 있어요. 정말로 남들을 위해서 일만 하는 그런 사람이에요.” “미안한데, 나 그런 거 안 믿어요.”(‘생활의 발견’에서 추상미가 남편에 대해 언급하자 경수가 대답.)



-감독님의 영화에선 이른바 당대 사회의 정치적 문제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생활의 발견’에서 선영(추상미)이 운동권 출신으로 교수가 된 남편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으로 언급할 때 경수(김상경)가 퉁명스레 “그런 거 안 믿는다”고 대답하는데, 그런 문답 속에 이 문제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 담겨 있는 듯도 합니다.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영화로 코멘트하시는 것에 관심이 별로 없으시죠?



“그래요.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떠드는 것만큼 그게 그 분들의 삶에서 중요하진 않은 듯 해요. 개개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다른 것들인 것 같으니까요. 그 사람들은 마치 정치적인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말하고, 다른 사람들 역시 다 정치적이길 바라잖아요? 정치적인 문제만 제대로 되면 세상이 바뀔 것처럼 말하고요. 그런 말을 들을 때 삶이 허하고 심심한 사람들이 쏠리기도 하고, 야심가들의 발언에 흔들리기도 하지요. 정치라는 것은 극단적인 과장입니다. 그 효과에 대해서도 과장하죠. 신념이나 이데올로기 자체도 너무 뾰족해서 실체라고 할까, 삶 자체를 포함할 수가 없는 꼴이에요. 정치는 결국 지지와 반대 둘 중 하나죠. 그런데 삶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천배 만배 복잡한 대칭쌍으로 움직이는 거죠.”



“젓가락 그렇게 잡아요?” “네.” “하나는 안 움직이게 이렇게 고정하는 거거든요?”(‘오! 수정’에서 이은주에게 젓가락 사용법을 가르치는 정보석.)



-감독님의 초기 영화는 카메라 움직임이 극도로 적습니다. ‘강원도의 힘’에선 카메라가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어 세번째 영화인 ‘오! 수정’부터 다섯번째 영화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까지는 이동 카메라 쇼트가 없지는 않지만, 역시 거의 대부분 고정 카메라로 찍혔습니다. 그러다 여섯번째 영화 ‘극장전’부터 카메라워크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동 쇼트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첫 쇼트부터 줌을 쓰는 등 상대적으로 카메라의 움직임을 많이 허용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경향은 최근작인 ‘해변의 여인’과 ‘밤과 낮’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카메라를 다루는 방식이 이렇게 달라진 것은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이야기의 특성에 따라 카메라워크를 달리 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카메라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 자체가 변하고 있는 건가요.



“둘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변화할 때 그 계기가 꽉 차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타입이에요. 초기 작품들에서 계속 고정 쇼트로 장면을 찍으면서도, 움직임이나 카메라 앵글의 변화에 대한 욕구 같은 게 있었는데, 그렇게 할 수 있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던 거죠. 사실 다섯번째 영화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찍을 때 속으론 줌을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안 썼거든요? 기다리다가 물이 차면 그 다음 항아리로 옮겨가듯, 결국 그 다음 작품인 ‘극장전’에서부터 그렇게 한 거죠. 대답을 하다보니, 말씀하신 것 중에선 후자 쪽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거긴 너무 어둡지 않아?” “아냐, 니들이 몰라서 그래. 여기서 보면 느낌이 얼마나 신비로운데.”(‘강원도의 힘’에서 가지고 있던 카메라로 오윤홍과 친구의 사진을 찍어주던 또 다른 친구가 오윤홍의 물음에 대답.)



-그럼 카메라를 어디에 둘 것이냐의 문제는 어떤가요. 감독님은 특정 장면을 찍을 때 어떤 위치에 카메라를 두십니까.



“제게 가장 좋아보이는 앵글을 직관적으로 택합니다. 제 생각에 아름다운 앵글은, 관객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전에 보았던 영화나 사진을 떠올리지 않게 하는 앵글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루고 있는 요소들이 압축적이고 경제적인 앵글이 제게 가장 아름답게 보여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지나치게 예뻐서 관객으로선 예전에 본 장면이 환기되는 경우가 있어요. 이전 영화의 장면을 환기시킨다는 것 자체가 관객의 기억에서 특정하게 건드리는 감정이 있다는 거죠. 저는 그런 게 싫은 겁니다. 그 속에 아무 것도 없고, 무언가를 환기시키지 않는 앵글이 좋은 앵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페인 거장) 루이스 부누엘이 멕시코에서 ‘나자린’을 찍을 때의 에피소드를 읽었던 게 기억납니다. 어느날 부누엘이 조금 늦게 촬영장에 도착했더니, 카메라 기사가 멋지게 구도를 잡아놓고 의기양양해서 기다리고 있었다지요. 그러자 부누엘은 그 카메라를 180도로 돌려서 아무 것도 없는 황야를 향하게 하고 영화를 찍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부누엘은 소위 예쁘고 멋진 구도가 가진 상투성을 혐오한 것이겠죠. 감독님의 경우도 그와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앵글은 예쁠수록 나쁘죠. 그 장면을 보는 관객에게 뭔가를 덧씌우는 것이니까요.”



“조금만 더 긴 호흡으로 기다리자.”(‘강원도의 힘’에서 오윤홍이 발견하고 지우는 아파트 계단 옆 벽의 낙서 글귀.)



-요즘 대부분의 한국 영화는 편당 쇼트 수가 1000개가 넘잖습니까. 작년 개봉했던 ‘세븐 데이즈’ 같은 경우는 쇼트 수가 무려 4000여개까지 되지요. 반면에, 감독님은 쇼트의 지속 시간이 긴 롱테이크를 선호하시죠. 그 중에서도 평균 쇼트 길이가 가장 긴 영화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입니다. 제가 이 영화 쇼트의 평균 길이를 계산해봤어요.(웃음) 그랬더니, 쇼트 당 평균 지속 시간이 무려 1분41초나 되던데요?



“하나의 씬 안에서 만드는 사람이 특정 앵글을 통해 집중해야 할 것을 보는 사람에게 정해서 알려주는 것보다는, 보는 사람의 시선이 좀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롱테이크를 선호해요. 또한 롱테이크로 찍으면 테이크의 지속 시간이 길어지면서 배우들 연기에서 창조적인 우연이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이 커지죠. 감독도 의도하지 못했고 배우도 의도하지 않았던 무엇인가가 나올 수 있다는 거죠. 결국 롱테이크에서 카메라는 우연을 포함한 배우의 일회적인 연기를 포착하는 기계 같은 거에요.



그런데 만일 커트를 나눠서 찍으면, 감독이든 배우든 계속 반복할 수 있는 안전한 연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생겨요. 혹시 다시 찍게 되면 같은 연기를 되풀이해야 하니까요. 연기에는 반복할 수 없는 게 훨씬 더 많아요. 한 번 하면 그걸로 끝인 경우도 정말 많죠. 그런데 커트로 나누게 되면 그걸 포착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그리고 롱테이크를 선호하는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자면, 저는 기질적으로 공을 들여서 커트를 나눠가며 찍는 게 맞지 않기도 해요. 사실 저는 그 두 가지 이유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기질적으로 나눠 찍는 게 귀찮았기에 사후에 다른 좋은 이유를 발견해낸 것인지도 모르죠.(웃음)













'밤과 낮'의 홍상수 감독. ⓒ 이동진닷컴-베가스튜디오 김현호



“제가 구름을 그리거든요”(‘밤과 낮’에서 화가인 김영호가 프랑스 유학생 서민정에게 자신이 즐겨 그리는 그림에 대해 설명.)



-한 감독의 영화들을 계속 보다 보면, 흡사하게 반복되는 특정 디테일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생활의 발견’에서는 춘천세종호텔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서 세 인물이 식사하며 대화하는 장면의 끝에서 산 위에 가득한 구름을 인상적으로 잡아낸 인서트 쇼트가 나옵니다. 이 장면은 거의 구름 위주로 화면이 짜이도록 구도를 잡아 눈길을 끄는데, ‘밤과 낮’의 후반부에서 성남이 그린 구름 그림을 보니 ‘생활의 발견’의 그 쇼트가 그대로 떠오르더군요. “아, 어쩌면 ‘생활의 발견’의 저 장면이 감독의 무의식 속에 오래도록 잠복해 있다가 ‘밤과 낮’에서 저렇게 표출된 것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 때문에 관객으로서 무척 흥미로워지는 거죠. 그리고 ‘밤과 낮’의 꿈 장면에서 성남은 유정의 발가락을 빠는데, 같은 디테일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나옵니다. 당시에 무척이나 인상적인 묘사여서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거든요.(웃음) 감독님은 러브 신을 찍을 때 카메라를 거의 이동시키지 않는데, 예외가 되는 게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화실 장면이었죠. 화실에 찾아간 문호(유지태)가 선화(성현아)와 소파에서 키스하는 쇼트는 카메라가 벽에 걸린 그림에서 천천히 내려와 두 인물을 잡으면서 시작되니까요. 그런데 같은 카메라 워크가 ‘밤과 낮’의 종반부 성남과 성인의 침대 장면에서 반복되는 것을 보고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이후 러브 신에서 그런 카메라 움직임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처럼 감독님의 이전 영화들에서 보았던 특정 디테일이나 요소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그런 것에 대해 부담감을 갖고 계시나요.



“이전의 제 작업을 의식하진 않습니다. 제게 디테일이란 그냥 그렇게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니까요. 이전과 비슷한 디테일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선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해요. 말씀하신 성남의 꿈 장면의 경우, 그 부분을 쓰고 찍을 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떠올린 적이 없어요. 발가락과 입만 본다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똑같은 자세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걸 요소 자체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온 디테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 문제가 된다고도 생각하지 않죠. 저는 하나의 신에서 배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두 장면은 서로 구체적인 배열이 다르니까요. 그것들을 연결지어서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한들 그게 관람에 방해가 될까 싶기도 해요. 그보다 제게는 적합한 디테일이냐 혹은 새로운 배열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영실씨, 왜 그 영화에서 실명을 쓰셨어요?”(‘극장전’에서 배우인 엄지원과 함께 술을 마시던 김상경이 그녀에게 불쑥 질문.)



-감독님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이름을 보면 거의 대부분 아무런 느낌을 주지 않는 이름들입니다. ‘오! 수정’에서 제목으로 쓰였기에 인상에 남는 수정이란 이름을 제외하면, 영수 상권 재훈 동수 문호 성남 같은 남자들 이름이나 영실 명숙 선화 문숙 유정 같은 여자들 이름은 따로 기억나기엔 너무나 평범한 이름들이지요. 흡사 캐릭터들을 서로 구분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호 같다는 느낌까지 있어요. 인물의 이름을 짓는데 별다른 의미를 두진 않으시죠?



“이름에 어떤 상징이나 함의가 포함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듯 해요. 남자 이름에 ‘수’ 자가 많은 것은 저희 형제들이 ‘수’ 자 돌림이라서 그래요. 영수(‘오! 수정’)는 저희 형 이름이고, 동수(‘극장전’)와 경수(‘생활의 발견’)는 사촌 형들 이름이에요.”



-그럼 작명에 의미가 있는 거네요.(웃음)



“의미 없어요. 그 이름을 가진 영화 속 인물들과 저희 형들은 성격적으로도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요. 제 이름을 따서 상수라고 붙일 순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한 것일 뿐이에요.(웃음)”



-어차피 캐릭터에 이름을 붙여야 하니까 주변에서 편하게 따왔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 말이 맞아요. 그리고 형제 이름을 따온 경우를 제외하면, 좀 어린아이 같은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어요.”



-어떤 이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를 들어서 성남(‘밤과 낮’)은 남성을 거꾸로 한 거에요.(웃음)



-그럼 성남의 아내 이름인 성인은요?



“한성인. 즉 서울에 있는 사람의 뜻이에요.”



-그렇다면 최소한 기호처럼 이름을 지은 것은 아니네요.(웃음)



“무슨 뜻이 있긴 있어요. 유정(‘밤과 낮’)은 ‘정이 있어라’ 해서 지었죠.(웃음) 그래도 이름은 그냥 이름일 뿐이에요. 이름에는 독특한 뉘앙스가 있잖아요? 그게 워낙 지독해서 그걸 피할 수 있는 이름을 제가 찾는 듯 해요. 때에 따라선 인물의 성격을 미리 잡기 위해 지은 이름도 있어요. 문호(‘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그 이름의 뉘앙스가 그 캐릭터에 맞는 것 같아서 지은 경우죠. 인물마다 이름을 정한 이유가 달라요.”



“뭐 하시고 싶으세요?” “저요? 혹시 서커스 공중 곡예사 아세요?”(‘생활의 발견’에서 김상경이 무용가인 예지원에게 다른 꿈에 대해 질문.)



-영화 일 외에 하고 싶으셨던 일이 있었다면 어떤 것입니까.



“어려서 유일하게 되고 싶었던 것은 작곡가였어요. 그런데 음악 훈련을 거의 받지 못했으니 물건너갔죠. 물론 아주 어렸을 때는 남들처럼 과학자나 만화가를 잠시 꿈꾸기도 했고요.(웃음) 요즘은 몇가지를 동시에 꿈꿔요. 직업으로서보다는 그냥 시골에 살면서 피아노 연습을 좀 하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곡을 칠 수 있을 때까지 피아노 교습을 차분하게 받고 싶은 거죠. 그냥 욕심입니다. 하

클로저  10.05.14 이글의 답글달기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오! 수정'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봤는데
'오! 수정'을 보고 다시는 홍상수 영화는 절대로 안 보겠다고 결심했었죠.
같은 여자로서 보는 내내 심기가 상당히 불편했었어요.
근데 고현정과 김태우가 주연이란말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결국 봤는데
전작들과 달리 좀 편안하게 볼 수 있었어요.
역시나 '뭐가 진실일까..'라는 궁금증을 남기지만
오히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생각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긴듯.

티아레  10.05.16 이글의 답글달기


몇년 전 <해변의 여인>을 처음 봤고, 얼마전 그의 나머지
영화들을 몰아서 다 보았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까지.

대중의 기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그의 영화에서 감동, 반성, 교훈
같은 건 기대하지 않지만, 대신 그가 앵글을 통해 부각시켜 보여
주고자 하는 인간사나 인간 성정의 단면들도 의미있게 다가와요,
제겐.
작업도 꾸준히 하는 걸 보면 치열하게 사는 사람 같고, 무엇보다
솔직함이 느껴진달까요. 특이한 인물이긴 한데 위선 떨 위인은
아닐 것 같은. 그런 면에서 묘한 안도감이나 편안함을 느끼죠.

그는 대사를 쓸 때 자신과의 심리적인 거리가 확보되야 쓰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선, 그러니까 거기에 꽂혀있는 상태에선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홍상수 영화들이 평균 상온 이하의 냉랭함을 유지하는 건 그가
인물들에 대해 견지하는 그 특유의 거리감에서도 비롯되는 것
같아요.

간혹 자신이 하고픈 말을 인물들을 통해 하기도 하지만, 대개
그가 정작 의도하는 건 "상투성 속에서 허우적되는 인물의
모순"을 보여주는 거죠. 그걸 봄으로써 우리 자신들이 갖고 있는
온갖 통념이나 이미지의 실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져보라는 것
같아요.

프러시안블루_Opened  10.05.18 이글의 답글달기

이동진의 글을 즐겨 읽으면서도..
그가 조선일보 기자라는게 못내 아쉬운 나는 못난이.ㅎㅎㅎ

티아레  10.05.18 이글의 답글달기

블루님은 욕심쟁이시네요^^

그는 1993년에서 2006년까지 조선일보 영화부 기자였고 지금은
이동진닷컴을 운영하고 있지요.
그의 경력이 특이하긴 한지 대학의 저널리즘 관련 수업시간에도
다뤄지고 있고, <매스미디어와 사회>라는 교재의 기자의 독립성
단원에도 "예) 조선일보 이동진 기자" 라고 언급되어 있다고
하네요.

저는 그의 글들을 봐요.
그는 20년 가까이 영화평론가 겸 영화전문기자로 꾸준히 왕성하게 일하고 있는 사람이지요. 그의 노고의 결과들인 그의 저서나 글들
을 애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향유할 따름
이에요. 그의 글에서만 얻을 수 있거나 교감되는 뭔가가 있기 때문
이고 그건 제게 소중한 경험들이거든요.

좀 아쉽기는 하지만 정치/사회부 기자도 아니었던 그의 소속을
그다지 문제삼고 싶지는 않아요.
그가 누구에게 월급을 받아 밥벌이를 했는가 까지 따질 만큼 제
자신 스스로 의롭지가 않다는 얘기죠^^

좀 다른 얘기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크고 작은 기업이
나 조직들에 몸 담고 있는 개인들이 자신의 소속에 대해 얼마나
자부심을 느끼고 있을까 싶기도 하구요.
이윤을 내야하는 모든 조직은 다 무언가를 남에게 팔아야 하고 그
럴려면 호객, 현혹, 과장, 왜곡, 강매 등의 민폐를 끼치지 않는
조직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걸 우리가 서로 감내하는 건 인간살이라는 게 때로 서로의 도움
을 받을 때도 있지만 서로 민폐를 끼치는 측면도 불가피하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잖아요.

인간은 무척 다면적인 존재 잖아요. 정치적 성향도 여러 면들 중
하나 정도로 생각해요. 정치적 색깔이 한 인물을 판단하는 상당히
커다한 잣대였던 시절도 있었지요. 나와 다르면 속으로 선을 긋거
나 껄끄러워하기도 했구요.

지금은 사람을 포함한 그 무엇에도 판단이나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
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들이 있어도 그걸 예전보다 자연
스럽게 받아들이는 거 같아요.
서로의 삶에는 서로가 모르는 나름의 내막이나 이유, 배경이 있고,
각기 다른 경험, 성향, 사고방식, 가치관 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는 걸 감안하면, 사실 몇가지 면이라도 비슷해 소통이 가능한 사람
을 만나는 것만도 다행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누군가가 무엇을 말하는가 보다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보는 편이
고, 진정성이 느껴지면 좀 달라도 마음을 열어 받아들일 건 받아들
이는 편인데 그럴수록 제 자신이 조금씩 편협함에서 벗어나는 걸
느껴요.

그가 쓴 글에 달린 댓글들 중에서 그의 경력을 이유로 그에게 인신
공격을 하거나 노골적인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봐요.
정치적 발언이나 입장 표명 한번 안해 본 그가 모르긴 해도
직간접적인 모욕을 무수히 당하며 유명세를 톡톡히 치루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프러시안블루  10.05.19 이글의 답글달기

여유가 나서 긴 글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이동진은 영화를 무한까지 "미분(微分)"하네요.
섬세하고 성실하게....

홍상수 영화를 좋아할뿐더러
모든 영화를 봤다고 생각했는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끝으로 본게 없었네요.

언젠가 주말에 날 잡아서 몇 편을 몰아쳐 볼까합니다.

좋은 글 고맙구요.
감독 인터뷰는 아니지만,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에 대해 쓴 글을 추천합니다.

http://blog.daum.net/valcun/3265891

티아레  10.05.20 이글의 답글달기

전에 읽어본 글인데, 추천해주신 이 글은 제가 전에 본 글에
내용을 더 덧붙여 다시 쓴 글 같은데 확실치는 않구요.

저도 좋은 글 감사하구요,
노희경의 이 글을 읽으며 전처럼 또 울었어요.
이제 우는 거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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