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기한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습관적으로 다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뭐 대단한 결심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싶다'
라는 생각만큼이나 아무렇지도 않고 가볍게
이따금씩
'죽고 싶다'
는 생각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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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힘들 때는
정말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죽고 싶다고 아무리 생각해봤자
결국 나는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죽기에는
삶에 대한 욕구가
너무나 큰 사람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자꾸 죽고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나에게 별로 좋지가 못하다.
결국에는 하지도 않을 일 때문에
시간도 낭비하고
기분도 버리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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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빨리 죽고 싶다면,
내가 가장 빨리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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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은 일을 할 때의 삼십분은
마치 두 시간 같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두 시간이 마치 삼십분 같이 느껴진다.
행복한 시간들은
항상 너무 빨리 지나가곤 한다.
괴로운 시간은 느리게 지나가고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행복했던 지난 한 학기는
마치 몇 주밖에 안 되는 것처럼 지나가버렸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도 행복하게 살면 된다.
그렇다면 마치 1년이 한 달 같을 것이고
10년도 1년 같이 금방 지나가버릴 것이다.
내가 만약 60년을 살 수 있다고 가정 한다면
정말 행복하게 산다면
60년을 6년 같이도 살 수 있다.
정말로 죽고 싶다면
미치도록 행복하면 된다.
그러면
보내기 싫은 시간도
훌쩍 지나가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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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면
오히려 행복하기가 두려워질 정도다.
죽음까지의 거리를 좁히려면
적당히 행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어차피 언젠가는 죽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21년을 살았던 것처럼
눈 깜짝할 새에 나는 할머니가 되고
죽어버릴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미련해질 정도로.
앗,
글을 쓰다가 또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버렸다.
이렇게 죽기 싫으면서
뭘 또 죽고 싶다는 건지.
이러면 또 살고 싶어진다.
그러면 이 힘으로 또 살면 된다.
죽음을 상상해버렸으니,
가을 방학의 근황, 이나 들으면서
마음을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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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태어난 지 딱 21년 째 되는 날이다.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시간이 훌쩍 흘렀네.
죽고 싶다면
행복하자.
그러면 나의 소원대로 빨리 죽을 수 있을 거야.
조금 더 살고 싶다면
조금 덜 행복해서
속도를 조절하면 되.
어차피 주어진 시간은 같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보내느냐의 차이일 뿐.
오래 살고 싶다면
최대한 불행하게 살면 되고.
죽고 싶다고 생각만 하는 건
가장 늦게 죽는 방법이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