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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일기 한줄일기 내일기장
李하나
 빛나는 일기   trois.
조회: 3033 , 2013-10-31 14:51


확실히 새로운 것을 겪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오늘은 가장 친한 친구의 학교에 놀러를 왔는데,
처음 오는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보다도 더 편함을 느꼈다.
아마, 가장 친한 친구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오랜만에 진짜 '학교'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학교를 다닐 때 이후로
학교에 소속감을 느껴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잠시 잊었던 느낌을 되찾은 것 같다.

나는 늘 이 느낌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느낌이 없어 학교가 싫었고,
이 느낌이 없어 학교를 다녀도 외로웠다.

이런 친구가 우리 학교에도 있다면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만나도
전혀 외로울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사람과의 연결, 유대, 관계.
정말로 중요한 것 같다.
이게 없이는 행복해질 수가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친구 하나만 가지고도 이렇게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 느껴지는데,
가족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고
내 주변에 이런 친구들이 많이 있다면
내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노력해야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가족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방금 전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네 할 일만 하지 말고, 동생도 좀 신경 써. 요즘 수시 쓰느라고 애먹는 모양인데.'
이 말을 듣자마자 기분이 확 나빠졌다.
엄마가 자주 쓰는 말이었다.



'네 할 일만 하냐'
나는 이 말이 정말로 듣기가 싫었다.

'너는 너 학교 다닐 생각만 하고 엄마 일 하는 건 생각 못 하냐'
는 식의 뉘앙스를,
지겹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명백히 엄마의 화법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할 일'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화를 내면서
동생한테 신경 쓰라는 말은 알겠는데
내가 내 할 일 하는 것 가지고는 뭐라고 하지 말라고.
나는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거라고.
잠시 말씨름이 오갔다.

엄마는 또
'그럼 엄마가 그만한 잔소리도 못하냐'
고 했다.
항상 똑같은 레파토리.

'넌 조금만 뭐라고 해도 꼭 그러더라.'
'엄마가 잔소리 좀 할 수도 있지, 그 정도도 못 하냐'
'앞으로 너한테 한 마디도 안 한다, 그럼'

등등.


전 같았으면
'아 알았어, 끊어. 말 하기 싫어'
했을 테지만,
오늘은 끝까지 말을 했다.


'조금만 뭐라고 해도 꼭 그러는 게 아니라, 지금 엄마가 나한테 한 말이
나는 기분이 나쁘다고. 잔소리는 해,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내가 내 할 일 하는 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건 진짜 기분 나빠.
내가 언제 한 마디도 하지 말라 그랬어,
내 할 일 하는 거 보고 뭐라고 하지 말라 그랬지.
다른 말에는 화 안 내잖아, 나.
근데 그 말은 진짜 듣기 싫다고.
잔소리 좀 할 수도 있지가 아니라, 내가 기분 나쁜 걸 생각해달라고.'

'그리고 내가 언제 내 할 일만 했어'

'너 맨날 늦게 들어오고 네 할 일만 하잖아.'

'늦게 들어오는 거는 학교가 멀어서 그러는 거고.'


엄마는 점점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학교 멀리 다녀서 힘들지 않냐고 하고,
기숙사비 대줄 테니까 들어가라고 하고.


이게 우리 엄마다.
신경질 내고 짜증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다가도
금새 다시 나를 걱정해주는.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오랜만에 엄마랑 다투고 화해하고 하니까,
엄마랑 다시 옛날로 돌아온 것 같다.

그리고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우리 엄마는 말을 안 해주면 모르는 거지
말을 해주고 나면 잘 받아들여준다는.

그러니까,
나는 정말 아빠 때문에 힘들었고
엄마 때문에도 힘들었다는 걸,
천천히, 살살, 잘 설명하면 받아들일 거라는.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엄마와 함께 가족 치유 프로그램 참가하기!




.
.


끊임없이 꿈을 꿀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음에 감사한다.
꿈을 꿀 수 없었다면
여러 가지 상황들에 짓눌려
웃을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앞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항상 꿈을 꿨다.
꿈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늘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왔다.

이 거지 같은 집, 거지 같은 아빠로부터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 거지 같은 기억, 거지 같은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정말로,
간절히,
내 전부가 이것을 원한다.
이 힘으로 나는 산다.


.
.

오랜만에 친구가 있는 공간에 있으니
마음이 안정되면서
내 일기에서도 빛이 나는 것 같다.

사실 이 친구에게는 정말 비밀이지만,
고등학교도 그 친구를 따라간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뭐, 여러 가지 요인이 있기도 하지만 그게 가장 컸다.

중 3때,
친구랑 같이 타지역 고등학교를 가기로 했지만
성적 때문에 친구가 포기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구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도 가지 않을래, 했던.
결과적으로는 잘 한 선택이었다.
만약 그 입시 지옥으로 떨어졌더라면
지금 내가 어떻게 되었을 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 학교에 비하면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물론 흔한 공립 일반계 고등학교였지만,
입시 현실은 마찬가지였지만,
친구가 있었고,
좋은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었다.



.
.

나는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모두 이뤄낼 수 있다.
내 소원들,

아버지와 담판을 짓는 것
- 그에게 내 주장을 펼쳐보이는 것. 


어머니와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 나한테 이런 이런 일이 있었어, 엄마.
아빠는 나한테 이렇게 했고, 저렇게 했어. 제대로는 몰랐지? 너무 힘들었어.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어.
최선을 다해 연기를 했던 거야. 정말 힘들었어.

제발 내 얘기를 들어줘. 징그럽다고 하지 말고.
물론 들으면 괴로울 걸 알지만, 내가, 엄마 딸이 겪은 일이잖아.
그러니까 제발 들어줘. 참아줘.

엄마가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 있을 거라는 걸 잘 알아.
그걸 내가 지금부터 설명해줄게.
사실 그동안은 나조차도 이해가 안 가서
설명을 할 수가 없었어.
그런데 이제는 공부를 했으니까,
내가 공부한 거랑, 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랑, 해서 
말 해줄게.


왜 내가 도망치거나, 집을 나가거나, 엄마에게 진작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사실 나도 그랬어.
나는 병신이었나. 진짜 즐긴건가. 창녀인 건가.
나도 즐겼고, 안 도망갔으니 문제 삼을 자격이 없는 건가.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
나 자신도 깨달았고, 사람들도 상담 선생님들도 모두 그게 아니래.
내가 너무 어렸을 때부터 그런 일을 겪고,
아빠한테 협박도 당하고 맞기도 해서
무서워서 그런 거래. 공포에 눌려 있어서.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엄마랑 동생한테 너무 미안했어.
내가 말 하면 이혼할 것 같고,
아빠가 감옥에 가면 우리가 다 거지가 될 것 같고,
동생한테 아빠 뺏고 엄마한테 남편 뺏는 것 같아서
너무너무 무섭고 슬펐어.
그냥 내가 참으면 되는데,
내가 다른 사람들을 슬프게 만들면 안 돼.
라고 생각했었던 거야.
그랬던 거야, 그 어렸던 엄마의 딸은.

반항한 적이 없는지 궁금하지?
물론 많이 했어.
가장 첫 번째 반항은 '싫어'라고 말한 거였어.
초등학생 때였는데
아빠가 나를 안 방으로 데리고 가서 옷을 벗기려고 했어.
그래서 내가 '싫어'라고 했지.
그랬더니 아빠가 주먹을 꼭 쥐고는 내 얼굴을 때렸어.
딱 한 대였어.
나는 머리가 울리고, 너무 아프고, 무서워서
고개를 푹 숙였어.
그랬더니 아빠가

'고개 들어.'
라고 했어.
나는 고개를 들었지만 눈은 피했어.
아빠는,

'내 눈 봐.'
라고 이야기했어.
나는 정말 보기 싫었지만, 그 누런 눈을 쳐다봤어.
그랬더니 아빠가


'돼, 안 돼'
라고 물었어.
해도 되냐고, 안 되냐고.
나는 '안 돼'
라고 대답했지.

답이 뭔지는 짐작이 가지?
다시 한 대.


'돼 안 돼'
대답하는 게 너무 무서워서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어.
입술을 꾸욱 깨물고 말이야.
시선은 떨어뜨려서 아빠의 곤색깔 작업 점퍼를 보았지.

언성이 조금 높아졌어.


'돼냐고, 안 돼냐고.'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어.
선택은 둘이었거든.
맞든지,
된다고 하든지.

둘 다 너무너무 싫었어.
그 때서야 아빠는,

'하나야, 아빠가 하나 사랑하는 거 알지?'
라고 이야기했어.
나는 울어버렸어.
울면 봐주지 않을까,
불쌍하게 생각해서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지만 아빠는 왜 우냐고 눈물을 닦으면서
'괜찮아. 말 잘 들으면 안 때리잖아. 왜 말을 안 들어서 맞고 그래. 아빠 성질 알면서.'
라고 말했어.

그리고 나는 결국 속으로 그를 욕하면서도
그에게 몸을 내맡기고 말았어.
초등학교 3학년이던, 
엄마의 딸이 말이야.

그 외에도 여러 번 반항한 적이 있었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그 땐 수요일마다 4교시였거든.
3시에 학교가 끝나면 나는 집에 가야만 했어.
왜냐하면 아빠가 집에 와서 나를 성폭행하려 했기 때문이지.
그 날, 난 너무나 집에 가기가 싫은 거야.
정말 가기가 싫었어.

그래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어.
친구랑 포스터 그리기를 해야 돼서 집에 못 가겠다고.
아빠는 화를 냈지.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다고 용기를 내서 말했고,
아빠는 '너 이따 봐, 죽었어.'
라고 이야기했어.

나는 생각했어.
그래, 네가 나를 어쩔 거야.
나는 내가 해냈다는 생각에, 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앞으로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아주 기분이 좋아졌지.
그 날 밤,
퇴근한 아빠는 방에 있던 나를 불러냈어.
기억 나?
성적표를 가지고 오라고 했던 날 말이야.
평소에는 내 학원 성적에 별로 관심도 없더니,
갑자기 성적표를 가지고 오라는 거야.

난 직감적으로 알았지.
낮의 일에 대한 보복이구나.

하지만 난 꽤나 자신만만했어.
왜냐하면 나는 성적이 좋았거든.
국어 96, 영어 86, 수학 95.
영어가 살짝 떨어지긴 했지만,
다시 올리기에는 충분했지.
게다가 난 아직 초등학교 5학년이잖아?

그래서 당당하게 성적표를 내보였지.
아무 말도 못 할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성적표를 한참 보더니
아빠가 하는 말이란,
"점수가 이게 뭐야. 회초리 가져와"였어.

어이가 없었지.
트집을 잡을 게 없어서.
나 원 참,
나는 속으로 비웃었어.
그리고 때릴 테면 때려봐라,
고 생각하면서 자를 갖다줬지.

손바닥을 내밀라고 하고 자를 세우더니
'너는 열 달 동안 공부를 안 했으니까, 10대를 맞아. 알았어?'
알았다고 했어. 
그 때가 10월이었나봐.

아빠가 손바닥을 때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왜 나를 때리는 지 안 나는 이를 앙다물었어.
절대로 잘못했다고 하지 않겠다고.
때려보라고.
내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고.
잘못은 니가 했다고.

내가 아무 반응없이 맞고만 있으니까
화가 났는지
아빠는 갑자기 나를 막 때리기 시작했어.
나를 막 밟더니,
내가 쓰고 있던 안경을 벗기고
다시 마구 때렸어.

'너는 때려라, 나는 맞는다냐? 어?'
이러면서.


엄마는 그 옆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다가,
나한테 그랬지.
'얼른 잘못했다고 해, 얼른'


나는 버텼어.
싫어. 내가 왜.


하지만 계속 아빠가 때리는데
아프고 무서워서,
'잘못했어요'
하고 빌고 말았어.
울면서, 무릎을 꿇고, 
잘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잘못했어요.


나는 너무 억울했어.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왜 이렇게 나를 때리는 거야?
엄마는 눈 앞에서 아빠가 나를 때리는데 왜 말리지도 못 하는 거야?

그냥 말 해버릴까?
여기서 확 불어버리는 거야.
그럼 어떻게 되나 볼까?



하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어.
잘못했다는 말 밖에는.


말 하자면 끝이 없지만,
하나만 더 말 할게.
중학생 때였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2학년인가 그랬나.
중 1 때 내가 엄마한테 말했었잖아, 아빠가 나한테 어른들이 하는
이상한 행동 한다고.
그래서 한 1년 주구장창 싸우다가 
다시 화해하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한 다음 말이야.

하지만 아빤 절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그 날 밤엔
엄마랑 아빠가 같이 뽑기를 하러 나갔었어.
그런데 아빠가 술을 먹었는지
집으로 전화를 한 거야.
잔뜩 취해서.
엄마는 어디 간 건지,
낭패라고 생각하면서 전화를 받았지.

아빠가 말했어.
안아보게 해달라고.
여기서 안아보게 해달라는 건 포옹을 뜻하는 게 아니야.
삽입하고 사정하게 해달라는 거지.
그래서 나는 싫다고 했어.
엄마한테 말해버릴 거라고.
그만 하라고.

그랬더니,
'넌 집에 가서 봐, 죽었어, 개년아. 개싸가지야. 넌 뒤졌어.'
등등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는 욕을 잔뜩 하고는 전화를 끊었어.
나는 긴장된 상태로 집에 있었지.
제발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라.
엄마랑 같이 들어와라, 제발.


그런데 웬걸,
아빠 혼자 들어온 거야.
직감했지. 죽었다.
엄마는 대체 어디 간 거야. 빨리 와라,
제발 주차하고 있는 거여라,
슈퍼 갔다오는 거여라.
금방 돌아올 거면 아빤 나한테 손 못 댄다.


하지만 엄마는 어디 멀리 갔었나봐.
아빠가 나보고 방에서 나오라고 했어.
그리고는 내 머리채를 휘어잡고 화장실에 쳐박았지.
세면대 아래로 넘어진 내가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아빠의 발이 내 배에 꽂혔어.

아빠는 소리를 질렀지.
"죽어!!!"
"죽어 이 년아!!"

하면서 나를 마구 밟았어.
정말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러다가 
기다랗고 큰 휴지통을 집어들어 머리 뒤로 넘기더니
내 머리에 그걸 내다 꽂는 거 있지?

어떻게 됐겠어,
쓰레기통은 산산조각이 났지.
그렇게 한참을 분풀이를 해대다가
진정이 됐는지,
나보고 나오라고 했어.

쓰레기통을 깨다가 자기 손이 다쳤는지
피를 흘리고 있었어.
그러면서 나랑 동생을 앉혀놓고는
오늘 일은 엄마한테 비밀이라고,
넌 맞은 적 없는 거라고.

나는 속으로는 욕을 했지만,
엄마가 돌아오자 역시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았어.
엄마가 화장실 꼴을 보더니
또 애를 때렸냐고 물었어.

아빠는 아니라고,
휴지통은 벽에 집어던진거라고.
보라고, 나만 다치지 않았냐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더라고.

나는 입술을 씹으면서,
외면해버렸어.


'그래.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나는 여기 없다.
신경쓰지 말자, 화내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주문을 외듯이.
안 그러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거든.




내 저항은 항상 맞는 걸로 끝이 났어.
집은 왜 안 나갔냐고?
사실 집을 나갈 생각도 여러번 했었는데,
무서웠지.

TV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가출 청소년들이 
탈선과 성매매, 범죄의 표적이 되거나
범죄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방송했어.
나도 집을 나갔다가 그렇게 팔려가서 강제로 매춘을 하게 되면 어떡하지,
범죄의 표적이 되면 어떡하지
내가 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어떡하지
굶어 죽으면 어떡하지.

정말 무서운 거야.
돈도 없겠다,
아는 것도 없겠다.

물론 나쁜 마음으로 가출 하고 싶었던 적은 있었어.
가출하고, 탈선해버릴 거라고.
그래서 나쁜 부모를 만들어버릴 거라고.
괴롭게 해줄 거라고.

근데 이런 생각이 곧 들더라.
그렇게 해서 내가 얻는 게 뭔지.
결국 망치는 건 내 인생이잖아?
당신을 괴로우라고 내 인생 내가 망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내 손해니까.
내가 잘 사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고의 복수라고 생각하면서
버텼어.

공부에 집중하면서.
공부는 참 좋은 친구였어.
뭔가를 외우고 문제를 풀다보면
괴로운 생각 같은 건 안 들었거든.
게다가 성적이 잘 나오면
아빠가 나를 해코지 할 수 있는 건수가 현저히 줄어들거든.
맨날 반에서 1,2 등을 하는데 공부 갖다가 나를 어떻게 해볼 수는 없는 거잖아?

공부는 참 유용했어.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
아빠가 있는 집에 들어가지 않을 훌륭한 변명거리가 되어주었으니까.
도서관에 가서 공부한다고.
공부한다는 딸을 아빠가 못 하게 하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니까.
그것까지는 뭐라고 하지 못했지.

그래서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어.
성폭력 당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서가 아니라,
그걸 나도 즐겨서 홀가분했던 게 아니라

괴로워서,
조금이라도 덜 맞으려고
정말 힘들게 집중하고 노력했던 거야.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던 거야.



그런데 왜 이제와서 이러는 건지도 궁금하지?
맞아, 궁금할 거야.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다 잊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런데 그거 알아?
나는 단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어.
다른 일에 집중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일을 잊고 묻기로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언젠간 끝나야 하고
언젠가는 풀어야 할 일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고,
그리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기억들은 나를 따라다니면서 놓아주지 않았어.

내가 아빠한테 성폭행을 당했다는 그 사실 자체가 나를 괴롭게 만들었고,
그런 기억들이 또 나를 괴롭혔고,
엄마의 반응과 아빠의 반응이 나를 또 슬프고 아프게 만들었어.
나는 그런 것들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어. 

그리고,
벗어나려는 노력을 쉰 적도 없었어.
늘 노력했고, 늘 고민했어.
그러니까 나는 지금 갑자기 이러는 게 아니야.
줄곧 준비해왔던 거야.

엄마한테 말 하는 건 갑자기지만.
엄마한테 이야기할 준비를 해왔거든.


그리고 또 뭐가 궁금할까?
나도 즐기지는 않았는지가 궁금하지?
여기에 대해서는 엄마한테 어느 선까지 설명해주어야 할 지는 모르겠어.
왜냐하면 사람이 겪지 않은 일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이 부분은 비단 엄마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심지어 나 자신한테도 말 하기가 꺼려지는 부분이야.

하지만 한 가지만 분명하게 이야기할게.
내가 내 신체에 가해지는 일방적인 자극으로 인해
쾌감 중추가 자극된 적은 있을 지언정

내 마음이 그 일을 원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내가 만약 원했던 일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괴로울 리가 없잖아?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
왜 나를 아빠로부터 분리시키지 않았는지,
어째서 현장을 목격하고서도 신고하지 않았는지.
나에게 그와 관련해서 왜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지.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해가 잘 안 가.
하지만 이해해볼 거야.
엄마를 위해서,
도 조금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위해서.

엄마를 미워하는 나의 마음을 끊어내기 위해서.
내가 그러고 싶거든.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의 말을 듣고 싶어.
사실 엄마는 친족 성폭력 집안의 전형적인 엄마 상이야.
그런 걸 보면 엄마는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겠어.
하지만 그 평범은 잘못된 평범이지.

어떻게 엄마랑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지는
조금 더 생각해볼게.
그리고 용기내서,
손 내밀어 볼게.

나중에 우리 제대로 이야기하자.
가족 치료 프로그램을 하면 좋을 것 같아.
어떻게 설득할 지 생각해서 다시 올게:)



.
.



이 소원.
이루어질 것이다.




내 마음의 에너지가 이들로 집중되어 있는 것은 맞다.
처음엔 이 에너지들을 삶의 중심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삶의 변두리로 잘못 향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지금은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이 문제들을 삶의 중추로 끌어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오히려 그게 더 옳은 것일 수도 있고.

그것들은 명백히 내 삶의 중추에 속할 자격이 있으니까.
조선시대 충신을 변두리로 귀향 보내듯,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어둠 속에 묵혀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충신은 위배를 가서도 충신이듯,
삶의 중추적 문제 역시 내가 어디다 구겨 넣어놓든
그 무게와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불러 올리자.
내 옆에 두자.
그 일의 무게만큼,
딱 그 중요성만큼
대접하자.
같이 가자.



.
.

내가 마침내 비로소 이 꿈들과 나란히 설 수 있을 때,
당당히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로 내보일 수 있게 될 때,
나는 마침내 영혼의 귀퉁이가 비어버린 공허한 영혼이 아니라,

내 몸의 모든 공간이
불순물 하나 섞이지 않은 완전한 나라는 존재로 꽉 찬
몸과 마음, 영혼이 모두 나를 이루는
그 완전한 나라는 존재로




오로지
이 순간에 속한
이 순간만을 위한 웃음을 지어보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