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텔라는 라틴어로, star 별이라는 뜻.
'인터스텔라'를 직역하면,
'별과 별 사이' 뭐 그 쯤 되겠다.
- 이 작품에서 별은,
'상태' 혹은 '환경'이라는 말과
대체 가능하다.
- '양자역학'의 개념이 등장한다.
근데, 뭐 새로운 건 아니다.
이 이론이 드럽게 복잡한데,
쉽게 말하자면 이런 거다.
'내가 관찰하기 전에는,
존재가 어떻다고 결정되지 않는다'
물리학 이론이라고 하기엔 뭔가..
정신이나 마음을 다루는 인지과학쪽이나,
포스트모더니즘같은 사상적 스멜이...
근데 이 개념이 지금 현대 첨단문명의
기초동력이다.
- 사실 양자역학이든 뭐든,
이 영화는 그게 핵심이 아니므로
디테일하게 알 필요는 없다.
- 단지, 양자역학 개념을
인문학적으로 번역한게 중요한데,
'상태를 바라보는 '관찰'이 중요하다.
그 '관찰'이 존재간의 '관계'를 규정하고
관계를 통해 '나란 존재가 증명'이 되며
그 증명으로 존재의 '중량(gravity)'감이 붙는다.
그리고 상태를 바라보는
'관찰'의 기본태도를 '사랑'이라 부른다...'
- 뭐 이런 식의 개념, 혹은 '세계관'이 중요하다.
(참고로, 이것 역시, 놀란의 세계관이라
추정한 '나의 해석'일 뿐이다...)
- 자, 그럼 논란, 아니 놀란의 이 영화는
왜 한국에서 이렇게 성공하고 있을까?
기본적으로 놀란의 영화는,
매우 '선동적'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선동적이려면,
'대안'이 있어야 하고
설득력까지 있어야 한다.
비판적 문제제기는 누구나 한다.
그런데, '그러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대안제시를 설득력있게 던지는 사람은 적다.
놀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지구라는 별의 문제, 환경적 문제는,
우리의 '사랑'이 담긴 '관찰'을 하는 순간,
상태가 '변화할 것이다'.
문제에서 도망치지 말 것.
문제를 잘 들여다 보면, (관찰하면)
문제의 '상태가 변한다'.
그럼 그 문제와 당신의 '관계가 바뀌고'.
그리고 당신의 존재가 '증명'이 되며
비로소 '중량감'을 획득할 것이다.
한 마디로 단순하게 말하자면,
'니가 주인니까, 포기하지 마! 그럼 바껴!'
이런 세계관이,
작금의 대한민국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게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
놀란의 영화는 매우 정치적이며,
또 매우 선동적이다.
(그렇게 읽힌다....)
- 그의 초기작 '메멘토'부터 던졌던 질문.
'불확정성을 극복'하는 문제.
기억? 기록? 이런 것들이
'존재의 증명'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묻는데서 시작.
'다크나이트' 시리즈를 통해,
'가치의 불확정성'에 대한 담론을
사회적으로 확장된 형태로 묻고 답한다.
그리고 시공간을 초월하는
'무의식'의 세계 (인셉션)를 지나며
세계의 불확정을 묻다가
이제는 '우주'의 영역까지 왔다.
놀란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