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1882 , 2020-01-09 07:26 |
내 마음의 옥탑방 - 박상우
2020.01.09.목요일
처음 이 소설을 접한 것은 수능특강 구석에 실려져 있던 한 문단이었다. 길지 않고 소설의 분위기만 느낄 수 있는 짧은 문장 덩이들. 무엇에 그토록 강렬하게 끌렸던 걸까.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문뜩 기억이 나고 잊고 있다가도 그 존재감이 마음 한 틈을 비집고 튀어나온다. 언제쯤이면 나를 읽어줄거냐, 너와 나는 닮지 않았냐고. 난 너를 위로해줄수도 더욱 더 비참하게도 만들 수 있다고. 그렇기에 더욱 더 끌리지 않냐 묻는다. 제목을 잊다가 갑자기 떠올라 친구에게 내용을 설명해 주는 와중 어이없을 정도로 발달된 검색 기술에 의하여 제목을 알게 되었다. 드라마도 있었다. 옛날 테이프 느낌이 앳되게 느껴지는 다정히 누워있는 남녀의 모습. 맞다. 내 마음의 옥탑방. 어이없으면서도 드디어 읽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은 들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부풀어 있던 기대감과는 썩 다른 소설이었다. 결말이 급속하게 마무리 되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고 첫째로 남녀 사이의 로맨스를 다룬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토록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인생을 살고 있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다니? 사랑이라는 감정에 부인하고 싶은 내 감정인지 그런 하찮은 감정은 믿지 않은 비관주의적 관념 때문인지 로맨스 소설은 잘 읽지 않는데 말이다. 어렸을 적 단 한번 놀러갔던 놀이공원이나, 옛날에 살았던 집에는 찾아가면 안 된다. 그 추억을 다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반짝거리며 빛나던 시절에 찍혔던 그 공간은 잘 닦인 원석이 되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아스라이 빛난다. 하지만 다 커버린 후에 함부로 발을 들인다면 원석은 깨져버리고 만다. 아련하게 빛나던 추억은 더 이상 옛날의 빛을 잃어버린다. 새로운 기억으로 그 장소는 간직된다. 이 책도 내게 약간은 그런 존재가 아닌가 싶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때에 발견한 뒤로 몇 년을 기다렸다. 그 동안 추억은 외곡되어 더욱 아름다운 빛을 내며 반짝거린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다시 느끼기 힘들 것이다. 본 것을 후회하나? 알고보면 너에게 별것 아닌 존재였던 소설이 그렇게 몸치장을 하며 너를 유혹한 것이 애석하게 느껴지나?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기다리며, 찾으며 느꼈던 기대감과 즐거움은 사실이다. 언젠가 이 추억조차도 그리워하며 찾아낼 것이다.
줄거리는 쓰지 않겠다. 독후감이라고 생각하며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은 내용을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하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내심 그렇게 되길 바란다. 추억은 늘 그렇든 변형되어 구부러지고 재결정이 되며 더욱 아름다워 지는 법이니 말이다. 다만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체념한 시시포스가 아닌 끝없이 내려오는 고통에 괴로워하고 비통하면서도 낙원에서 살고 싶은 불가능한 꿈을 꾸면서 사는 것이다. 고통에 끝없이 괴로워하고 남김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외면하고 있던 고통까지 본다면 더욱 더 괴롭겠지. 하지만 우리 인생이 그러하고, 더욱 슬퍼지겠지만 우리는 그래야 한다. 눈먼채로 있는 형벌을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눈물 흘리며 괴로워해야 한다. 우리는 행복한 시시포스다.
무력하고도 반항적인 시지프는 그의 비참한 조건의 전모를 알고 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조건이다. 그의 고뇌를 이루었을 명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시킨다. 멸시로써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시지프의 신화
프러시안블루
20.01.09
저도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