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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일기 한줄일기 내일기장
李하나
 버스를 보내며   deux.
조회: 2483 , 2012-05-14 16:20


일상을 나누던 사람이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던
사람이 있었다.
물론 그 방식이
카카오톡이라는 제한적인 방식이어서
나는 늘 답답했지만
핸드폰으로는 음악만 듣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게 되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사이.

그런 사이였던 사람이
'있었다'

사실은 오늘 아침까지 연락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끊어졌,
아니 끊었,

모르겠다.
하지만 어쩄든
하지 않는다.

.
.


나에게 잘 해주면
한 없이 기분이 좋았다.
챙겨주면
만져주면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기억에 남았다.

운전하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고
술 취한 모습은
귀여웠다.

꼭 한 번
술을 마시고
나에게 전화한 적이 있었는데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는데
나보다 네 살이나 많은데도
참 귀여웠다.

.
.

다른 사람에게 잘 해주는 모습은
정말 싫었다.
다른 여자 이야기를 하는 것도
정말 정말 싫었다.

나하고 이야기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야속했다.



좋아했다면
좋아한 것 같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리고 이번엔
나름 조금은
표현해본 것 같다.

징징거려도 보고
자는 척 어깨에 기대도 보고
카톡 답장도 꼬박꼬박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피하지도 않고.

눈치 빠른 친구들은
눈치 채고 잘해보라며
옆구리를 찌를 정도로
티도 내봤다.

.
.

그러나
나는 아직 뭐가 부족한 거고
뭐가 문제인 건지
이번 버스도
안녕,
인 듯 하다.

사실 처음부터
아슬아슬하기는 했다.
이번 버스는 잘 하면
보내야할 수도 있겠다,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타 보려고 잡아 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는데
버스를 탈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에
전력질주를 하지는 않았다.

.
.

그냥
내가 누군가를 잡으려
전력질주한다는 것 자체가
나는 무서웠다.
이게 무슨 느낌일까,
모르겠다.

지는 느낌?
자존심 상함?
돌려받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남자가 나에게 매달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
내가 더 많이 받고 싶은 느낌?


.
.


그냥
인연이 아니었다고
치부하기에는
그 사람에게 미안해서.

어쩌다 나 같은 여자애에게 관심을 가졌는지,
이렇게 겁 많고
조건 많고
줄 줄 모르는 애한테
관심을 가져서-

아니면
내 잘못이 아닌 건지.
그 사람이
지나치게 애매하게 굴었는지.

내 앞에서
다른 여자 이야기를 하고
자꾸만
자기는 아직 여자를 만날 마음이 없다느니
CC는 귀찮을 것 같다느니
나보고 남자친구를 사귀라느니
그런 식으로 툭툭 이야기해서
나를 상처 받게 만들고
거리를 두게 만든 게
그 사람의 서툶이었는지.


.
.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서
'안녕'
이라고 함부로 손인사는 하지 못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제는 더 이상
그 손길을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홀가분하다는 것.

.
.


지나치게 깊게 생각하지도 말자.
그냥 썸이었고,
내가 기대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
내가 마음이 떠버린
그런 아주 단순한
세상에서 하루에 수 천 번도 더 일어나고 있는
그런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하자.

이런 일들이
내 일상에 들어온 것만으로 만족하자.
남자와는 이야기도 하지 않던 게
불과 1년 전이다.
그 사이에
수 많은 남자들과 친구가 되었고
이제
여자보다는 남자가 오히려 편할 때도 있는
그런,
전과는 완전히 다른 내가 되었으니까.
그러다가 사람도 좋아해보고
포기도 해보고
그리고 또 좋아해보고
이번에는 서로
관심도 표현해보고.
그러다가 아니다 싶어
관둬도 보고.

이런 일상들이
나한테도 생겼다는 것에
만족하면서
조금은 늦게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서
다음 버스가 오기를 기다려야지.


.
.

다만 내가 버스를 왜 못 탔는지
그게 과연 단지 내가 타고 싶지 않은
버스였기 떄문인지는
고민해봐야겠다.

타고 싶은 버스였는데
타야하는 버스였는데
겁을 내서 못 탄 건 아니었는지.
내가 손을 흔들지 않아
버스 기사가 버스 정류장을
그냥 지나친 건 아니었는지.

아니면
버스가 나와 맞지 않는 버스였다거나
버스 기사가 내가 흔드는 손을 보고도
버스를 세워주지 않았다든지
하는 그런 문제는 아닌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지나면 알 수 있겠지.

어쨌든 지금의 내 상태는
버스를 보내놓고
평안해진 상태다.

조금 더 느릿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운전하는 버스를
기다려봐야지.

.
.


안녕,
버스.
기다리며 설렜었고
탈까말까 고민하면서
답답했었고
지나가버려 속이 시원했어.